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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 / 질 들뢰즈

by mubnoos 2021.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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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20세기 형이상학, 프랑스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에 이어 자연주의적, 유물론적 형이상학의 현대적 형태 개척
사건과 욕망으르 다루며 후기 구조주의 사유에 형이상학적 깊이를 부여했다.

질 들뢰즈/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

  •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라캉 등에게서 많은 영향.
  • 문학과 예술  + 철학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흄, 칸트, 니체, 베르그송, 푸코 프란시스 베이컨 을 재해석 +
    다방면의 개념들(신체, 차이, 감각, 사건, 정신분열, 반복, 영화, 철학 등)을 무한 질주하는 '생성의 철학자'
  • 교류: 정신분석학자 라캉(Jacques Lacan), 화가 폴록(Jean Pollock), 소설가 클로소프스키(Pierre Klossowski)
  • 들뢰즈 & 정식분석학자 가타리와 협업
  • 1995년 70세,  오랜 병고 끝에 살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자살
  •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자 해석 방법을 "항문 성교(enculage): 뒤를 파고들어가 자기 것 같을 뿐 아니라 기이하고 색다른 '새끼'를 낳는다는 의미
  • 고의적으로 이단적
  • 스피노자를 반복한다. 사회의 전통적 자유 모델의 관점에서, 도덕은 개체에서 출발하며, 이들은 추상적인 자연권이나 그들 자신 혹은 에 의해 정해진 의무를 부담한다
  • 주요저서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는 들뢰즈 사유의 허리에 해당하는 저작/ 윤리, 언어, 사건, 정신분석

 

‘사건’과 ‘의미’를 동시에 사유하는데, 사건이 곧 의미고 의미가 곧 사건이다.

 

물질의 차원과 문화의 차원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인 사유의 틀을 제시

 

 

 

1부

 

34개 계열

 

1~17: 들뢰즈의 사유

 

18~26스토아 철학

 

27~34: 정신분석학

 

 

 

 

 차이성은 동일성에서 파생된 것이다.

 

모든 동일성이란 차이성의 결과이다.

 

우리가 개체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범주가 원래 차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타낸다.

 

현실에 정직하게 직면하기 위해 우리는 존재와 정확한 그대로를 파악해야 하며, 동일성의 개념들(형식, 범주, 유사성, 통각, 술어 등)은 그 자체로 차이를 이룰 수 없다

 

 

 

 

 

 

들뢰즈와 사건의 존재론 - 이정우

 

들뢰즈의 사유는 베르그송과 구조주의를 '지양시킨' 것이라고 말할 법하다. 우리는 들뢰즈의 사유를 생성이나 운동의 사유로 부르기보다는 '사건의 사유'라고 부른다. 생성, 운동과 사건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건이란 단지 자연철학적, 형이상학적 맥락에서의 생성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의 생성이다. 대개 의미와 사유는 대립하거나 단절되어 왔다. 이는 한편으로 생성의 사유가 자연철학적,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의미의 사유는 문화적 심급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생성의 사유가 주로 반합리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반면 의미의 사유는 합리주의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베르그송에게서 만족스러운 의미론을 찾을 수 없고, 구조주의에서 포괄적인 자연철학이나 형이상학을 찾을 수 없다.

 

 

