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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움

by mubnoos 2021. 1. 26.

갑자기 어지러웠다. 말 그대로 '총 맞은 거처럼' 갑자기였다.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휘청거렸고 심지어 넘어질 뻔 했다.

(회사)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종류의 일은 내 삶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소파에 몸을 눕히고, 다시 괜찮아지길 눈을 감고 기다렸지만, 이건 확실히 뭔가 잘못된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더 두려웠다. 눈을 뜨고 자세를 고치고 앉아, 시야의 초점을 맞추려고 해도 빙글빙글 돌았다.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뇌에 침입해 맷돌을 돌리는 기분이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나의 이런 상황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망가진건가? 혹시 '보통의 때'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닐까? 이대로 고장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회사에서 근무는 커녕, 가족들이랑 같이 살 수는 있을까? 이대로 나는 그들의 짐이 돼버리는 걸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걸까? 공포다. 니체처럼 끝을 내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삶에서 받아들이는 것 외에,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걸까?

빙글빙글 휘청거리는 뇌는 하나씩 삶의 껍질들을 벗기는 작업을 했다. 결국에 남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무력감' 뿐이라고 생각을 할 때쯤,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회사에서 짐을 챙겨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니 어지럽고 토할거 같았다. 확실히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차)
막상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보니, 과연 집까지 무사히 운전하고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몸의 감각은 술을 마신 것처럼 무거웠다. 사고가 나면 어떻하지? 왜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거지? 아니 도대체 왜 그런거지? 무지는 나를 공포의 구석으로 몰았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건가? 예전의 나는 두렵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 신을 찾곤 했다. 도와달라고 이번 한번만 도와달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벌벌 떠는 손을 모아 기도하지는 않았다. 안 하려고 노력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왜 그런지 알기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왜 그런건지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집)
주차를 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보며, 여전히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야속하고 억울했다. 겨우 현관 문을 열고 들어와, 옷을 벗는 도중 구역질이 났고, 화장실 변기에 더이상 토할게 없을때까지 여러번 토했다. 머리의 세포들이 전기화학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니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얼굴에 묻은 눈물과 콧물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공포로 떨리던 몸이 좀 안정된 거 같았다. 그제서야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발견했다. 누워서 잤다. 자는 거 말고는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자야만 했다. 죽을 때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할거 같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아내와 딸이 집에 왔다. 4살이 된 딸은 아무것도 모른채,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누워있는 내 위로 올라와 '아빠, 일어나' 하며 토끼처럼 뛰었다. 내 얼굴을 조그마한 두 손으로 잡고, 손가락으로 눈을 벌려 뜨게 하려고 했다. 딸을 안았다.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외로웠거나, 힘들었거나, 두려웠거나, 무거웠거나, 감사하거나..혹은 전부거나.

삶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유발 하라리가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이 비로소 '현실reality'이라고 했던가.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기는 할까?

삶은 - 종이는 쉽게 구겨지고 찢어진다. 찢어진 종이는 산산조각 바닥에 흔적을 남긴다 -가벼우면서도 질긴 것 같다. 여전히 모르겠다. 머리가 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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