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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충격 / 더글러스 러시코프

by mubnoos 2021. 7. 20.

 

 

영원한 현재

  • 우리 사회는 현재라는 '순간'을 향해 모두 재배열된 상태다. 모든 것이 라이브이고 실시간이며 현재진행형이다. 
  • 이제 기다림은 끝이다.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하는 지점에 우리가 있다.
  • 20세기의 끝자락을 미래주의로 규정한다면, 21세기는 현재주의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굳건히 발 디딜 곳을 찾기보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자극과 지시에 끊임없이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신세다.
  • 점점 벌어지는 불균형을 이용해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부채를 현재의 비용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 관심사는 바로 그 순간의 의사결정이다. 다시 말해 합리적 사고와 숙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이 아니라 눈 깜박할 사이에 내려지는 순간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오로지 즉흥적인 것에 쏟아붓는 반면, 신중한 것에는 관심을 줄이거나 아예 무시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본능적인 파충류처럼 여겨지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부추긴다.
  • 우리로 하여금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 세상에 미친 듯 나아가 우리가 걷잘을 수 없을 때는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잠시 멈춤 버튼 누르기.



1장 무너진 서사

  •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간이란 것은 점점 더 속도를 올리는 것 같다.
  • 사람들은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 미래에 대한 경도가 점점 더 현재를 굳건히 버티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부터 현재가치로의 대규모 사회적 이동과 관련이 있었다. 사람들은 미래로부터 시선을 거두면서 현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래에 구현될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일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언젠가’보다 오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화제주에 대한 얘기, 즉 왜 그 주가가 오를 것인지에 대한 근거 대기보다 지금 현재의 실제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지금 현재, 내 주식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건 어떤 주식인가? 지금 현재 내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가?
  • 주식시장이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미래 지향 문화를 전제로 했을 때 세울 수 있는 여러 가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모두 하나같이 별 볼 일 없는 현재의 그 무언가를 견뎌내면 미래에 더 나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식의 약속을 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했다. 전쟁 같은 현재는 해방 같은 내일이고, 오늘의 고통은 내일의 구원이며, 오늘의 수고로움은 내일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 스토리텔링은 이미 사회적으로 승인된 문화적 가치다. '서사적 상상력, 즉 스토리는 사고의 기본 도구다. 거기에 이성적 능력이 기댄다. 미래를 생각하고 예측하고 계획하며 설명하는, 우리 인간의 주요 수단인 것이다.'
  • 토플러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얼마 못 가 우리가 적응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이르게 된 자초지종을 풀어낼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토플러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미래 현실으르 그리며, 새로운 트렌드를 예상하는 일에 좀 더 능숙해진다면, 그 모든 변화 앞에서도 우리가 크게 충격받는 일은 덜하리라는 것이다. 
  •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연속성이라는 웅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들어맞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좀 더 즉각적이며 좀 더 깊은 관련을 지닌 그 무엇인가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 '엔터테인먼트' - '안으로 붙들다' -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특정 마음 상태를 갖게 한다는 의미다.
  • 서사가 붕괴되는 것과 함께 분명 자유로워지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나, 그 자유는 선정과 가학에 속절없이 자리를 내준다.
  • 플랭킹 planking - 시체놀이
  • 현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데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바로 현실과 유리된다는 점이다. 
  • "당신은 당신의 의견을 말하는 거고,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거다"라는 식이다. 어쨌든 이것이 민주주의이기는 하다. 
  • 유한게임은 결말이 정해지는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로 말이다. 승리는 희소성을 띤다. 승자는 한 사람 혹은 한 팀일수밖에 없으므로 선수를 승리를 위해 경쟁한다. 반면, 무한게임은 게임 그 자체에 비중을 둔다. 무한게임에선 뻔한 시작이나 뻔한 결말이 없으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게인 그 자체를 위해 게임을 한다. 무한게임엔 정해진 경기장이 없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규칙이 바뀌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한게임에 대해 제약 없는 풍요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결판을 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대신, 그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게임을 벌일 뿐이다. 유한게임 안에서 승리 아니면 죽음을 갈망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현재를 즐기고 순간의 여흥거리를 지속시키고자 애쓸 뿐이다. 이는 정해진 규칙보다 즉흥성을,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도덕률보다 안으로부터의 감흥을 그리고 진지함보다 쾌활함을 더 선호하는 방식이다.
  •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몰려오는 신호들은 동시에 들이닥친다. 우리는 원하는 답을 얻고자 어떤 화면을 골라 열어볼 것이다. 그런데 종종 이런 행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대상 혹은 존재에 의지하고 싶어 하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 혹은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느냐다.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동시에 다른 여러 레벨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2장 디지털 분열: 헤어짐은 쉽지 않다