들뢰즈는 사건과 의미를 동시에 사유함으로써, 아니 사건이 곧 의미이고 의미가 곧 사건임을 보여줌으로써 베르그송적인 지속의 철학, 자연철학과 구조주의적인 합리주의 철학, 문화철학을 차원 높게 지양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사유:플라톤과 스토아 학파(1,2계열)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는 '비물질적인 것들'(asomata)을 둘러싸고 대립한다. 플라톤에게 비물체적인 것은 물체적인 것 저편의 본질적인 것, 실재이다. 반면 스토아 학파에게 비물체적인 것은 물체적인 것 이편의 존재, 물체적인 것의 '표면 효과'이다. 보름달은 둥그렇다. 플라톤에게 이 둥그럼은 달의 질료에 구현된 하나의 형상이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에게 이 둥그럼은 달의 질료가 일정하게 배치됨으로써 생기게 된 표면 효과이다. 플라톤의 경우, 달이 변화해도 둥그럼의 형상 자체는 하등의 변화를 겪지 않는다. 스토아 학파의 경우, 달이 변화하면 둥그럼 자체도 변화하는 것이다.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이러한 차이는 '사건'의 이해와 관련해 결정적이다. 플라톤에게 사건이란 순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비실재적인 것이다. 사건이란 비실재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비실재적인 것, 즉 '환각'(phantasma)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뮬라크르'라는 ㅁ라이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사건이란 이해 불가능한 것이며, 형상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스토아 학파에게 사건이란 물체의 표면 효과이며 '말로 표현되는 것'(lekton)이다. 축구 선수가 공을 넣는 사건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 사건은 다음날 아침 스포츠 신문에 언어화되어 실리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스토아 학파의 이 사건 개념을 받아들여 사건을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철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물체적 차원에서는 일종의 음파이지만, 그 음파는 무노하라는 장(場)을 향해 퍼져 나가는 순간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건이란 물체의 표면이자 문화의 밑바닥, 즉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 상에서 발생한다. 들뢰즈가 '형이상학적 표면'이라고 부르는 이 경계면이 모든 문화의 선험적 조건을 형성한다. 시뮬라크르-사건은 이 표면에서 솟아오른다.

 

 

들뢰즈는 이 시뮬라크르, 사건, 의미를 사유하고자 한다. 즉, 영원한 것을 찾으려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사유가 사유의 번방으로 밀쳐놓은 시뮬라크르들을 사유하고자 한다. 시뮬라크르들은 순간적이다. 나폴레옹이 왕이 된 것은 그의 머리에 왕관이 얹히는 순간이고, 한 사람의 야구 선수가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는 그가 친 공이 펜스를 넘기느냐 못 넘기고 잡히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삶은 시뮬라크르들로 구성되며, 이 시뮬라크르들이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준다. 서구 사유는 이 시뮬라크르들을 형상의 반대편에 위치시켜 저 먼 지하로 추방했으나, 현대 사유는 '시뮬라크르의 복권'을 꿈꾼다. 『의미의 논리』는 시뮬라크르-사건에 대한 탐구이다.

 

 

들뢰즈는 기존의 의미론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본다.
1)하나는 '지시작용'에 기반하는 이론으로서 이는 실증주의 철학에 입각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 기호의 의미란 그것의 지시 대상이며 기호는 세계로부터 일정한 대상을 개별화해 지시하는 존재이다.

 

2)다른 하나는 '현시 작용'에 기반하는 이론으로서 이는 현상학에 기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의미란 기본적으로 주체 또는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란 주체의 신념이나 욕구를 드러내는 존재이다.

 

3)마지막의 세 번째 의미론은 '기호 작용'에 기반한 이론으로서 이는 구조주의 철학에 입각한 의미론이다. 이에 따르면, 의미란 기호들 사이의 차이들에 의해서 형성되며 기호들이란 한 체계의 요소들을 형성한다.

 

들뢰즈는 사건이란 지시될 수 없다고 본다. 붉음과 푸름은 지시될 수 있지만 붉음에서 푸름으로 생성 자체는 지시될 수 없다. 지시란 지시 대상의 일정한 개별화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또 들뢰즈란 의미란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의미란 존재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며, 주체의 구성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들뢰즈는 의미란 기호 작용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사건이란 존재 세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기호 체계 바깥의 그 무엇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이 세 가지 의미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건으로서의 의미라는 그의 의미론을 가지고서 이 세 가지 이론을 동시에 정초하고자 한다.

