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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가족 / 가노 쓰치

by mubnoos 202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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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ㆍ갓난아이와 단둘이 남은 엄마는 싱글맘이 되었지만, 홀로 나를 키우지 않았다. 새 파트너와 함께 키우지도 않았으며, 본가에 돌아가지도 않았다. 대신 한 장의 전단을 사람들에게 뿌렸다. 아들을 함께 키울 사람을 구하는 전단이었다. 

 

ㆍ돌보미들은 시간표를 짜서 엄마가 집을 비웠을 때 돌아가며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는 돌보미들에게 식사와 맥주 정도는 제공했지만, 돈은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공동육아는 공동생활로 옮겨갔다. 다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 엄마와 나, 다른 두 모자, 청년 몇 명이 3층짜리 연립주택을 빌렸다. 엄마가 집을 비우면 다른 아이의 엄마나 집에 놀러온 어른이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ㆍ엄마가 전달을 뿌리면서 시작된 이 공동육아의 형태를 함께 살던 어른들은 '침몰가족'이라고 불렀다. 

 

“내가 공동육아의 힌트를 얻은 것도 과거에 공동육아를 했던 사람들이 세상에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야. 그래서 침몰가족을 보고 힌트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어.” 내 어린 시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아이 가운데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도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누구라도 옆에 있어 준다면 아이는 대체로 잘 자란다.

 


1장 침몰가족(8개월~두 살 반)

 

ㆍ모든 어른이 항상 돌봄을 위해 침몰가족에 찾아온 건 아니었다. 침몰가족에 가면 누군가가 있다. 술을 마실 수 있다. 아이와 만날 수 있다. 치유된다. 

 

ㆍ오늘날 일본은 이유를 요구하는 시대다. 무슨 일이건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꿈이 없으면 안 된다. 목표가 없어서도 안 된다. 무언가 행동할 때 그것을 하는 이유를 요구한다. 물론 이유는 있어도 된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침몰가족은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명확한 콘셉트도 없었다. 다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인정해주는 장소였다. 그렇게 침몰가족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모이는 곳이 되었다. 

 

ㆍ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섹스도 못 하는 청년들. 낙오연대는 세상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뒤처져도 괜찮다며 결정한 모임이었다.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아이를 키우느라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공동?) 육아 참가자 모집 중. 나는 쓰치를 만나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공동육아라는 말에서 공동은 대체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아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등 아이와 지내다 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2장 가노 가문(탄생 전)

 

하지만 주어진 환경의 특권으로 선택하는 자유는 반대한다. 할머니는 여성사 연구자였다. “가노 미키요는 제 할머니입니다”라고 상영 후 토크에서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할머니를 ‘민바’라고 불렀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히로시마에 있는 요코가와시네마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니가타의 니가타시민영화관시네윈도에서 내 영화를 상영했을 때 할머니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보러 와주었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 감상과 함께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를 인터뷰한 『젠더 연구를 계승하다』라는 책에는 상세 프로필이 실려 있었다[한국에 『천황제와 젠더』와 『대화를 위해서』가 번역되었다]. 1940년 일본 통치하의 경성(현재 서울) 출생.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어학 수업에서 한국어를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단다”라고 처음 알려주었다. 할머니에게 일상 회화를 공부한 성과를 자랑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한국어가 유창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ㆍ'쓰치' - 일본어로 흙이라는 의미


3장 쓰치의 발생(탄생~8개월)

 

ㆍ침몰가족은 여러 어른에게 키워진 아이에 주목하기 쉽다. 하지만 침몰하우스 생활은 여러 아이가 산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4장 전우, 메구(두 살 반~여덟 살)

 

 

5장 하치조지마(여덟 살~열여덟 살)

엄마와 둘이 살면서 나 ‘자신’의 선택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말을 듣기만 하면 되는 식으로 점차 달라졌다. 함께 살았던 어른들을 촬영하러 갈 때, 그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긴장되었다. 영화에는 빠졌지만, 자주 나와 놀아주던 안초 씨의 집을 찾아가 술을 마시며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너는 말이야, 그런 환경에서 자란 괴짜계의 금수저인데 평범하게 커버렸네. 그러면 안 돼.”물론 농담 섞인 말이기는 했지만 나는 억울했다. 그 밖에도 차분한 모범생 같다는 말도 들었다. 기억 저편에 있는 폭군 쓰치는 하치조지마로 이사한 뒤 사라진 것 같았다. ‘괴짜계의 금수저’라는 혈통은 엄마와 둘이 사는 동안 끊어지고 만 것일까.

