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삶이 살 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이다. - 플라톤
프롤로그
명예, 필멸의 존재이기에
ㆍ고전이란 모든 사람이 칭찬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 마크 트웨인
ㆍ핵심은 살아가다가 이들 화두와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곱씹어 보며 그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구축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입니다.
1 무엇이 좋은 삶인가
ㆍ'살아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총체적인 저항이다.'
ㆍ존재 지속의 욕구가 시들고 마침내 삶의 의지가 꺽이는 순간, 우리가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ㆍ죽지 않으려는 열망만이 우리를 생동하게 하며 존재를 단단하게 만든다.
ㆍ'칼립소' = '감추는 자'
ㆍ태어나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이 인간의 운명이며,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ㆍ어차피 죽는다면 불멸의 명성만이 인간에게 열린 유일한 불멸의 길이다.
2 누구에게 인정받을 것인가
운명, 피할 수 없다면
ㆍ명성이 없다고 하여 그의 삶이 잘못됐다거나 실패했다고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공자는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달랐다. 칭해질 정도로 해 놓은 것도 없고 늙어서도 죽지 않으면 '도적'이라고 단언했다.
ㆍ'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ㆍ감정은 바깥에서 들어오지 않고 '나' 안으로부터 비롯된다. 내면에서 일렁였다고 하여 반드시 밖으로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ㆍ'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공부'보다는 '자신이 떳떳해지기 위한 공부'
ㆍ명성은 명실상부하게 살아가는 삶의 부산물이지 결코 목적이나 수단 또는 대가가 아니었다.
ㆍ답을 구성해 내지 못한다고 질문이 무의미해짐은 아니다. 떄로는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값질 때가 있다.
3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고결하게 판단하라
ㆍ'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내가 나의 운명을 아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ㆍ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주어졌고, 내가 싫다고 피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운명일 것이다. 이 모든 운명 속에서 나의 삶은 이미 특정한 궤적으로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궤적, 그것에 순응하는 것이 운명에 충실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운명의 조건들에 불만을 품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저지르는 나의 모든 짓이 다 그 궤적을 이루는 과정인 것일까?
ㆍ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결국 운명을 만드는 힘이다.
ㆍ진리를 따르는 삶은 열려 있지만, 운명을 따르는 삶은 닫혀 있다.
4 진리를 따르는 삶은 열려 있다
행복, 삶의 목적이 다르다면
ㆍ운명이 사람을 늘 죽음으로만 몰고 가는 건 예외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본디 아무것도 없었던, 다릴 말해 소멸의 상태에 생명을 주어 사람으로 살게 한 것 또한 운명이다. 곧 운명은 인간에게 상실만 안겨 주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죽음을 준 것처럼 삶도 주었으니 어느 한 면만 보고 운명을 통짜로 탓할 수는 없음이다.
ㆍ삶은 선물이고 축복인 이들이나 그런 풍족한 삶을 준 운명을 부인하지 못한다.
ㆍ문제는 인간인 이상 잘살든 못살든 간에 결코 죽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ㆍ'노력 대 운명'이라는 구도 안에서 얼른 벗어나라. 노력 대 운명이란 구도는 인간이 어찌해도 승자는 변함없이 운명일 수밖에 없는 잘못된 회로라는 일깨움이었다.
ㆍ운명이 평생에 딱 한 번, 곧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
ㆍ변이되는 운명에 충실한 매일의 삶은 언뜻 반복처럼 보이지만, 오늘은 분명 어제와 또 다른 하루라는 점에서 그렇게 차이를 빚어내기에 삶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5 인간다움에서 찾아라
ㆍ문제는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ㆍ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행복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ㆍ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ㆍ행복의 근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즉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이다.
6 안팎의 일치를 이뤄라
부(富), 포기할 수 없다면
ㆍ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고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ㆍ사람은 본질적으로 밝은 존재이다.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에는 우뚝 서야 하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고,
쉰에는 천명을 알아야 하고,
예순에는 들음이 순조로워야 하며,
일흔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해도 이치에서 벗어남이 없어야 한다.
7 공정한 삶의 터전을 꿈꾸자
ㆍ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꼭 성공과 부를 약속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것은 성공과 부를 포기할 수도 있는 결단을 필요로 했다.
ㆍ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ㆍ한 번 살다 죽어 버릴 단 한 번의 삶에서는 무엇을 가졌고 무엇이 되었느냐는 것보다도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ㆍ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풍요를 자유롭게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먼저다.
8 ‘비판적 거리 두기’로 누려라
정의, 탐리(貪利)가 본성이라면
ㆍ사람의 본성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한다.
ㆍ배불린 다음에 인문이다.
9 약자에게 이익이 되는 철학
ㆍ손해를 보면서까지 올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손해를 보더라도 법대로 올바르게 살자고 결심하는 것은 도덕적인 신념과 윤리적인 결단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다가 들켜서 받게 될 처벌과 비난이 두렵기 때문은 아닌가?
ㆍ최악의 경우에는 죽은 척 잠수를 타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것! 이것이야말로 약자의 탁월성이며 지혜가 아니겠는가?
ㆍ모든 사람이 제 몫에 충실하고 그 이름값을 다할 때, 그곳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그려 주는 이상적인 국가, '아름다운 나라'다.
