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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by mubnoos 2021. 4. 21.

전쟁일기 - 비트겐슈타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기록한 일기장

 

  • 이틀 전에 징병검사를 통과하고 크라카우 제2요새 포병연대로 배치받았다.
  • 완전한 분석이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철학의 과제는 대체 무엇인가?
  • '자명함'이 항상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고, 예전에도 그랬다는 사실은 명료하다.
  • 어떤 의미에서, 논리에서는 오류를 범할 수 없어야 한다. 이것은 ‘논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에 이미 부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대단히 심오하고 중대한 깨달음이다.
  • 어떤 진술이든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겨냥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장이 가능하려면, 즉 어떤 문장이 의미를 갖는게 가능하려면, 세계는 이미 그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논리는 모든 진리와 거짓에 선행한다.
  • 모든 지칭 방식이 불충분한 이유는, 필수적인 논리적 속성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기호 조합에는 우리가 원하는 의미를 모사할 능력이 없다.
  • 하나의 사태가 사유가능하다는 것의 의미 - 우리는 사태에 대한 영상을 그릴 수 있다.
  • 다친 발 때문에 오전에 의무대에 갔었다.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많이 작업하지 못했다. 니체 8권을 사서 읽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적개심에 감정이 크게 동했다. 그의 글에도 어떤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행복으로 이끄는 유일하며 확실한 길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 행복을 내팽개친다면 어떠한가?! 불행한 채로, 외부 세계와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다가 파멸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삶은 무의미하다.
  •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글은 하나의 거대한 문제에 대한 것이다: 세계에는 선험적 질서가 있는가? 만약 질서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 오컴의 면도날이 말하는 바는 불필요한 기호단위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언제나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신의 은총으로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때때로 공포가 엄습해온다. 이곳은 잘못된 인생관을 가르치는 학교다! 사람들을 이해하라! 그들을 증오하고 싶을 때마다, 대신 그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라. 내적 평화에 의지해서 살아라! 하지만 어떻게 내적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오직 신의 뜻대로 사는 것밖에는 없다. 오직 그렇게 해서만 삶을 견뎌낼 수 있다.
  • 명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경우가 사실인지에 관계없이 그 문장이 진리인지 거짓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행복한 자는 현존의 목적을 달성한다.' - 도스토예프스키
  • 하나의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신을 믿는다는 것은, 세계의 사실들로는 아직 해결이 나지 않았음을 보는 것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삶에 의미가 있음을 보는 것이다. 행복한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 속에서 살지 않고, 현재 속에서 사는 자만이 행복하다.
    현재를 사는 삶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세계의 사실들 중 하나가 아니다. 영원을 무한히 지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비시간성으로 이해한다면, 현재 속에서 사는 자가 영원히 산다고 할 수 있다.
  • 어떤 의미에서 소망하지 않음만이 유일하게 선한 것으로 여겨진다.
  • 윤리는 보상이나 징벌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은 명료하다.
  • 우리 경험의 어떤 부분도 선험적이지 않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가 기술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 어제 총격을 받았다. 겁에 질렸다!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살려는 소망이 이제는 얼마나 간절한지 모른다! 그리고 한번 생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것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이것이 바로 ‘죄악’이며, 비이성적인 삶이며, 잘못된 인생관이다. 나는 때때로 짐승이 된다. 그러면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다.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마치 한 마리 짐승처럼 고통받고, 내적 구원이란 불가능한 것처럼 그렇게 고통받는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욕정과 반감들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때에 진리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모든 것이 있는 방식이, 곧 신이다. 신이란, 모든 것이 있는 방식이다. 오직 내 삶의 유일성에 대한 의식에서만 종교와 학문과 예술이 기원한다.
  • 3일간 기차로 이동한 후, 진지를 향해 행군하기 시작했다. 건강도 그다지 최상의 상태가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저열함과 악랄함으로 인해 영혼은 엉망진창이다. 영혼의 병에도 굴하지 않을 힘과 내적 강함을 신께서 내려주시길. 신께서 나의 기쁜 마음을 지속시켜주시길.
  • 예술 작품이란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본 대상이다. 좋은 삶은 영원의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다. 이것이 예술과 윤리의 연결지점이다.
  • 예술의 기적은,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있는 것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 관념론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인간들을 분리해내고, 유아론은 나 혼자만을 분리해내며, 마지막으로 나는 나 또한 나머지 세계에 속합을 보게된다. 그리하여 한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른 한편에는 유일무이한 세계만이 남게 된다. 관념론을 엄격하게 끝까지 사유해내면 실재론에 도달하게 된다.
  • 올바른 철학의 방법은 말해질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오직 자연과학적인 것, 즉 철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하려 한다면, 그럴 때마다 그가 자신이 사용한 문장의 몇몇 기호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그 사람에게는 불만족스럽겠지만(그는 우리가 그에게 철학을 가르친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mubnoos

비트겐슈타인은 간지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