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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5

중국행 슬로보트 / 무라카미 하루키 중국행 슬로보트 도서관 정문 옆에는 무슨 영문인지 닭장이 있고 그 안에서 닭 다섯 마리가 조금 늦은 아침식사인지 조금 이른 점심식사인지를 하는 참이었다. 무척 기분 좋은 날씨였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에 닭장 옆 보도블록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내내 닭들이 모이를 쪼아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닭들은 몹시 바쁘게 모이통을 쪼아댔다. 어찌나 조급하게 구는지 그 식사 풍경은 마치 필름 프레임 수가 적은 옛 뉴스영화처럼 보였다. 10 나는 닭장 앞에서 다시 담배 한 대를 피웠고, 그런 다음 자전거에 올라타고 도서관과 닭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게 이름이 없듯이 내 그 기억에는 날짜가 없다. 11 작은 균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더니 .. 2021. 1. 28.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물론 ‘앙앙’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 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10 다만 ‘그래, 이것도 써야지’하고 새로운 토픽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선지 꼭 잠들기 직전일 때가 많아서, 그것이 내게는 약간 문제다. 물론 생각났을 때 바로 메모해 두면 좋겠지만, 졸리기도 하고(졸리지 않은 밤은 내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드물다), 베갯머리에 필기구 같은 건 두지 않기 때문에, 아, 됐어, 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무얼 쓸 생각이었는지 까맣게 잊어.. 2021. 1. 27.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극히 펑범하게 운전하는 여자들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자 삶의 자세였다. 설령 아무리 극심한 고통이 닥친다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을 통해서만 인간은 강해질 수 있으니까.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가후쿠의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이 지닌 미덕 중 하나였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가 그녀를 적어도 중요한 일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 2021. 1. 27.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옷 잘 입는 여성을 보는 것은 예전부터 좋아했다.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나는 정말로 죽어 버린 것인지도 몰라. 그저 한정된 대상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야. 요리하는 건 좋아하지만, 하긴 그건 만들때부터 점점 형태가 무너지는 거니까요. 사고란 수염같은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_ 볼테르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를 중오하게 되죠. 창의력은 사려깊은 모방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떤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이 있었으며, 그것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육체와 의식의 강인한 집중 철학적 성찰이 오늘의 근사한 옷차림과 정말 잘 어울려. 술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감각의 둔화가 아.. 2021. 1. 24.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잊으려 해도 내 속에 희뿌연 공기와도 같은 덩어리가 남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덩어리는 점점 더 또렷하고 단순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그 덩어리를 말로 바꾸어 낼 수 있었다. 바로 이런 말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말로 해버리면 평범하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기 덩어리로 몸속에서 느꼈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아주 작은 먼지 입자처럼 폐속으로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완전히 삶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다시 말해 죽음은 언젠가 우리를 잡아챌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죽음이 우리를 움켜쥐는 그날까지 우리는 죽음에게 붙잡히지 않는다라.. 2021.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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