 

6장 아버지 야마 씨(배 나온 20대)

 

 


7장 돌보미들(아이에서 어른으로)

침몰가족은 당시 새로운 대안의 삶으로 미디어에 소개되었다. NHK ‘쓰치 군 두 살 우리들의 육아일기’(1996년 9월 17일 방송), 후지TV ‘우리 애를 키워보실래요?: 침몰가족이라는 시도’(1998년 5월 17일 방송), 요미우리신문 ‘가족의 형태 NOW: 따뜻한 관계를 찾아 혈연이 아닌 일곱 명의 편안한 공동생활’(1998년 3월 28일 기사) 같은 타이틀을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 5월 잡지 『현대사상』의 스트릿 컬쳐 특집 기사에서 「돌봄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침몰가족’ 공동육아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침몰가족을 소개했다. 돌보미들과의 대담 속에서 엄마는 “딱히 무언가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고 어느새 보니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침몰가족은 종교적·정치적인 신념을 공유하는 운동이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위한 모임이었다.

 


8장 극장 개봉(쓰치, 감독 되다)

 

방송이나 인터넷 미디어, 신문에서도 「침몰가족」이 다뤄졌다. ‘독박 육아’, ‘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서로 지지하는 공동체’ 등 이 영화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될 주제가 풍부하다. 여러 취재 요청을 받으면서 지금 일본 사회는 침몰가족에 주목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영화를 통해 풍요롭게 살아가는 힌트를 얻고 육아 스트레스에서 잠시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뜻밖의 발견이었다.

 

ㆍ경제적으로 빠듯한 싱글맘과 갓난아이를 구해준 사람은 분명 그곳에 와준 사람들이었다. 의무도 계약도 없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느슨한 관계.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엄마에게는 그러한 장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다른 누구보다도 부모가 가장 아이에게 애정으로 대해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면, 엄마는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혼자서 나를 키울 수 없음을 인정한 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할 수 없다’라는 지점에서 시작해 전단을 뿌린 결과 많은 사람이 엄마에게 걸려들었다. 나는 그 판단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9장 인간 해방(앞으로의 쓰치)

 

ㆍ아이는 원래 어른보다 훨씬 사람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른이 점점 사람을 구별하도록 가르친다. 

 

ㆍ엄마는 가족 해방이 아니라 인간 해방이라고 썼다. 아주 희망적이다. 가벼움, 느슨함, 여러 화살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듯한 이 단얼르 보고 엄마가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있었어?" "아니 딱히, 어쩌다 생겼어. 너라는 존재는."

ㆍ아이는 태어날 가정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는 본래 가엾은 존재다. 부모의 경제 상황이나 직업, 사는 곳, 무엇을 먹을지 아이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불행하다. 그래서 부모나 가까이에 있는 어른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침몰가족에서 자라며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적어도 침몰가족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행운이다. 

 

ㆍ특별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특별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ㆍ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탄생하는 건 아니다.

 

ㆍ엄마는 무언가 거창한 철학이나 운동에 말려들지 않고 오로지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진지하다. 

 

 

 


에필로그

 

ㆍ기억이란 생각보다 더 불안정함을 새삼 깨달았다. 나의 기억이 정말로 당시 체험에 근거한 것이지, 아니면 이후에 본 기록에서 재구성한 것인지는 나도 자신이 없다. 

 

ㆍ같은 장소에 있는 것에서 시작하는 침몰가족은 현대에는 리스크가 높은 공동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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