ㆍ공존과 공생이 가능한 이로움을 추구하라.
10 이로움이 곧 의로움이 되는 철학
아름다움, 감동이 머무는 곳
ㆍ현실에서 깨어 있는 삶을 꾸리자면 논리적으로 깨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ㆍ인간은 태어날 때 욕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욕망함에도 얻지 못하면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ㆍ강자에게 유리한 것이 곧 정의이다.
ㆍ인간 욕망의 총합은 무한대로 뻗어 가지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화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
11 살 만한 가치를 발견할 때
ㆍ정의롭게 살면 우리는 행복할까?
ㆍ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맥락에 따라 그것을 그것대로 존중될 수 있는 선택의 기준이다.
ㆍ철학자 - 필로칼로스 -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ㆍ본성대로 존재함이 곧 아름다움이다. 본성대로의 삶을 소박하다고 했으니 결국 소박함이 아름다움이다.
12 소박함에 깃든 미감(美感)
분노, 어떤 분노인가
ㆍ공자는 색이 아름다움, 그리고 즐거움이란 감정과 연동되는 기제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ㆍ본성대로 살지 않음은 자연을 닮지 않음이다.
13 공동체의 생명력을 위해
ㆍ따지고 보면 화는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어할 것이 없는 센 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ㆍ분노는 센 놈의 몫이다. 분노가 성립하는 대전제는 바로 힘이다.
ㆍ다지고 다져 침묵하고 있어도 표출되는, 그런 분노를 품어야 한다.
14 삶을 지속하기 위하여
공동체, 만들어 가야 할 ‘우리’
ㆍ분노의 힘이 대단하다.
ㆍ분노는 분명 동력 가운데 하나다.
15 공적 합의를 끌어내는 힘
ㆍ철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탐구라는 것. 다양한 현상들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힘, 제1의 원인과 이유를 찾는 지적인 열정,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ㆍ말의 교육이 곧 철학이다.
16 상상 공동체를 현실화하는 힘
역사, 미래를 소유하고자
ㆍ문화는 언어의 집이고 언어는 문화의 DNA이다.
17 삶을 슬기롭게 재구성하라
ㆍ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ㆍ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는 무슨, 거짓말의 아버지이지!
ㆍ현재를 기록하려는 노력은 삶을 슬기롭게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직업이다.
ㆍ역사는 과거를 수동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능동적으로 짓기 위해 고안되었다.
18 과거를 통해 미래를 기획하라
짓기, 창작에 대하여
ㆍ미래를 기획하지 않거나 못하는 삶과 사회는 더는 삶도 또 사회도 아니다.
19 비극, 단단한 인문학으로
ㆍ'짓기가 아름다우려면 이야기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첫 부분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따라서 그 책의 제목은 '시학'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짓기'여야 마땅해 보였다.
ㆍ고귀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고귀해야만 합니다. -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ㆍ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을 갖춘, 뛰어나고 영리하며 도덕적으로 고결하기까지 한 사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통찰, 고귀한 사람이어도 불행의 나락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역설과 모순에 대한 직관, 인간적인 덕이 운명의 막강한 힘 앞에서 무력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통렬한 깨달음.
ㆍ아무리 덕을 갖춘 고귀한 사람일지라도 불행해질 수 있음을 알라, 그것이 인생임을.
20 역사, 인간을 빚는다
영웅, 내 삶의 이야기
ㆍ역사 짓기에 동원된 허구는 가장 그럴듯한 허구였다. 그건 이미 과거가 되어 생기가 메마른 역사적 사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마치 일상에서 늘 접하고 있었던 듯한 '살아 있는' 허구였다.
ㆍ역사 짓기가 인간 빚기
21 지성과 덕성을 잃지 않을 때
ㆍ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이 써 나가는 삶의 이야기에서 영웅이다.
ㆍ참다운 어른으로서 살아내고 버텨내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인문이다.
22 인문적 토양 위에서
죽음, 삶을 완성하다
ㆍ자기 삶을 유의미하게 꾸려 가고자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내고 버텨내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어른을 말함이다. 이들이 그래서 영웅인 것이다.
ㆍ어른다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은 과업이다.
23 단단하게 살아간다면, 두렵지 않다
ㆍ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시작된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건만, 일단 존재한 것들은 그 존재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온 힘을 쓴다. 그 또한 자연의 생리이며, 존재하는 것들의 필사적인 본능이다.
ㆍ상황과 명분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본능과 욕망에 역행하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동물의 비천한 수준을 벗어나 인간적 고귀함을 획득하는 길이다.
ㆍ잊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다.
24 죽음에서도 주인이 되어야 한다
ㆍ열심히 살아도 결국은 죽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평생을 살아왔으면, 그것도 열심히 살아왔으면 그 결과가 살아 있음이어야 당연하지 않을까? 논리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평생을 살아온 결과가 삶이 아니라 언제나, 그 어떠한 예외도 없이 죽음이다. 어떻게 해서든 죽지 않으려 애써도 결국은 죽는다.
ㆍ우리는 하루하루 죽어 가고 있네.
ㆍ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ㆍ삶과 죽음을 각각 기쁨과 싫음에 연동시키지 말라.
ㆍ삶 자체가 늘 사람을 속이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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