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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 M. 엘리아데

by mubnoos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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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ed & Secular

 

성스러운 것과 속세라는 대립된 개념으로 종교를 새로운 지평에서 이해한 책. 종교학의 기본 안내서지만 철학적 인간학, 현상학을 포괄하여 잠재적인 인간실존의여러 차원을 조명한 인문서이다. 성스러운 공간과 세 계의 정화, 자연의 신성과 우주적 종교 등을 설명한다.

 

성(聖)과 속(俗)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한다. 성은 속이 아닌, 속은 성이 아닌 것이다. 성과 속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리고 보는 자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이에게는 성스러운 것도, 다른 이에게는 하잘 것 없는 물건으로 보인다.

 

 

 

 

 

성과 속은 무엇인가· M. 엘리아데의『성과 속』

ㆍ성과 속은 반대되는 개념이다. 

 

ㆍ완전성에서 분리되었으므로 그 완전성으로 복귀하는 것이 구원이 된다. 성의 현상은 대단히 다양하지만 속에서 성을 회복해 내려는 태도는 공통적이다. 

 

ㆍ폴리네시아어로 터부의 반대말은 노아 noa 라고 하는데, 노아는 '자유로운'이란 뜻이 있다. 노아 상태에서는 세계 질서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한다. 

 

ㆍ터부는 세계에 관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믿어진다. 터부는 우주를 규율과 안정성 가운데서 지배하는 성스러운 법이 있음을 암암리에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ㆍ사회 질서가 자연 질서를 계속하여 반영한다는 생각은 민속 종교들의 믿음이다. 

 

 

ㆍ사회학파의 해석

 

1) 에밀 뒤르켐: 사회적 실재의 객관성에서 보는 성과 속의 성격 - 모든 종교적 신앙은 하나의 공통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2)막스 베버: 주관적인 종교 행위에서 보는 성과 속의 의미- 개인적 측면에서 특별한 행위의 결과를 살피지만 그것과의 연관으로써 사회적 구조를 동시에 보아야만 한다. 

 

 

ㆍ성속의 기원 문제에 대한 세 가지 답변

1) 성과 속은 동시적으로 생겨나온 것이다.

2) 성이 속에서 승화된 것이다.

3) 원래는 모두 성이었다. 

 

ㆍ성의 성격

1) 전통적인 인간들은 성에 가까이 살려고 한다. 

2) 성은 위를 향한 출구이다. 

3) 성은 공간적으로 세계의 중심이다.

4) 중심을 향하여 가는 것은 엑스터시와 같다. 

5) 성스러운 시간의 탄생과 재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 고대 종교 (가역적) / 그리스도교의 시간관 (불가역적)

 

 

 

 

 

 

 

 

 

 

제1장 성스러운 공간과 세계의 정화

ㆍ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이 균질하지 않다. 종교적 인간은 공간 내부의 단절과 균열을 경험한다. 공간이 균질적이지 않다는 종교적 경험은 하나의 원초적 체험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세계의 창조와 동일시할 것이다.

 

ㆍ전통 사회의 하나의 특징은 그들이 사는 영역과 그 영역을 둘러싼 미지의 불확정적인 공간 사이의 대립을 상정한다는 점이다. 

 

ㆍ우리에게 종교적 인간이란 가능한 한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살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대지의 중앙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는 자신들의 도시가 우주의 배꼽을 구성한다는 것, 더욱이 신전이나 궁전이 진정한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집이 중심에 존재하고 세계의 모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사실상 뒤에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집이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소우주적 차원에서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통 사회의 인간은 위로 열려져 있는 공간, 즉 상징적으로 지평의 단절이 보증된, 따라서 다른 세계, 초월적 세계와의 접촉이 의례를 통해 가능한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인간은 항상 중심에 살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친밀함을 느끼는 공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어떤 차원에 속하든지 간에 종교적 인간은 항상 전체적이고 조직된 세계 속에, 즉 코스모스 안에서 살기를 바란다. 우주는 그 중심으로부터 생겨난다. 즉 우주는 그 배꼽인 중심점에서부터 확장되어 나간다.

 

ㆍ'우리의 세계'는 코스모스이기 때문에 밖으로부터의 어떤 공격이든 카오스로 변화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신들의 모범적인 작업인 우주 창조를 모방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계를 공격하는 적은 신들의 적, 악마, 특히 악마의 두목, 태초에 신들에게 정복당했던 원초적인 용(龍)과 동일시되었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공격은 신들의 작업인 코스모스에 저항하여 그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려는 신화적인 용의 복수 행위에 해당했다. '우리의' 적은 카오스 세력에 속한다. 어떤 도시의 파괴는 카오스로의 전락을 의미한다. 침입자에 대한 승리는 용(즉 카오스)에 대한 신들의 모범적 승리를 재현하는 것이다. 

