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자유죽음 / 장 아메리

by mubnoos 2025. 1. 9.

 

 

1978년 10월 17일, 이 에세이가 출판된지 2년 후 아메리는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자유죽음을 실행하였다. 

 

 

 

행복한 사람의 세상은 불행한 사람의 세상과 다르리라. 죽는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저 멈출 뿐이다. - 비트겐슈타인


| 1장 | 뛰어내리기에 앞서

"뭐 다 살라고 하는 일이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일들을 두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자유죽음을 찾는 이는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혹은 둔중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살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 나는 아니야! 나는 원치 않아. 밖에서는 사회의 법으로, 안에서는 자연법을 느끼도록 충동하는 강제 앞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사회의 법이든, 자연법이든 나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어. 이게 바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 2장 |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늙고 병들어 죽는 자연적인 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적인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훨씬 반자연적일 수도 있다. 자유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은 자연적인 죽음이 가지고 있는 반자연성을 미리 감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하려는 사람이 자유롭게 택한 죽음의 자연성을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로써 세상이라는 전체 그림은 확 뒤 바뀐다. 이제는 죽음의 얼굴도 다른 용모를 한다. 죽음은 일방적으로 몰아내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방적인 몰아냄으로써 죽음이 왜곡되고 비틀려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편견 ㅇ벗이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리의 지평 앞에 새로운 휴머니즘이 떠오른다.

 


| 3장 | 손을 내려놓다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타인의 의지에 자신을 맡겨버린 사람과 다르다. 타인의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죽음은 사건인 반면,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언제까지 살 것인가 스스로 결정한다. 남의 구원을 바라는 따위의 운명에 대한 기대를 전혀 갖지 않는다. 아마도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과 나눌 대화,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심판을 받은 나를 몰아내버리는 대화가 이뤄지고 난 다음, 드디어 자유롭게 선택한 순간이, 손을 내려놓을 냉엄한 순간이 찾아온다. 

 


| 4장 | 나 자신에게 속하자 

자살자는 천재만큼이나 드물다. 비록 불쌍한 개를 보듯 아무도 눈물을 흘러주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자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공허함 속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든 학문에서든 현실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 단호하게 경쟁하는 적수가 자살자이다. 그는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을 안다. 

 


| 5장 | 자유에 이르는 길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어리석은 짓은 아니다. 자유죽음이 갖는 부조리함은 인생의 부조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준다. 적어도 우리는 자유죽음이 인생과 관련한 모든 거짓말을 회수하게 만든다는 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오로지 그 거짓이라는 성격 때문에 괴롭게 만든 것을 자유죽음은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일종의 통로, 절대자에 이르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 모든 죽음보다 자살이 훨씬 덜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 게랄트 휘터  (0) 2025.01.09
인간의 본질 / 로저 스크루턴  (0) 2025.01.09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0) 2025.01.09
IBK 473  (0) 2025.01.07
희랍어시간 / 한강  (0) 2025.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