  • 자신의 고유성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들과 달리 디지털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복제 가능성이다. 복제되어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 복제물은 복제물이 아닌 셈이다. 일단 복제되면 그것은 원본인 것이다. 디지털 복제는 그 자체로 원본이다. 
  •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 사람만이 겪는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사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 자체가 하나의 기계라고 할 수 있다.
  • 디지털 시대의 시간이란 것은 더는 선형적이지 않고 분리되어 여기저기에 결합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은 선형적 시간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인 단계를 밟아 나간다.
  • 속도에 기술을 맡김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없다.
  • 도파민으로 인해 우리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행동의 여지를 넓힐 수 있고, 지나친 몰입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도파민이 바로 그 순간의 에너지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디지털 분열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서로 뒤섞는 데서 기인한다. 
  • 선택을 해야만한다는 것, 조작 장치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라야 한다는 것은 결국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디지털적인 것은 쌓아놓을 수 있지만, 인간은 실시간을 살아야 한다.
  • 문제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느냐가 아니다. 기왕 디지털화된 삶을 사는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과 상대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 디지털 기기는 바로 직전에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일 뿐이다.
  • 디지털 기술과 달리 아날로그 기술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붙잡아둔다. 책이나 두루마리에서 보면 과거는 우리 왼편에 있고, 미래는 우리 오른편에 있다. 책에서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선형적 시간상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한다. 낱장의 쪽으로 이루어진 책이 두루마리보다는 좀 더 순차적이긴 하지만, 컴퓨터 화면과 비교하면 둘 다 시간 지향적이다. 맥락 혹은 타임라인상의 위치와 관계없이 프로그램의 어떤 화면이 됐든 지금 우리가 열어보는 화면이 디지털의 관점에서는 현재다. 블로그상에서 미래는 화면상에서 오른쪽에 있지 않고 임시 저장된 포스트 형태로 위쪽에 놓여 있다. 그리고 과거는 왼쪽에 있는 게 아니라 예전 포스트들과 함께 아래쪽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하이퍼텍스트 링크로 이어진 다른 화면에 놓여 있다.
  • 유기적 흐름과 유기적 흐름과 디지털 과정을 구분 지으면 적절한 타이밍이 올 여지는 생기고 적절치 못한 실수를 범할 여지는 줄어든다. 루시가 작업대에서 미친 듯 초콜릿을 포장하는 유명한 텔레비전 장면처럼, 우리는 문자가 오는 대로 그리고 일이 주어지는 대로 일일이 답하고 처리하려고 한다. 그러다 결국 루시처럼 엉뚱한 곳에서 일을 엉뚱하게 망쳐놓고 만다. 지메일에선 잘못 보낸 메일을 몇 분 내에 발송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능이 있다고 해서 시간을 쪼개 서둘러 답을 하고 시그널보다 노이즈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짓까지 멈추게 할 순 없다. 댓글란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의 속도보다 손놀림이 빠른 사람들이며 단지 이 토론을 다시 찾아와 볼 짬이 없음을 알기에 오히려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단 댓글에 누군가 링크를 걸거나 리트윗을 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더 많은 댓글을 달게 되고, 결국 댓글 달기는 이메일을 열어보는 것만큼이나 강박적인 행동이 된다. 존경받는 저명인사라는 사람들이 트위터에 정말 무의미한 잡생각들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시간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애슈턴 커처와 같이 대중문화의 단순성을 체현하고 있는 배우가 문득 생각 없이 올리는 포스트가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로서도 잠시 숙고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두 순간이나마 카이로스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 나는 이분법적인 디지털 선택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예'이면서 '아니오'입니다.
  • 인간은 동시에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



3장 태엽 감기: 짧은 영원

  • 긴 현재가 아니라 짧은 영원이 되어야 한다.
  • 저장된 시간이 존재하고, 흐르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펼쳐져야 할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 흐르는 정보와 저장된 정보를 뒤섞어 처리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디지털 환경에선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정보와 활동들을 겉보기에 다름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전자책이나 논문을 읽을 때도 마치 트위터 스트림이나 페이스북 업데이트 목록을 볼 때처럼 쓱 일별하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식이기에 긴 글을 읽을 때도 골자만 잡아내고자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그러나 골자는 행간에 깊이 스며 있으므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서두르다보니 우리는 심오한 사고를 우리의 기억 체계 가운데 일시적인 것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몰아넣게 되고 결국 숙고라는 것을 할 수 없게 된다. 선형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과정을 흐름의 한순간으로 압축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과도하게 태엽 감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 사람들의 살아 있는 흐름이자 그 적정성 여부는 순간순간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트위터란 스포츠 중계방송 중에 문제가 되는 장면을 바로 돌려보기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속보로 전해진 교내 총격 사건을 두고 불안한 마음을 나누거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대해 연대의 목소리를 내거나 혹은 시위대에게 경찰이 지키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등의 것이다. 지나간 트위터를 따라잡는 것은 어제의 주식시세 라이브 스트리밍을 밤새 지켜보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들이 지닌 가치는 ‘현재’에 있었다. 그 ‘현재’란 지금의 시점으로 보자면 ‘그때’인 것이다. 
  • 우리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현재 안으로 압축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짧은 영원, 즉 일종의 정신적 매시업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짧은 영원은 모순으로 가득하며 지울 수 없는 과거의 무게와 미리 지워진 운명의 그림자로 인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다.
  • 소비가 점점 더 편리하고 빨라지다보니 실제로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우리는 돈을 시간을 멈추는 하나의 방편이라 여긴다.
  • 대부분의 주식 거래는 전적으로 시간이 조성하는 가치의 세계를 둘러싸는 식이다. 
  • 남아 있는 유일한 가치가 시간일 때, 세상은 시계가 되어간다.
  • 새로운 흐름에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축적된 것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 삶의 공동체에서 누군가의 평판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지식 전승 도구이자 사람들로부터 가장 쉽게 수혜를 입는 길이 된다.