 

ㆍ집이란 '거주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은 산업 사회에서 대량 생산되는 수많은 기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의 이상적인 집이란 무엇보다도 기능적이어야 한다. 즉 집은 인간에게 노동과 그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휴식을 주어야 한다. 

 

ㆍ사람이 주거를 선택한다는 것은 세계의 창조를 시도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주거는 항상 성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왜냐하면 주거는 세계의 모상이며 세계는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제2장 성스러운 시간과 신화

ㆍ종교적 인간에게는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균질적이거나 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ㆍ종교적인 인간은 두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 더 중요한 성스러운 시간은 순환적, 가역적, 회복 가능한 시간이라는 역설적인 면으로 나타나고 의례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회귀하는 일종의 신화적인 영원의 현존을 나타낸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을 구분하기에 충분하다. 종교적 인간은 근대적인 용어로 역사적 현재에만 사는 것을 거부하고, 어떤 점에서는 영원성과 동일시될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을 다시 획득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 

 

ㆍ신이나 문화 영웅은 이제껏 속된 행위를 계시해 본 적이 없다. 신이나 선조들이 행한 것, 따라서 신화가 그들의 창조 행위에 대하여 말한 모든 것은 성스러움의 영역에 속하고, 그러므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인간이 자기 자신의 발의에 따라 행하는 것, 어떤 신화적 모델이 없이 행하는 것은 모두 속된 영역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헛되고 허망한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비현실적 행위이다. 인간은 종교적이 되면 될수록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인도할 모범적 모델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된다. 말을 바꾸면, 인간은 종교적으로 되면 될수록 실재에 더 많이 들어가게 되고, 비모범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결국 그릇된 행동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 신화의 측면이다. 신화는 절대적인 성스러움을 계시한다. 그것은 신들의 창조 행위를 말하고 신들의 작업의 신성성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신화란 성스러운 것이 세계 속으로 다양하게, 때때로 극적으로 침투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ㆍ종교적 인간은 속된 시간과 성스러운 시간이라는 두 종류의 시간을 체험한다. 하나는 흘러가 버리는 시간 지속이고 다른 하나는 성스러운 달력을 형성하는 여러 축제들 가운데서 주기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영원성의 연속이다.

 

 

 

 

 

제3장 자연의 신성과 우주적 종교

ㆍ종교적 인간에게 자연은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종교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ㆍ세계는 신들의 작품인 피조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 신의 작품은 항상 어떤 종류의 투명성을 지니고 있는데, 즉 스스로 성스러운 것의 여러 양상을 계시한다.

 

ㆍ천공 구조를 갖는 최고 존재자는 그 신앙 숭배로부터 점차 사라져 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서 멀리 있는 감추어진 신(dei otiosi)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신은 마치 창조라는 거대한 일에 그 힘을 전부 사용해 버린 것과 같이 우주와 생명과 인간을 창조해 버려서 일종의 권태를 느낀 것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그들은 하늘로 은퇴하고, 창업을 완성하기 위해 그 아들 혹은 조물주를 지상에 남겨둔다. 차차 그의 지위는 신화적 선조, 모신, 풍요신 등과 같은 다른 신격들로 대체되었다. (중략)최고 존재자가 그 본래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유목 민족뿐이다. 그것은 일신교적 경향을 갖는 종교(아후라-마즈다) 혹은 명확한 일신교(야훼, 알라)에서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대다수 아프리카 종족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천신, 지고존재자, 전능한 창조주는 부족의 종교 생활에서 사소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혹은 너무 선하기 때문에 일부러 숭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닥칠 때에는 마지막 원천으로서 그의 도움을 요청한다. 

 

 

 

 

 

 

 

 

제4장 인간의 실존과 성화된 생명

ㆍ종교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교적 인간의 행동과 정신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ㆍ삶은 이중의 지평에서 영위되는 생활이다. 즉 삶은 인간적 생존으로서의 길을 밟아가지만, 동시에 초인간적 생명, 우주 혹은 신들의 생명의 일부를 공유하는 측면을 갖게 된다.

 

ㆍ'통과 의례'는 종교적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ㆍ순수한 상태로서의 비종교적 인간이란 심지어 가장 탈신성화된 근대 사회에서조차 비교적 드문 현상이다. 비종교적 인간의 대부분은 비록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새해를 맞이할 때나 새집에 살게 될 때에 수반되는 축제는 비록 속화되기는 했을 망정 여전히 갱신의 의례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결혼, 아기의 탄생, 취임, 승진 등에 따르는 잔치에서도 이와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

 

ㆍ종교가 없는 사람의 대다수도 여전히 유사 종교와 타락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도 놀라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인간은 종교적 인간의 후예이며, 그는 자신의 역사를 지워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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