 

 

 

들뢰즈는 의미를 '명제 안에 존속하는 순수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순수 사건이란 잠재적 사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사건이다. 다시 말해, '떨어뜨렸다', '떨어뜨릴 것이다', '떨어뜨릴 수 있다' 등등이 아니라 '떨어뜨리다'라는 부정법으로 표현되는 사건이다. 이 순수 사건이 현실화되면, 그 사건은 명제로 표현된다. 이때 순수 사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명제 안에 존속하게 된다. 들뢰즈는 이 명제 안에 존속하는 순수 사건이 바로 의미라고 본다. 지시 작용, 현시 작용, 기호 작용은 이런 과정 이후의 일이다.

 

​들뢰즈의 언어철학을 『지식의 고고학』에서 전개된 푸코의 언표 이론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인식론은 규칙성이 많이 들어간 언어만 다루어왔다. 그러나 푸코는 우리에게 아직 조직되지 않은 차원, 조건들이 부과되지 않은 차원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한 'A,Z,E,R,T'의 예는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것이다. 문장이나 명제나 기타 등등으로 조직되기 이전의 가능성의 장, 질료 상태의 장이 바로 언표장이고, 이 장은 결국 돌뢰즈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표면'과 매우 유사하다(『지식의 고고학』과 『의미의 논리』가 1969년 같은 해에 나왔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국 푸코와 들뢰즈는 전통 철학에서 다루어온 언어적 층위보다 더 내려가, 물질적 차원과 맞닿아 있는 가장 아래의 층위에 주목한다. 이런 과정은 많은 조건들이 부과된 고전 음악이 그 조건들을 상당부분 떨쳐버린 낭만주의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무조 음악, 불레즈 등의 음악으로 진화해온 과정과 흡사하다. 

 

 

 

계열화(6,7계열)

​세계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존재론적 틀이 있다. 형상 이론, 유기체론, 원자론, 지속 이론  등이 이들이다. 현대 철학이 특히 선호하는 존재론적 틀이 있다면, 그것은 곧 '계열'의 사유이다. 특히 스토아 학파와 라이프니츠를 잇고 있는 들뢰즈에게 계열 개념은 핵심적이다. 들뢰즈는 사건이란 계열화됨으로써 의미로 화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사건이 그대로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이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자동차의 물리적 변화나 사람의 세포에서의 변화는 자연적 과정이며, 그것 자체만을 추상해 생각했을 때는 무의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이미 존재하는 문화장 내에서 계열화되며, 계열화되는 순간 의미로 화한다.  때문에 들뢰즈는 사건이란 무의미와 의미의 두 얼굴을 가진다고 본다. 물리적 변화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이지만, 문화 세계 내에서 계열화됨으로써 의미로 화하는 것이다. 사건이 자연과 문화의 경계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계열화 중에서 특히 '합언'(connexion), '선언'(disjonction), '연언'(donjonction) 세 가지를 중시한다. 합언은 작은 계열들이 모여 큰 계열을 이루는 경우이고, 선언은 계열들이 발산하는 경우이며, 연언은 수렴하는 경우이다. 이 세 계열화는 『안티오이디푸스』 1장의 처음 세 절을 구성하며, 사회-역사적 논의로 이어진다. 합언은 생산과 대응하며, 선언은 배부과, 연언은 소비와 대응한다. 28,29.

 

 

 

구조(9,10계열)

계열들이 모이면  구조를 형성한다. 때문에 들뢰즈에서의 구조란 레비-스트로스에게서처럼 체계적이고 닫힌 구조가 아니라 계열들이 얼기설기 모여 형성하는 열린 구조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미개 사회를 연구하면서 '포트라치'의 문제에 부딪쳤고, 그 문제를 '떠다니는 기표' 개념을 통해 다소 억지스럽게 해결했다. 들뢰즈는 이 '떠다니는 기표' 개념을 일반화 하며, 어떤 구조든 그 구조를 역동화시키는 '우발점'을 내포한다고 본다. 라캉이 예로 든 포(Poe)의 『도둑맞은 편지』에서의 편지, 『오셀로』에서의 수건 등이 그 예이다. 들뢰즈는 이 우발점(이를 '빈 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개념을 가지고서 구조주의를 역동화한다. 프티토는 후기 구조주의를 '역동적 구조주의'라 부른 바 있다.

