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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3 / 시오노 나나미

by mubnoos 2021. 1. 28.

 

승자의 혼미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의 양육은 어머니 코르넬리아의 세심한 배려 속에 이루어졌다. 코르넬리아 자신도 당시 로마 교양인의 자격인 그리스어를 읽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두 개의 보석’이라고 부른 두 아들의 가정교사의 그리스에서 학자를 초빙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고 해서 가정교사나 하인인 노예들에게 두 아들을 맡겨 버린 것은 아니다. ‘자식은 어머니 뱃속에서 자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고 말한 여자였다. 코르넬리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어머니인 아우렐리아와 더불어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로마 여인의 귀감으로 칭송받게 된다. 22

 

로마는 기원전 509년에 공화정을 채택한 이후 귀족계급과 평민층 사이의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원전 367년의 ‘리키니우스법’으로 모든 공직을 평민층에게 개방하고, 기원전 287년에는 평민집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그대로 국법으로 삼는다고 규정한 ‘호르텐시우스 법’을 제정하여 귀족과 평민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평민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호민관이 사임한 뒤에는 그를 원로운 의원으로 수용함으로써 소수 지도체제의 ‘소수’가 배타적이 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국론 분열을 방지해 왔다. 민회도 소홀히 취급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등의 중대사는 민회가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집정관을 비롯한 모든 주요 관직은 민회에서 선출되었기 때문에 인사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은 시민 각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할당되었기 때문에, 사회정의라는 측면에서도 형평성을 유지했다. 25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뒤인 기원전 240년부터 속주로 편입된 시칠리아에서 직접세로 들어오는 다량의 밀이 이미 소규모 자작농의 밀 생산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 가격 경쟁력에 패배한 밀 대신, 로마 농민들은 목축업과 올리브유 및 포도주 생산에 주력하게 된다. 소규모 자작농이 농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에는 그래도 농가가 존립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로마의 힘이 강해질수록 도로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충실해지고, 그에 따라 동맹시를 포함한 이탈리아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져 올리브유나 포도주 수요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30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생각은 확고부동했다. 농민에서 무산자로 전락한 이들에게 농지라는 재산을 주어 자작농에 복귀시킴으로써 로마 시민층의 기반을 건전하게 하고, 실업자를 구제하는 동시에 사회불안을 해소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시민층의 건전화만 이루어지면, 로마 시민권 소유자로 구성되는 로마 군단도 다시금 양적, 질적으로 향상하여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옛날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벌어진 것 같은 계급투쟁, 즉 다른 계급을 배척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계급투쟁이 아니었다. 38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로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민족인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와 동맹관계를 맺고 한니발을 무찌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손자다. 또한 해방노예라 할지라도 5세 이상의 아들이 있고 3만 아세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로마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아드이다. 마시니사의 아들과는 ‘파트로네스’와 ‘클레엔테스’의 관계에 있고, 카르타고의 옛터에 로마 시민들을 이주시켜 식믹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사람이다. 원로원 의원들의 머릿속에 있던 ‘국경’이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62

 

기원전 119년, 그는 호민관에 취임했다. 가이수스 그라쿠스가 살해된지 2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평민의 대변자로 주목받게 된 마리우스지만, 호미노간 시절에는 지위와 권력을 조금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38세인 그에게는 호민관 직책도 원로원 입장권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89

 

‘율리우스 시민권법’은 오랜 ‘동맹자’가 이혼장에 들이밀었을 때에야 비로소 성립되었지만, 단지 ‘동맹시 전쟁’을 끝내는 역할만 맡은 것은 아니었다. 이 법은, 귀족과 평민이 공직에 취임할 기회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두 계급 간의 오랜 항쟁을 끝낸 기원전 367년의 ‘리키니우스 법’과 맞먹는 획기적인 법, 즉 로마 국가의 방향전환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강철 같은 결속을 자랑했고, 한니발을 비롯한 외세조차도 그 사실을 인정한 바 잇는 ‘로마연합’은 마침내 해체되었다. 나폴리에 사는 그리스계 주민도, 토스카나 지방에 많이 사는 에트루리아 인도 이탈리아 반도를 등뼈처럼 달리는 아펜니노 산맥에 사는 산악부족도 모두 로마시민이 되었다. 이탈리아인은 이제 없어졌다. 이탈리아인이 되살아나려면 이로부터 1천 950년 뒤에 근대국가 이탈리아가 탄생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140

 

민주정 체제의 아테네는 물론, 왕정시대와 공화정 시대의 로마에서도, 전쟁을 선포하거나 강화를 체결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최고결정권이 민회에 있었던 것은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양국이 모두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주권재민’은 그것을 존중할수록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주권자인 시민이 갖는 권리는 평등해야 하고, 그 평등은 폐쇄를 통해서 이질적인 분자를 배제하는 방법으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141

 

아테네인이 생각한 동포는 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로마인이 생각한 동포는 단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노예였든 카르타고 태생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라틴어를 쓰든 말든, 그것조차도 관계가 없다.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순간부터 그 사람은 동포가 된다. 로마인은 원래 시민권을 주는 데 대범했다. 하지만 제1권에 기술된 시대의 시민권은 이점이 적었다. 그래서 ‘로마연합’동맹시의 시민들은 굳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건국하는 과정에는 어떤 나라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패권국이 된 이후에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드물지 않을까. 142

 

공화정 로마에는 수도 로마의 4개 선거구를 비롯하여 전국에 35개의 선구구(트리부스)가 있다. 로마의 선거제도는 재산별로 나누어 백인대(켄투리아)별로 투표하고, 그것들을 모두 합계하여 선거구 전체의 뜻을 한 표로 나타내도록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로마의 선거제도는 일종의 소선거구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선거제도가 원로원파와 민중파의 쟁점이 되었다. 146

