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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함과 말랑함

by mubnoos 2022. 7. 6.

'딱딱함'은 다른 것과 섞이거나 어떤 것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딱딱함은 충격이나 외부의 힘을 받으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깨져버리거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말랑함'은 다르다. 말랑함은 다른 것과 섞일 수 있고, 그 과정 속에 오히려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 말랑함은 항상 새롭다. 말랑함이 주는 시시각각의 새로움이 아이들이 고정된 객체보다 액체괴물이나 슬라임에 열광하게 하는 이유는 아닐까? 또한 말랑함은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부로 흡수한다. 심지어 말랑함은 딱딱함의 외부에 붙어 딱딱함을 보호하기도 한다.


무생물과 생물을 나누는 기준은 '딱딱함'은 아닐까? 살아 있는 것들은 말랑하다. 죽어버린 것들은 딱딱해진다. 이 세상에 절대 변하지 않는 '딱딱한' 진리같은 게 있을까? 만약 진리가 있다면 진리는 말랑해서 항상 변한다는 진리가 아닐까?


'딱딱함'과 '말랑함'의 물리적인 특성은 우리가 사람들과 맺는 심리적 관계들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나 홀로 자신이 딱딱한 상태로 있는다면 외부의 변화와 충격에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섞이거나 그들과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이유는,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완벽하다면, 누군가와 굳이 연결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같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계를 맺는다. 자만할 수 없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점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관계의 성질로서 딱딱함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계 속에서 딱딱함을 딱딱함으로 대응한다면, 둘 다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비록 말랑함은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계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말랑하고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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