 

이 사건 하나하나를 들뢰즈는 '특이성' 또는 '특이점'이라 부른다. 특이성 및 특이점은 보통점과 구분된다. 르네 톰은 특이한 형태의 특이성 이론을 수립한 바 있으며, 들뢰즈는 이 특이성을 순수 사건과 동일시함으로써 존재론의 개념으로서 확립한다. 들뢰즈에게는 이 특이성의 체계가 구조이다. 이 특이성은 잠재성의 양태로, 부정법의 양태로 존재한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라는 특이성은 카이사르 안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현실의 수준에서 이 잠재성은 "루비콘 강을 건널 것이다"로 표현된다. 그리고 카이사르가 실제로 루비콘 강을 건넜을 때,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는 표현이 성립한다. 구조란 이러한 특이성들의 복수적인 잠재  공간이다. 

 

 

들뢰즈에게 특이성, 계열, 잠재적 장은 결국 구조주의에서의 요소, 관계 그물, 구조에 대응한다. 들뢰즈는 구조주의 사유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이 사유의 한계를 넘어 그것을 새로이 개념화하고 있는 것이다. 29,30.

 

 

 

무의미와 역설(11,12,13계열)

특이성의 공간은 "1이냐 -1이냐"에서 선택이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1과 -1이 동시에 성립하는 공간이다. 1과 -1은 다른 '방향'을 뜻한다. 이 점에서 프랑스어 'sens'가 의미라는 뜻 외에 방향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특이성의 세계, 잠재성의 공간은 바로 일정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이, 즉 'sens'가 아닌 'non-sens'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로부터 일정한 방향성이 현실화된다.

 

이 문제를 사건의 개념과 관련지어 보자. 앞에서 우리는 사건이 발생할 때, 그것은 무의미이자 의미라고 말했다. 왜 무의미인가? 그것은 아직 일정한 방향으로 계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그것은 동시에 계열화된다. 즉, 일정하게 방향지어진다. 이 방향지어짐을 통해 사건은 의미로 화한다. 이것이 사건이란 무의미이자 의미라는 말의 뜻이다.

 

한 사회, 한 시대에는 그 사회, 시대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일정하게 계열화하는 통념이 존재한다. 거지가 깡통을 발로 차면서 옮길 때, 경찰은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본다. 그러나 그 거지에게 그 행위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행위일 뿐이다. 경찰은 거지에게서 발생하는 사건을 통념에 비추어 계열화한 것이지만, 그 사건은 그 계열화가 아닌 다른 계열화도 잠재적으로 내포한다. 사회의 통념을 우리는 'doxa'라 한다. 이 통념을 거스르는 계열화는 우리는 'paradoxa'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존재론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일정한 코드, 즉 일정한 방향과 통념을 벗어나 무의미와 역설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무의미와 역설을 현실화할 수 있는 원초적 힘을 들뢰즈는 '욕망'이라고 부른다. 들뢰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건과 욕망을 사유하라! 이 욕망의 사유는 가타리와의 만남을 통해 개화하게 된다. 30,31.

 

 

 

스토아 학파외 도덕의 문제(18,19,20계열)

들뢰즈는 세 가지 유형의 철학자를 구분한다. 그 하나는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플라톤적 철학자이며, 다른 하나는 땅밑을 파고들어가는 자연철학자(예컨대 엠페도클레스)이다. 들뢰즈는 이 두 유형에 대비시켜 스토아주의자들을 논하며, 스토아 철학을 표면의 철학, 익살의 철학으로 규정한다. 물론 이 철학은 들뢰즈 자신의 철학이기도 하다.

