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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사회 / 세르주 라투슈

by mubnoos 2021. 4. 27.

"내가 성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www.expo2015.org/magazine/en/culture/serge-latouche.-it-is-not-enough-to-protect-the-environment.html

 

Serge Latouche. It is not enough to protect the environment. People must learn respect | ExpoNet

The French economist Serge Latouche, who became famous as a theorist and popularizer of happy degrowth, says that to avoid the collapse of the planet is not enough to restore the economy and respect nature. We need to introduce greater cooperation and altr

www.expo2015.org

 

《탈성장사회》는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지은이가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성장사회비판의 다양한 사상조류들을 탈성장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모델과 사상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 대안은 ‘연대 사회의 검소한 풍요’로 정의되는 것으로 프랑스어판 원서의 제목이기도 한 ‘소비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제안하는 것이다.

 

  • "아마도 인간은 하는 일 없이 단조로운 인생을 길게 사는 것보다 짧지만 열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비상식적인 삶을 살 운명이다."
  • 탈성장은 도전이자 도박이다. 탈성장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는 여러 가지 믿음에 대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이 구호는 진보와 발전을 찬양하는 사람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고 모독이기 때문이다. 탈성장은 일종의 도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탈성장은 필요하다 해도 검소한 생활에 의한 자율 사회의 실현만큼이나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성장의 도전은 북돋울 만한 것이며, 그 도박은 시도할 만한 것이다.
  • 자연에 대한 투쟁이라는 산업주의적이고 약탈적인 개념은, 생태학적인 균형을 존중하면서 자율성과 식량, 에너지 주권의 추구를 목표로 하기 위해 파기되었다.

 

 

1부 끝없는 경제성장이라는 궁지로부터의 탈출

 

  • 지상에 있는 것, 즉 우리 주변에 있는 것만을 탐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구하고 품위 있을까.
  • 탈성장의 주체는 다양한 개인으로서의 모든 사람이고, 특수하고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이다. 탈성장은 한 개의 대안 모델이 아닌 다양한 대안의 모태이다.
  • 지속가능한 개발은 정부가 환경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때로는 그러한 위험을 무시하면서 자연 자원의 집중적인 착취와 국토의 산업화를 권장하고 있다.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유토피아는 단지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이데올로기로 위장한 것의 잔재일뿐이다.
  • 열산업 시스템이 그 창조적이고 파괴적인 잠재력을 드러내는 것은 마케팅의 발명과 그에 따라 소비사회가 태동하는 1950년 경이다. 소비주의적인 사회체제의 세 가지 축은 한없이 소비 욕구를 재생시키는 '선전광고', 과잉채무 때문에 빈털터리가 된 사람에게도 소비수단을 제공하는 '신용대출', 수요의 정기적 갱신을 보장하는 '제품의 의도적인 진부화'이다. 이로써 사회는 대재앙을 낳는 구조를 구축한다.

2부 행복의 길: 경제로부터의 탈출

 

  • 경제성장이 만족스러운 삶을 자동으로 만들어 낸다면 지금쯤 우리는 낙원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이유는 경제성장에 따른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채굴, 폐기물과 오염증가로 생태계가 파괴되며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 국민총생산이 마치 '국민 삶의 질의 총계', '국민 쾌락의 총계', '국민 행복도의 총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총생산 - 국민오염생산의 총계 라는 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 문제는 '지속가능한'이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이라는 개념에 있다. '발전'과 '경제성장'은 그 어떤 형용사를 붙이려해도 유해한 언어이다. 이 단어는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에 부여한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사회 일반의 이익이라는 환상 뒤에 자본의 이익을 은폐하고 희생자들의 저항운동을 마비시키는 일이다.
  • 경제관념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첫걸음은 세 가지 허구적 상품 즉 노동, 토지, 화폐의 '탈상품화'이다. 
  • 20세기 후반에 '발전'이라고 말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계적 노동을 위해 저렴하고 풍부한 석유를 이용한 것이다.
  • 생태학적 합리화의 의미는 '더 적은, 그러나 더 좋은'이라는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 학교제도는 불평등한 문화자본을 가진 다양한 아이들을 경쟁에 몰아 넣는다. 학교교육의 실패는 '불만의 학습'에 있다.

3부 사회 변혁을 위한 여러 갈래 길, 다양한 목소리

 

 

4부 탈성장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경제학은 엔트로피, 즉 에너지와 물질의 변환 불가역성을 무시한 것이다.
  • '지속가능한 발전'의 코미디에 이어 도입된 '녹색 경제성장'은 '녹색자본주의'와 '환경과 양립하는 자본주의'의 사기에 여전히 빠져있다. 녹색 경제성장의 문제는 Greenwashing에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 오랫동안 오염이 서서히 진행되도록 오염물질을 천천히 배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4부 탈성장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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