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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 알베르 카뮈

by mubnoos 2021.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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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서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했던 카뮈는 <전락>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 인간의 반응과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점을, 또한 이러한 잘못은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할 몫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은 운하와 회색빛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파리의 전직 변호사였던 클라망스가 끝없이 늘어놓는 ‘계산된 고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덕망 있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항상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닌 채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또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요컨대 파리에서 변호사로서 ‘양심상의 평화’를 만끽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클라망스가 파리에서 누렸던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만족스러웠던 삶과 ‘양심상의 평화’는 센 강의 퐁데자르를 건너던 중 듣게 된 정체 모를 웃음소리로 인해 급변한다. 그에 따르면 이 웃음소리를 들었던 순간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웃음소리는 그가 파리에서 직접 겪었던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문제의 웃음소리를 듣기 2~3년 전에 센 강의 퐁루아얄 위에서 이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굽어보고 있던 한 젊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 젊은 여자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지만 곧 이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 소리와 이 여자의 비명이 잦아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결국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고 판단하고 길을 계속 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후일 변호사 클라망스의 명성을 더럽히는 얼룩이자 오점이 되고 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어린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퐁데자르 위에서 들었던 정체 모를 웃음소리는 바로 그들로부터 오는 비난어린 심판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그는 ‘정상’에서 ‘지옥’으로 ‘추락’을 점차 경험하게 된 것이다.

 

 

 

 

 

 

 

 


 

 

 

ㆍ파리 시민들이 미치도록 열광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사상이고 또 하나는 간음이다. 

 

ㆍ어쨌든 나는 떳떳한 편에 서 있었고, 그것만으로 양심상의 평화를 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내게 권리가 있다는 느낌, 내가 옳다는 만족감,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인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전진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것을 빼앗아버린다면 인간은 침이나 질질 흘리는 개나 다름없이 되고 말지요. 

 

ㆍ뭐니뭐니해도 남보다 높은 데서 산다는 것은 최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쳐다보이면서 존경받는 유일한 방법임에 틀립없습니다. 

 

ㆍ중간에 거치는 것 없이 삶과 직접 맞닿는 것, 그런 게 바로 에덴동산 아니겠어요, 선생? 내 삶이 바로 그랬습니다. 나는 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ㆍ사람이란 남을 지배하든가 섬김을 받는가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맑은 공기가 필요하듯이 노예가 필요한 법이지요. 명령하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필수적이죠. 어때요, 내 말 맞지요? 그런데 아무리 불우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호흡은 하거든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간에게도 하다 못해 배우자, 혹은 자식은 있죠. 독신일 경우라면 개라도 한 마리 있구요. 요컨대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는 말대답할 권리가 없도록 해놓고 이쪽은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겁니다. "아버지한테는 말대답하는 법이 아니야." 하는 공식을 알고 계시지요. 어느 의미에서 그건 좀 이상하죠.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말대답을 못하면 도대체 누구한테 합니까?

 

ㆍ데카르트적 사고방식에 젖은 프랑스인답게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서 그런 우연한 사고를 유리한 합리의 신, 즉 우연의 소치로 돌렸습니다. 어쨌건 그 뒤엔 마음속에서 경계심이 사라지질 않더군요. 

 

ㆍ여자야말로 지상낙원 중에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아니겠어요?

 

ㆍ나는 끊임없이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어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방탕 속에서 살아왔다고 볼 수 있죠. 그것이 바로 내 본성의 바탕이요, 내가 말씀드린 바 있는 그 엄청난 자기애의 결과가 아니었겠어요? 그래요, 정말이지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다면 생각 떄문에 죽을 지경이었어요. 

 

ㆍ분명히 말하지만, 종교란 훈계를 한다든지 계율을 선고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벌써 틀려먹은 겁니다. 죄를 만들어내는 데도, 벌을 주는 데도 반드시 신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만으로 족해요. 우리들 스스로 도울 수도 있구요. 

 

ㆍ나는 종교란 것을 일종의 대대적인 세탁 작업으로 보고 싶어요. 

 

ㆍ진실은 빛과 같아서 똑바로 보면 눈이 부셔요. 반대로 거짓말은 아름다운 황혼과 같아서 물건 하나하나가 뚜력하게 보이도록 합니다. 

 

ㆍ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결코 변명은 안 된다, 이것이 내가 출발점에서 세운 원칙입니다. 

 

ㆍ가장 중요한 것은 이따금 큰 소리로 자기 자신의 추악함을 털어놓을 셈치고, 하고 싶은 짓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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