 

나아가 들뢰즈는 스토아 철학을 선불교와 비교한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선승들은 공통적으로 방망이를 사용한다. 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라가지도 않으며 땅밑을 파들어가지도 않는다. 삶을 형성하는 수많은 게열들이 이들을 옭아매려고 하면 그때까지의 계열을 꺾음으로써 'doxa'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익살의 철학인 것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삶 속에서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이다. 스토아 학파는 사건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원하고 또 선용할 것인가를 사유했다. 그런 사유를 통해서 '운명에의 사랑'(amor fati)을 가르쳤던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는 이렇게 스토아 철학과 선불교에 접속됨으로써 현대 사유에 새로운 지평을 연다. 33,34.

 

 

 

사건, 행위, 시간(21,22,23계열)

들뢰즈는 이런 맥락에서 스토아 학파의 시간론을 크로노스와 아이온으로 대별해 논한다.  크로노스는 물체적 운동의 시간이다. 그것은 물체적 운동의 부산물이다. 철수가 산책할 때 산책의 시간이 성립한다. 우주는 타오르는 불이고 주기적으로 타올랐다가 꺼진다. 따라서 크로노스도 주기적으로 커졌다가 작아진다. 반면 아이온은 순수 사건의 시간이다. 그것은 곧 부정법의 시간이기도 하며, 비인칭적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온은 가장 짧은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이며(순수 사건은 순간적인 존재이므로), 가장 긴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다(순수 사건은 영원하므로). 크로노스와 아이온의 대립은 들뢰즈 사유 전체를 새롭게 정초한다. 34,35.

 

 

 

사건들 사이의 소통(24, 25, 26계열)

들뢰즈는 사건들의 계열화를 사유하면서 라이프니츠를 논한다. 들뢰즈에게 라이프니츠는 핵심적인 철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라이프니츠에게는 개체보다 사건들이 우선한다. 카이사르가 있어 "루비콘 강을 건너다",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다", "부르투스의 칼에 찔리다" 등등의 사건들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의 계열화를 통해서 카이사르라는 한 개체가 성립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반(反)주체주의적 사유를 전개시킴에 있어 라이프니츠에게 기대고 있다. 칸트와 대조적으로, 라이프니츠에게는 주체가 관점을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주체를 성립시킨다. 이 뒤집어진 구도를 이해하는 것이 들뢰즈 이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라이프니츠의 개념들 중 특히 중요한 것은 공가능성(compossibilite)및 불공가능성(incompossibilite)의 개념이다. 공가능성은 두 계열이 동시에 가능한 경우를 말하며, 불공가능성은 그 반대 경우를 말한다. 불공가능성은 모순과  다르다. 모순은 양자가 양립 불가능한 경우를 말하지만, 불공가능성은 양자가 모두 가능하지만 다만 같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계열은 서로 다른 '가능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니체와 더불어 어떻게 불공가능한 두 계열을 함께  긍정할 수 있는가를 사유한다. 이 점에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를 내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5,36.

 

 

 

물질에서 의미로(27,28,29계열)

동적 발생이란 물체의 운동을 통해서 의미가 발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의미가 객체, 인칭, 개념, 등과 관계 맺음으로써 지시 작용, 현시 작용, 기호 작용이 성립하는 '정적 발생'보다 더 심층적 차원에서의 발생이다. 들뢰즈는 동적 발생을 논하면서 유아 정신분석학, 특히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삼는다. 즉, 정신분석학에서 언어와 에고의 성립을 설명하는 논의를 토대로 동적 발생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유아의 성장 단계를 편집적이고 분열적인 젖먹이 단계, 우울증적인 유아(乳兒)단계, 성적이고 오이디푸스적인 단계로 나눈다. 젖먹이 단계에서 어린아이는 투출과 투입의 과정만을 겪으며, 따라서 물질적인/심층적인 단계에 머문다. 유아 단계에서 어린아이는 조금씩 '형이상학적 표면'(=객관적 선험)으로 올라오게 되며,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물질의 차원을 벗어나게 된다. 성적인 단계에 이르러 어린아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 에고와 형이상학적 표면이 형성된다.

 

될뢰즈는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을 스토아 철학을 논하면서 제시했던 심층, 상층, 표면의 사유에 상흥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아이가 차츰 형이상학적 표면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36.

