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이 1949년 11월에 암 판정을 받은 이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쓴 글들을 엮은 것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한다.
ㆍ비트겐슈타인이 죽기 대략 일 년 반 전부터 죽기 직전까지 몰두했던 특정한 주제, 즉 '앎'과 '확실성'의 문법과 관련된 고찰들로 이루어져 있다.
ㆍ이 책은 완전한 초고로 이루어져 있고, 그런 만큼 어떤 부분들에서는 결정적이지 않거나 일관적이지 않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ㆍ그가 생각하는 확실성은 앎의 놀이를 포함한 언어놀이들의 토대이기는 하지만 앎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명시적으로 의식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적 행위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다수의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며, 사회적으로 성취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황 변화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것들이다.
39. 그렇게 우리들은 계산하며, 그런 상황들 속에서 계산은 무조건 신뢰 가능한 것으로서, 확실히 옳은 것으로서 취급된다.
59. '나는 안다'는 하나의 논리적 통찰이다. 다만, 실재주의가 그것에 의해서 증명될 수는 없다.
90. '나는 안다'는 '나는 본다'와 비슷하고 근친적인 원초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92. 우리들이 어떤 관점의 올바름을 때때로 그것의 단순성이나 균형성에 의해 확신하게 된다는 것, 즉 이러한 관점으로 넘어오게 된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그 경우 우리들은 가령 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 "그건 그래야 해."
141. 우리가 어떤 것을 믿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개별적 명제가 아니라 명제들의 전체 체계이다.
160. 어린아이는 어른들을 믿음으로써 배운다. 의심은 믿음 이후에 온다.
166. 어려운 일은 우리의 믿음의 무근거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177. 내가 아는 것을, 나는 믿는다. .
196. 확실한 증거란 우리가 무조건 확실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에 따라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의심 없이 행위하는 것이다.
245.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할 때, 그는 누구에게 말하는가? 자기 자신에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그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면, 그것은 그가 사정이 그러함을 확신한다고 하는 확언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내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하는 주관적 확신이란 없다. 확실성은 주관적이지만, 앎은 그렇지 않다.
286.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
404.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 사람이 어떤 지점들에서 완전히 확실하게 진리를 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한 확실함은 단지 그의 입장과 관계되어 있을 뿐이다.
473. 마치 우리들이 글씨를 쓸 적에 특정한 근본 형태를 배우고 그 다음 이것을 나중에 변화시키듯이, 그렇게 우리들은 우선 사물들의 지속성을 표준으로서 배우고, 그 다음 그 표준은 변화들을 겪는다.
509. 내가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이 어떤 것을 신뢰할 때에만 언어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562. 아무튼, '안다'라는 우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상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602. 나는 '나는 물리학을 믿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는 물리학이 참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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