 

죽은 마리우스 대신 ‘민중파’를 대표하게 된 킨나는 빛을 갚느라 고생할 때가 많은 하층민을 구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킨나는 채권자들이 빚의 4분의 3에 대한 징수권을 포기하도록 규정한 법안을 성립시켰다. 채권자들은 이율은 그대로지만, 빌려준 돈의 4분의 1만 돌려받는 것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논리를 지나치게 무시한 행위였다. 빚의 4분의 3을 탕감받은 시민은 기뻐했지만, 금융업자들이 속해있는 ‘기사계급’은 킨나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킨나는 ‘신시민’과 하층민들의 표를 배경으로, 해외 원정에 나가 있는 술라를 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하는 결의안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해임했을 뿐 아니라, 술라와 그 일파의 재산 몰수와 국외추방까지 결의해버렸다. 153

 

군비를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술라는 그리스 각지의 유명한 신전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에 착안했다. 그리스에는 에피다우로스, 올림피아, 델포이 등 지중해 세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참배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신전들이 있었다. 이런 신전에는 믿음이 갚은 자들이 바친 수많은 헌납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금은보화도 많아서, 해적들도 맨 먼저 신전을 노릴 정도였다. 술라는 부하들을 보내 이것들을 몰수하게 했다. 155

 

몰수하러 간 부하는 그리스인이었는데, 신전에 들어간 이 병사는 신전 안쪽에 마련된 성소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신관들에게 묻자 아폴로 신이 연주하는 류트 소리라는 것이었다. 신의 보물에 손을 대기가 무서워진 그는 빈손으로 돌아와 그 이유를 술라에게 말했다. 술라는 화도 내지 않고 말했다. “신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네한테는 실망했네. 그건 불찬성이 아니라 찬성하는 의사표시라네. 신께서 기꺼이 주겠다고 말씀하시니까, 안심하고 가서 가져오게.” 156

 

술라가 무조건 성문을 열라고 아테네에 요구하자, 아테네 쪽은 교섭사절을 보내왔다. 그 사절은 술라 앞에서 아테네 문화으 훌륭함을 장황하게 연설한 모양이다. 그러자 술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들의 훌륭한 변설은 그대로 가지고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나는 로마 시민들이 그리스 문화를 배우라고 아테네에 파견한 학생이 아니라, 로마에 반기를 든 아테네인을 제압하라고 보낸 장군이오.” 그래도 무조건 성문을 열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항복한 아테네 시민에 대해서는 “소수의 뛰어난 자들을 보아 다수를 용서하고, 뛰어난 죽은 자들을 보아 살아있는 자들을 용서한다”고 말하여, 패배자 아테네 인을 노예로 삼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후세에 태어난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술라 덕분이기도 하다. 묻혀 있던 철학자의 저작집을 발견하여 그것을 로마로 가지고 돌아온 사람이 술라였기 때문이다. 156

 

로마 시민과 비시민이 둘로 나뉘어 싸운 ‘동맹시 전쟁’과는 달리, 이번은 적군과 아군이 모두 같은 로마시민이었다. 또한 전쟁이란 오래 계속될수록 당초에는 품지 않았던 증오심까지 고개를 쳐들게 되는 법이다.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게 된다. 오직 증오심만이 그들을 몰아세운다. 내전이 처참한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173

 

술라의 살생부에는 80명 가까운 원로원 의원과 1천600명의 ‘기사(경제인)’를 포함하여 모두 4천 700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남은 길은 재판도 없이 살해되고 재산을 몰수당하든가, 살해되지도 않더라도 재산을 모조리 몰수당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자손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몰수한 재산은 경매에 부쳐졌다. 이 재물을 헐값으로 사들여 떼 돈을 번 것이 나중에 ‘삼두정치’의 한 머리가 된 크라수스였다. 174

 

묘비에는 술라가 생전에 생각해 두었다는 비문이 새겨졌다. “동지에게는 술라보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적에게는 술라보다 더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없다.” 192

 

예수 그리스도는 말했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예수는 그 자신과 ‘신’을 믿지 않는 인간도 평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래의 역사관에 따르면 고대보다 당연히 진보했을 터인 중세부터 시작된 기독교 문명도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았다. 단지 기독교도의 노예화를 금지했을 뿐이다. 209

 

기원전 70년의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각자 자기 지지층의 이익대표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군인으로 대표되는 일반 시민의 이익대표이고, 크라수스는 눈부시게 부상하고 있는 경제계의 이익대표라는 형태였다. 232

 

투키디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저술에서 ‘대국의 통치에는 민주정 체제가 적합하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민주정만이 절대선은 아니다. 민주정도 다른 정치체제와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으며, 운영방식에 따라서는 항상 위험한 정치체제다. 233

 

군주한테는 퇴위를 강요해도, 그 우두머리를 떠받치고 있던 지배층 자체는 없애지 않는 것이 로마의 속주 지배방식이다. 하지만 사람은 바뀐다. 폼페이우스도 젊은이들이 시리아 상류층의 주축을 이루도록 배려했다. 250년 동안이나 존속한 왕국이 멸망했는데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265

 

그리스에서 르네상스까지의 역사의 정통한 예술가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대표작이지만 ‘세계사에 관한 고찰’이라는 책도 썼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이따금 역사는 갑자기 하나의 인물 속에 자신을 응축시키고, 세계는 그 후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ㅇ런 위대한 개인에 있어서는 보편과 특수. 멈추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에 집약되어 있다. 그들은 국가나 종교나 문화나 사회 위기를 구현하는 존재다. 위기에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하나가 되고, 위대한 개인 속에서 정점에 이른다. 이런 위인들의 존재는 세계사의 수수께끼다.’ 273

 

mubno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