 

 

 

환각, 언어, 사고(30,31계열)

들뢰즈는 심층에 '시뮬라크르'라는 말을(그러나 차라리 '혼돈'이나 '와류'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상층에 '우상'이라는 말을, 그리고 표면에 '환각'이라는 말을 대응시킨다. 환각이란 "무의식적 욕망의 실현을 그리는 상상적 각본"이다. 즉, 욕망의 가상적인 실현을 그리는 '각본'이 환각인 것이다. 그런데 들뢰즈는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구분보다 더 중요한 구분은 사태와 사건 사이의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사태와 순수 사건을 구분한다는 것은 사건-특이성-의미-환각-이마주 등등의 두 얼굴을 구분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한편으로 물질적 운동의 부대 효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것들인 것이다. 이런 논의를 통해 환각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논의는 사건/시뮬라크르에 대한 들뢰즈의 논의에 접속된다.

 

결국 환각/사건들의 탄생은 곧 의미의 탄생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환각의 탄생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더불어서라는 사실이다. 표면이 형성되는 것이 오이디푸스 단계에서이기 때문에, 환각, 사건, 의미, 이마주 등이 탄생하는 것도 바로 오이디푸스 단계에서인 것이다. 이때 팔루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아이는 팔루스라는 상상적 존재를 매개로 해서 엄마를 사랑한다. 즉 신체적/물질적 차원에서의 소통이 아니라 팔루스라는 탈물질적/관념적 존재를 가지고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어린아이가 이제 의미의 왕국으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환각-사건은 사물도 아니고 명제도 아니다. 환각-사건은 명제 안에 내속한다. 바로 명제의 동사 안에 내속하는 것이다. 환각에서 물질적인 면을 접어두고 순수 사건만을 추려냈을 때, 바로 이 순수 사건으로서의 환각은 부정법 동사 안에 내속하는 것이다. 또한 순수 사건은 아이온의 차원에 존재한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부정법의 차원은 곧 잠재성의 차원이다. 들뢰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신분석하의 논의를 존재론적 논의로 변환시킨다. 36,37.

 

이상에서 보았듯이, 『의미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사건이자 의미인 존재, 물질적 얼굴과 탈물질적 얼굴의 두 얼굴을 가진 존재를 다룬다. 그러한 논의를 통해 물질의 차원과 문화의 차원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인 사유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사건-의미들이 계열화되어 이루는 장을 제시함으로써 이른바 '역동적 구조주의'라고 부를 만한 종합적인 선험철학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사유의 성과를 잇고 있다. 그리고 동적 발생에 관한 논의를 통해 물질적 차원으로부터 어떻게 의미가 생성하는가라는 문제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들뢰즈의 작업은 결국 '현대 스토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천철학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들뢰즈는 그가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건의 존재론을 스토아 철학의 전통으로 연계시킴으로써 우리를 삶, 죽음, 운명에 관한 깊은 성찰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블랑쇼, 보르헤스, 피츠제럴드, 졸라 등등의 문학을 조명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들뢰즈의 논의는 선불교와 접맥되어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들뢰즈가 열어놓은 이 지평을 보다 구체적이고 풍요로운 형태로 전개시키는 것, 한편으로 서구의 사유 다른 한편으로 현대라는 시대가 매개된 새로운 형태의 도가/불가 철학의 제시라는 시대적 요청이 우리게게 던져져 있는 것이다. 38.

 

 

머리말: 루이스 캐럴에서 스토아 학파로/질 들뢰즈

 

의미 이론을 역설로부터 분리하기 힘들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미는 실존하지 않는 무엇이며, 나아가 무의미와 매우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캐럴을 중요하게 다룬 것은 그가 처음으로 의미의 역설들을 모으고 새롭게 바구고 발명하고 마련함으로써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의미와 무의미,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얽힘- '카오스모스'

 

 

1. 역설들의 계열 1 : 순수 생성

 

플라톤 - 두 구분

 

역설은 두 방향을 긍정한다.

para - doxa = contre-sens.

