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멕시코시티'라는 바에서 '당신'을 만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의 행동이나 '당신'의 행동은 전혀 묘사되지 않고, 또 '당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의 말 또한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신'이라는 이 작품 내부의 청자를 독자와 동일시해도 되겠습니다. <전락>은 장밥티스트 클라망스라는 가명을 쓰는 '나'의 독백에 가까운 말만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소실이지요.
'나', 즉 클라망스는 40대의 남자이고 프랑스 파리에서 꽤 잘나가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주로 고아와 미망인의 소송을 담당했고, 이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자신의 역할에 지극히 만족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살아왔지요. 그는 또 뇌물이나 청탁도 받지 않고, 적선과 선행을 즐겨 했으며, 가난한 이를 위해서는 무료로 변호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은 타인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선행이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을 즐기기 위한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또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중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파리의 강변에서 그는 등 뒤에서 나는 웃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후로 차츰 자신과 타인의 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살펴보게 되고, 결국 인간의 이중성을 발견하지요. 그는 자신의 죽음 뒤에 자기 삶의 진상이 묻혀 버릴 것을 생각하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기 삶이 연극에 불과했다는 진실이 묻혀 버린 채 선한 사람처럼 칭찬 받을 생각을 하니 괴로워진거지요. 그 후로는 일부러 불손하게 행동해 자신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어 보려 했지만, 그런 노력도 소용이 없자 동물적인 성욕의 세계로 도피하고, 또 방탕한 삶에 빠져 보기도 합니다.
창부들과 어울려 매일 술에 취해 지내던 그는 건강과 직업적 성공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술을 줄이고 또 사건 의뢰가 줄어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던 배 위에서 난데없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는, 이제 다시는 자신의 죄의식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자신에 대한 심판을 행했고, '이런 노력 뒤에 나는 이제 회개한 판사, 즉 유일한 심판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흘러들어 '멕시코시티'라는 바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살면서, 그는 다시 해방감과 우월감에 도취되어 살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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