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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 이호철, 해방촌 가는 길/ 강신재, 무진기행/ 김승옥

by mubnoos 2024. 9. 6.

 

판문점

 

주인공 진수는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실업자로 어머니와 함께 형네 집에 얹혀 살고 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진수는 광명통신 기자로 신분을 속이고 판문점 시찰단에 동행하기로 한다. 국내외 기자가 동승한 버스 안은 옆사람과 잡담하는 소리와 웃음소리로 웅성거린다. 진수는 판문점 시찰을 단순한 관광쯤으로 여기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다. 버스는 어느새 임진강을 지나 판문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린 외국 기자들은 카메라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그사이 북쪽 기자들이 도착하자, 남쪽과 북쪽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려 안면 있는 기자들끼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회담이 시작되어 주위가 잠시 조용해진 때 남색 원피스를 입고 붉은 완장을 찬 북측 여기자가 진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남북체제의 본질에 대해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열띤 논쟁을 벌인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진수는 북측 여기자를 이끌고 옆에 세워져 있던 지프에 올라탄다. 그러면서 진수는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면서도 한편으로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북측 여기자에게서 외국인을 대할 때 느꼈던 이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

판문점 시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진수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북측 여기자의 열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잠시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200년쯤 지난 뒤 판문점은 사라지고, 고어가 되어버린 판문점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을 그런 때를 상상해본다. 그 뒤 눈 내리는 겨울날 진수는 다시 광명통신 기자 이름을 빌려 판문점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진수는 북측 여기자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한순간 여운이 담긴 웃음을 보이며 얼굴을 붉혔으나, 곧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만날 때면 으레 짓는 그런 경계와 방어의 표정으로 진수를 피해간다. 진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와의 사이에 지난번보다 더 깊은 간극을 느끼고는 혼자 쓸쓸하게 웃는다.

 

 

 

 

 

 

해방촌 가는 길 / 강신재

기애는 대구의 미군 부대에서 일할 때 동거하던 미군 장교 조가 미국으로 떠나자, 그곳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집이 있는 해방촌으로 돌아옵니다. 기애는 집으로 향한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면서 지난날 조와 동거한 일, 아이를 유산시킨 일 등을 돌이켜 봅니다. 

 

기애가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찾은 집은 여전히 형편이 어렵습니다. 어머니 장씨는 기애가 미군 부대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내다 팔아 생활비를 마련합니다. 노쇠한 어머니, 궁색한 형편을 본 기애는 어서 일자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동생 육이는 생활 속에서도 밝고 명랑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편 근수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합니다. 근수는 기애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기애는 화를 내며 근수의 사랑 고백을 외면합니다. 기애는 자신이 가난을 면하기 위해 미군 장교와 동거한 사실을 모르는 근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근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직장인 무역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던 기애는 욱이의 도시락을 싸다가 신문에서 군스의 자살 기사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기애는 그 길로 미군 구락부로 가서 일자리를 구하려 합니다. 그 후 다시 미군과 동거를 하기 시작한 기애는 욱이가 자신이나 어머니 장씨와는 다른 삶을 살길 바랍니다. 그러고는 굳세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무진기행 / 김승옥

 

 

무능하고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인물인 주인공 "윤희중" 이 무진에 머무른 2박 3일 간의 이야기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무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은 모두 속물들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無爲)와 똑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이라고.

 

 

 

윤희중: 화자이자 주인공, 33세이다. 무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아마도) 대학을 가기 위해 상경하여 서울에서 생활한다. 대학 재학 중 6.25 전쟁이 터져 천 리를 걸어서 귀향한 것을 시작으로, 때때로 서울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무진으로 귀향한다. 소설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그가 가장 최근에 귀향한 것은 4년 전, 그가 29세였을 무렵 경리를 보고 있던 제약회사가 큰 회사와 합병되어 일자리와 애인인 '희'를 잃는 실패를 겪었을 때였다. 그러다 회생제약이라는 기업의 따님과 결혼을 하여 회생제약의 전무이사에 임명되기로 되어 있다. '조'의 대사를 빌리자면 '빽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물어' 말 그대로 벼락출세한 셈이다.


'박': 윤희중의 중학교 후배. 현재는 모교에서 국어 교사를 맡고 있다. 중학교 시절엔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었던 모양이다. 음악교사인 하인숙을 짝사랑하며 꾸준히 연애편지를 보내고 있으나...
'조'와 함께 있던 인물들이 하인숙에게 유행가를 강요하자 분을 참지 못하는 등 여러모로 주인공의 순수한 (청년기) 시절을 반영한 듯한 인물이다.


'조' : 윤희중의 중학교 동기.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무진의 세무서장으로 있다. '박'의 말에 의하면 해방 이후의 무진중학 출신 중에서 '형님(윤희중)과 '조'가 제일 출세했다고. 예전부터 윤희중에게 알게모르게 열등감을 느껴오고 있었다. 서장실에 앉아있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윤희중을 전보로 불러내어 거드름을 피우거나 하지만, 윤희중에게 그 모습은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며 더 나아가 그의 모습에다가 서울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한다. 서울에서의 윤희중을 상징하는, 혹은 윤희중이 앞으로 될지도 모를 속물적인 인물.


하인숙: 무진중학교의 음악 교사.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나왔다. 본인이 원해서 무진에 온 것이 아닌, 발령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무진에 머무르고 있다. 말끝마다 서울에 데리고 가달라고 하며, 결혼을 하든 뭘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무진을 탈출해 서울에 올라가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