 

형상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것과 비켜가는 것 사이의 이분법이다. 그것은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이 아니라 복사본과 시뮬라르크들의 구분이다.

 

순수 생성, 즉 무규정적인 것은 그것이 형상의 작용을 비켜가는 한에서, 그리고 원본과 복사본에 동시에 저항하는 한에서 시뮬라르크의 질료이다.

 

현재를 비켜갈 수 있는 이 순수 생성의 역설은 다름아닌 무한한 동일성이다. 한계를 고정시키는 것은 언어이다.

 

앨리스의 모험을 구성하는 뒤 바뀜들, 즉 커지는 것과 작아지는 것의 뒤바뀜이 유래한다 - 원인과 결과가 뒤바뀜

 

 


2. 역설들의 계열 2 : 표면 효과들

 

스토아 학파 역시 두 종류의 사물을 구분했다- 사태:상태

 

물체들과 사태들의 유일한 시간은 현재이다. 살아있는 현재는 행위를 동반할 뿐만 아니라 능동태와 수동태를 표현, 측정하는 시간적 외연이다.

 

오직 물체들만이 공간 안에 실존하며, 현재만이 시간 안에 실존한다. 물체들 사이에 인과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물체는 원인이다. 무엇들의 원인인가? 그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진 어떤 것의 원인이다.

 

오직 현재만이 시간 속에 실존하며, 과거와 미래를 모으고 흡수한다. 그러나 과거와 미래는 시간 속에서 단지 내속할 수

있을 뿐이며 각각의 현재를 무한히 나눈다.

 

한계들을 설정하는 동시에 설정된 한계들을 벗어나는 언어

 

루이스 캐럴과 표면의 발견 - 물체들로부터 비물체적인 것으로의 이행은 경계선을 따라감으로써, 표면을 따라감을로써 이루어진다. 발레리의 심오한 말처럼 가장 심오한 것은 피부이다.

 

 

 

 

3. 계열 3 : 명제
'眞' 이란 하나의 지시 작용이 사태에 의해 유효하게 수행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시자들이 유효하게 사용되었다는 것 또는 적절한 이마주가 선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란 대상의 실존이나 상응하는 사태와 관련해 이마주의 내적인 인과율이다.

 

스토아 학파는 사건과 더불어 의미를 발견했다. 의미는 명제에 있어 표현된 것이다.

 

의미는 명제로 표현된 것 또는 표현 가능한 것이며, 동시에 사태의 부대물이다.

 

 

 

 

4. 계열 4 : 이원성

험프티 덤프티

 

5. 계열 5 : 의미

 

6. 계열 6 : 계열화

 

7. 계열 7 : 신조어들

 

8. 계열 8 : 구조

레비-스트로스 - 두 계열, 즉 기표 계열과 기의 계열이 주어졌을 때 하나는 과잉을 하나는 결핍을 드러내게 되며, 그 결과 두 계열은 영원한 비평형의 관계, 항구적인 자리옮김의 관계를 맺게 된다.

 

9. 계열 9 : 문제

 

10. 계열 10 : 탈물질적 놀이

 

11. 계열 11 : 무의미

 

12. 계열 12 : 역설

 

13. 계열 13 : 분열증과 어린 소녀

 

14. 계열 14 : 이중 인과

 

15. 계열 15 : 특이성

특이성들은 무의식적 표면 위에서 이루어지며 노마드적 배분에 의한 자가 통일화의 내재적이고 동적인 원리를 통해 작동한다.

 

 

16. 계열 16 : 정적발생(1) : 존재론

개체의 발생: 라이프니츠

공가능성 compossibilite

모나드 형성의 중심이 되며 또 각 모나드의 신체와 조합되는 특이성들만을 명료하게 내포한다.

 

 

17. 계열 17 : 정적발생(2) : 논리학

 

18. 계열 18 : 세 가지 철학자의 상

 

19. 계열 19 : 익살

 

20. 계열 20 : 스토아 학파의 도덕의 문제

 

21. 계열 21 : 사건

행위자는 표상한다.