4장 프랙털 강박 : 피드백에서 패턴 찾기

  • 사실, 모든 것을 다른 모든 것과 연결하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터넷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 모든 것과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이나. 물론, 한번 모두가 다른 모두, 모든 것과 연결되면 더 이상 문제될 게 없다. 
  • 프랙털은 실제로 반복되는 숫자를 기반으로 반복되는 재귀방정식에 불과하다. (자기유사성)
  • 피드백과 반복의 세계, 프랙털이 기반하고 있는 주기적 순환 과정의 세계로 가보자. 정상적 상황이라면 피드백은 누군가가 행한 것에 대한 반응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계곡에 대고 소리를 지를 때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것이고, 생소한 것을 알려줬을 때 학생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야릇한 표정 같은 것이며, 새로 나온 비료를 뿌린 후에 거두게 되는 수확량 같은 것이다. 우리는 행동을 하고 피드백을 얻는다. 그리고 이 피드백을 가지고 다음에는 어떻게 조절하고 적응해야 할지 파악한다. 화살을 쐈는데 과녁 중심의 왼쪽에 박히면 다음에는 중심에서 오른쪽을 겨냥해 시위를 당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매 순간 조정을 하며 우리와 과녁 사이에 생긴 피드백 순환회로를 다시 돌린다.
    피드백이 유용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한 것과 그것이 초래한 결과 사이에 일정한 시간 간격이 존재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무엇을 조정해야 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현재주의 세계에서는 이 피드백 회로가 너무 촘촘하다. 피드백이 너무 빨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상황을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때 어떻게 해야 그 소리가 멈출지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다뤄야 하고 제어해야 할 피드백의 모습이다. 정상적인 경우, 마이크는 우리의 음성을 수음해 그것을 확성 스피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스피커와 지나치게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 마이크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이 소리(소음)는 다시 증폭되어 스피커로 되돌아간다. 바로 이 순간에 마이크는 또다시 증폭된 소음을 받아들여 다시 증폭시킨 뒤 스피커로 되돌려 보내고, 또다시 이 소리는 마이크로… 다시 스피커로, 다시 마이크로, 이렇게 반복된다. 반복되는 각 단계에서 소리는 증폭을 거듭하고 수천 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무한하면서도 즉각적인 피드백 회로가 내는 합성되고 혼란스런 비명을 듣게 된다.
  • 인간과 문화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개별성과 특이성 그리고 역설 등을 무시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순간적 경험을 무시한다는 뜻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 모든 것을 다 녹여 놓고 싶은 충동에 그런 개별적 독특함을 희생시킨다는 의미다.
  •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것과 함께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게 그것을 무시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 감정이입은 단순히 학습하거나 이해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느끼고 경험하는 방식이다.
  • 공유가 소유를 앞지르고 관계는 자아를 대체한다.

 


5장 대재앙

  • 현재 충격 속에서 사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여기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런 점에서 시작 또한 없다. 삶이란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스트레스가 일정한 압력으로 계속 누르는 것이다. 따지고 들 근원도 없으며 끝도 보이지 않는다.
  • 좀비 영화가 질문들을 제기하는 방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것이 설명됐다.
  • 모든 것은 계속해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상호 연결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돼간다. 매우 이상하고 무서운 환각 여행과 같은 이 여정에서 모든 것은 어떤 패턴의 부분이 된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면, 현실은 모종의 특이점에 도달하게 된다. 즉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무한 복잡성의 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현재 충격의 순간이며, 거기서 역사와 미래와 현재가 한데 겹쳐져 그야말로 종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 퇴로는 없다. 오직 전진뿐이다.
  • 인간에게 질서란 대체적으로 우리 자신과 비슷한 무엇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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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이 온다 / 더글러스 러시코프

1장 팀 휴먼: 위기를 맞은 인간의 선택 우리는 혼자선 결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사회를 통제하려면 인간 간의 접촉을 방해해서 개인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절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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