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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by mubnoos 202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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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앙앙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 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10

 

다만그래, 이것도 써야지하고 새로운 토픽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선지 꼭 잠들기 직전일 때가 많아서, 그것이 내게는 약간 문제다. 물론 생각났을 때 바로 메모해 두면 좋겠지만, 졸리기도 하고(졸리지 않은 밤은 내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드물다), 베갯머리에 필기구 같은 건 두지 않기 때문에, , 됐어, 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무얼 쓸 생각이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12

 

여성은 화내고 싶은 건이 있어서 화내는 게 아니라, 화내고 싶을 때가 있어서 화낸다라는 것이다. 남자가 화낼 경우, 거기에는 대개이러이러해서 화난다는 줄거리가 있다(그것이 적절한지 어떤지는 둘째 치고). 그러나 여자는 내가 본 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평소에는 특별히 눈초리를 추켜 올리지 않고 온화하게 넘기던 일도 하필 화나는 시기에 걸려 버리면 화를 낸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화를 낸다. 말하자면지뢰를 밟은것이다. 18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 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그만 됐어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윌리엄스 씨를 생각한다. 맹렬한 눈보라 속, 얼음 섞인 포토맥 강에 잠기면서 주위 여성에게먼저 가세요라는 말을 계속하는 친절심에 비하면 책상 앞에서 팔짱을 끼고 바른 말을 찾는 것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23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느 곳에선가 이렇게 썼다.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이루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다, 투우를 한다, 책을 쓴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다.’ 24

 

나는 지금까지 많은 고양이를 키웠지만 특정 음악을 애호하는 고양이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레드 제플린을 틀면 도망가고, 모차르트를 틀면 돌아오는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는 말이다. 음악은 시각 관념과 마찬가지로 사람 이외의 동물은 (적어도 고양이는) 감수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30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 중에는 우수하고 고결할 것 같은 분도 계시지만, 한편이 녀석 돌팔이 아냐?” “좀 더 상식이 필요한 거 아냐?”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재판에서 운 나쁘게 그런 판사를 만나면 그것은 이미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법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마약도 하지 않고 음주운전도 하지 않는다. 아니아니, 진짜로. 42

 

소설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날마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회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없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은 대폭 절약된다. 세상에는 혹시 통근과 회의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당신도 아마 그렇지 않죠? 한 가지 더 소설가가 된 기쁨을 절실히 느낄 때는 솔직하게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다. 60

 

이건 뭐랄까, 정말로 좋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까놓고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큼 편한일도 없다. 그것만으로 수명이 오 년 반 정도 늘어날 것 같다. 62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 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63

 

어쨌든 서늘한 만추의 오후, 나와 사자는 투명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험 삼아 살짝 웃어봤지만, 사자는 같이 웃어 주지 않았다. 사자는 시종 무표정했다. 67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큰 소리로 분명히 하고, 아니면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것. 언제부터 소설가를작가님이라 부르게 된 걸까? 옛날에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채소가게님’ ‘생선가게님같은 느낌이다. 뭐 사운드 면에서 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불릴 때면 이따금, , . 어서 옵쇼하고 두 손을 비비며 나가야 할 것 같다. 83

 

이솝 우화 중에개미와 베짱이이야기가 있다. 그건 원래개미와 매미이야기였다. 그리스에는 매미가 서식하므로 이솝은 아주 자연스럽게 매미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그러면 북유럽 사람들은 (북미나 유럽 위쪽으로는 매미가 서식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매미를 베짱이로 바꿔버렸다. 100

 

그건 어찌 됐건, 여행지에서 매일같이 낡은 옷을 버리고 갈 때의 기분이란 상당히 상쾌하다. 셔츠 한 장, 양말 한 켤레, 대단한 무게도 아니지만 나라는 인간이 그 때마다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괜찮다면 한번 시도해보시죠. 그런데 거꾸로 말하자면 여행지가 아니면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여행이 주는 효용이겠죠. 119

 

기야마 쇼헤이의가을’(쇼와 8)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120

 

신랄한 말투로 이름을 떨친 도로시 파커라는 미국 여성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새겨주기 바란다.이 글씨를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라고.” 136

 

(스콧 피츠제랄드의) 묘비에는 유명한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138

 

 

텔레비전에도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나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목적 없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근처 가게에서 양파와 무를 사기도 하며, 극히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어서 길을 가다가 누가 말을 걸어오거나 하면 귀찮다. 무엇보다엄마, 엄마 저거 봐. 무라카미 하루키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얼굴이 재미있게 생겼네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어떻게 생기건 내 마음이지. 142

 

그래서 오후 1시경에 소파에 누워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곡을 듣는 둥 마는 둥 들으면서아아, 오늘도 특별히 상처 입는 일 없이 이대로 한가로이 낮잠을 잘 수 있을 것 같군. 다행이야하고 인생에 감사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젊을 때 세파에 시달리며 제대로 상처를 입어두면 나이를 먹은 뒤 그만큼 편해지는 것 같다. 만약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푹 자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그게 제일이다. 힘내세요. 147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라는 T. S. 엘리엇의 유명한 시가 있는데, 아시는지? ‘그건 단순히 휴일의 시간 때우기가 아닙니다라고 이어진다. 그 시에서 엘리엇 씨는 고양이는 세 개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개는 평소 부르는 간단 한 이름. 이를테면나비라든가. 또 하나는 평소 사용하지는 않아도 하나쯤은 가져야 할 생색용으로 고양이다운 점잖은 이름. 이를테면 음, ‘흑진주라든가물망초라든가. 그리고 또 하나는 고양이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 이름. 그것은 절대 남한테 발설되는 일이 없다. 164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것은 아마도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름 붙이는 것 자체는 간단해도 그 이름에 따라오는 무언가는 때로 오묘한 무게를 갖는다. 167

 

인생은 끔찍하거나’ ‘비참하거나둘 중 하나다.’ 영화애니 홀에서 우디 앨런은 인생을 그렇게 정의했다. 208

 

게다가 기술상 약간의 과장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머리도 그리 좋지 않고(나보다 머리 좋은 원숭이가 분명 세상에 몇 마리나 있을 것이다), 인격에도 조잡스런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 하고 스스로 반성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걸 굳이 전국지에 써대지 않아도 좋을텐데, 하고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선적이다라고 비판 받은 적이 있다. 물론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아뇨,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벌떡 일어나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못 그런다. 내 속에는 물론 위선적인 부분이 있고(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걸 부정하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위선적인 행위다. 211

 

 

기본적으로 싫어하는 것, 좋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다. 읽는 분들 역시이런 건 진짜 싫다. 짜증난다하는 문장보다이런 글 진짜 좋다. 쓰다 보면 즐거워진다하는 문장 쪽이 읽고 나서 즐거우시죠? 으음, 그렇지도 않으려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채소를 좋아한다. 여자도 꽤 좋아하지만, 여자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뭔가 곤란한 얘기도 나오므로(하고 슬쩍 뒤를 돌아본다), 아무래도 제한이 있다. 그런 점에서 채소는 마음 편하 고 좋다. 212 인터넷에서 야자수에 대해 이래저래 조사해보았지만, ‘왜 야자수는 키가 큰가요?’ 같은 문제는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것을 일일이 진지하게 생 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인터넷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모른다라는, 전부터 내가 주장하던 것이 또 증명된 셈이다.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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