그것은 현재의 심연이며, 현재 없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죽음 안에서 나는 죽지 않기 때문에, 나는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싱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있어 누군가가 죽는다. 누군가가 죽기를 멈추지 않으며 죽기를 끝내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간에게만 참이다.

 

 

22. 계열 22 : 자기와 화산

모든 인생은 물론 몰락의 과정이다 - 피츠제럴드

 

 

23. 계열 23 : 아이온

크로노스의 관점에서 보면 오로지 현재만이 시간 속이 실존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의 세차원인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만이 시간을 채우며, 과거와 미래는 시간안에서 현재에 상대적인 두 차원이다. 다시 말해, 일정한 현재와 관련해 미래인 것 또는 과거인 것은 보다 넓은 현재, 보다 큰 외연이나 지속의 부분을 형성한다. 과거와 미래를 흡수하는 보다 큰 현재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와 관련한 과거와 미래의 상대성은 현재들 자체 서로간의 상대성을 낳는다.

코르노스 내에서의 현재는 어떤 면에서 물체적이다. 현재는 혼합물들의 또는 물체화들의 시간이며, 물체화 과정 자체이다.

 

크로노스는 광대하고 심층적인 현재들에 의해 지배되는 운동이다.

 

아이온에 따르면 오로지 과거와 미래만이 시간안에 내속하거나 존속한다. 과거와 미래를 흡수하는 현재 대신 두 방향으로 현재를 매순간 분할하는, 현재를 미래와 과거로 무한히 분할하는 것이 미래와 과거이다.

 

언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이 새로운 세계, 비물체적 효과들 또는 표면 효과들의 세계이다.

 

 

24. 계열 24 : 사건들 사이의 소통

사건에 대한 최초의 위대한 이론가는 라이프니츠이다. '공가능한' 과 '공가능하지 않는' 이라고 부른 것은 동일한 것과 모순된 것으로 환원되지 않기 떄문이다.

 

긍정된 계열들의 발산은 카오스모스를 형성할 뿐 더 이상 세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25. 계열 25 : 일의성

양립불가능함은 두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과 세계 또는 개체 사이에 존재한다.

 

존재는 극히 다양한 사물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의 유일한 사건을서 모든 사건들에 대한 그 유일한 사건 - 존재의 일의성은 선언적 종합의 적극적 사용, 극단의 긍정과 일치한다.

 


26. 계열 26 : 언어

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건들이다. 사건은 언어에 속한다. 사건은 언어를 줄곧 따라다닌다.

 

 

27. 계열 27 : 구강성

 

28. 계열 28 : 성

 

29. 계열 29 : 좋은 의도들이 크게 벌받는다

 

30. 계열 30 : 환각

환각은 능동이나 수동을 나타내지 않으며 - 순수사건을 나타낸다.

 

 

31. 계열 31 : 사고

 

32. 계열 32 : 계열들이 상이한 종류

 

33. 계열 33 : 앨리스의 모험들

 

34. 계열 34 : 일차적 질서와 이차적 조직화

 

 

 

 

제2부

35. 보론 1 : 플라톤과 시뮬라르크

 

36. 보론 2 : 루크리테우스와 시뮬라크르

 

37. 보론 3 : 클로소프스키와 신체 - 언어

 

38. 보론 4 : 미셸 투르니에와 타인 없는 세상

 

39. 보론 5 : 졸라와 균열

 

40. 특별보론 :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오늘날의 형이상학은 들뢰즈와 데리다에 의해 대표된다.
- 들뢰즈: 베르그송, 화이트헤드에 이어 종합적인 세계관 -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의 존재론을 흡수 - 차이의 존재론 을 제시 - 69년에 만난 가타리를 만나 유명한 '노마돌로지'를 전개했다.

- 데리다: 니체와 하이데거이어 서구 사유의 해체

 

오늘날 사유한다는 것은 곧 들뢰즈와 대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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