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사람은 왜 알고싶어할까 / 채운

by mubnoos 2021. 4. 15.

 

  •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허약한 신체를 갖고서도 '지구의 지배자'를 자처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겁니다.
  •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 다른 유기물이나 무기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모두 불가능한 것이다.
  • '나는 대체 무엇을 아는가?'
  • 몽테뉴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 모든 것을 회의하고 다시 생각했다. 몽테뉴는 '찾아냈다'거나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 보다는 '아직 찾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가장 아름답고 확실한 증거이다.' - 몽테뉴
  • 기존의 판단을 되묻고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의심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실험한다.

 

 

 

01 앎과 나 나는 무엇을 아는가

  • '당연히 내가 고양이와 놀아 주는 거다!' 그게 사실일까? 어쩌면 인간의 착각이 아닐까?
  •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감각과 지각 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보고 느끼는 바에 따라서 세계를 구성한다.
  • 어느 쪽이 확실하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안다'는 게 원래 그렇거든요.
  • 대체 '안다'라는 건 뭘까요? 왜 이렇게 앎들이 다른 걸까요? 이 중에 '진짜'라는 게 있을까요? 우리는 왜 알려고 하는가'라는 문제를 풀려면 이 문제부터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판단하는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거죠.
  • 우리는 알지만 사실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알려고 하는 거지요.
  • 핵심은 진범이 누구냐가 아니라 도대체 '객관전 사실'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편견, 욕망 등에 따라 멋대로 인식합니다.
  • 앎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동시에 하나의 세계에 갇힌다.
  • '안다'는 건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진실의 문제입니다.
  • 모든 것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생긴다. 선이 없으면 악도 없고, 왼쪽이 없으면 오른쪽도 없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모든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해서, 다른 것과 더불어 존재한다. 그게 '사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 자신의 입장을 비껴나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기 자리에서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이쪽과 저쪽, 참과 거짓의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
  • 거짓 '그리고' 진실 사이를 더듬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됩니다.
  •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제쳐 두다 보면, 어느 순간 세계는 내가 아는 것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
  • 에로스: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는 자
  • 불은 문명을 뜻한다.
  • 프로메테우스 - 먼저 생각하는 자
  • 진보는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기는커녕 더 강하게 구속하고 무능력하게 만든다. - 이반 일리히
  • 앎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이 누군가를 살릴 수 없다면! - 아인슈타인
  •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가장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다.
  • 질문을 통해 앎을 얻는다. 앎이란 질문이다. 질문이란 늘 그 안에 앎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다.
  • 우리는 왜 알려고 할까요? 살아가면서 매번 질문을 맞닥뜨리기 때문입니다. 삶에는 하나의 정답이란 없고, 세계에는 하나의 진리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건을 겪을 때마다 질문합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들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할까? 각자의 판도라 항아리가 열리고, 거기서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옵니다. 이걸 피할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문제들을 열심히 주워담으면서 다시 질문하고, 생각하고, 또다시 질문하는 것입니다




02 앎과 세계 앎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 '앉아서 삼매경'  - 스마트폰
  • 우리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보이는 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 내가 감각하고 있는 것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 우리의 앎이란 어쩌면 각자의 감각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단편적이고 일그러진 파편에 불과하지 않을까?
  • 부단하다. 끊어짐이 없다는 뜻이다. 끊어짐이 없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물, 공기, 바람...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자연은 끊어짐이 없다.
  • 니체는 '신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신념이란 '정신의 태만'이다. 얼핏 보면 하나의 신념을 일관되게 지키는 사람이 위대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관성의 힘에 지배당한 자이다. 가던 길을 계속 고집하는 것, 한번 붙잡을 것을 결코 놓지 않는 것, 그게 곧 정신의 게으름이고, 이 게으름으로 인해 의견들이 신념으로 굳어진다.
  • 알아가는 과정이란 결국 자기 안에서 자기를 갱신해 가는 과정이다.
  • 앎이란 세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세계의 현상들과 인간의 경험들, 여러 관계들로 구성된 한 폭의 그림 같은 것이다.
  •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을 두고 '이건 사과다'라고 하는 건, 그것이 사과라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 앎은 기억과 연관된다. 무언가를 안다는 건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 성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하는 것입니다.
  • 앎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앎'으로 머무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일련의 가치 판단과 신념을 통해 앎은 세계를 만든다. 그런 맥락에서, 하나의 세계는 곧 하나의 앎이다.
  • 살아가면서 알게 되고, 알아가면서 살게 된다.




03 앎과 행동 앎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나는 저항한다, 그러므로 안다: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 보통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욕심도 많아진다.
  • 동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용감해진다.
  • 상식과 통념에 반한다고 해서 그것을 '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오히려 많은 철학자들은 이 상식과 통념에 반하는 것을 철학의 임무로 여겼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 신앙이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 - 톨스토이
  • 무엇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상식, 통념에 의문을 품는 데서 시작한다.
  •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무엇인가를 욕구하는가? 나는 왜 무엇인가를 행하는가?'
  • 모든 지식은 책에 있지만, 현실의 경험과 접속되지 않는 한, 책 속의 지식은 생기 없는 잿빛일 수밖에 없다. 
  • 지식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 실시간으로 '톡'이 이루어지는데, 왜 우리는 소통에 실패한다고 느낄까요?
  •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하나의 이유' 떄문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게 지혜입니다.
  •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 이해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힘, 그게 지혜이다.
  •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무언가를 실천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시도함으로써 앎의 지평을 넓혀 간다.
  •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만남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반대와 장애물을 직면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앎을 단련한다. 알아서 행한 게 아니라 행하면서 알아간다.
  • 모두가 그렇게 산다 해도, 그게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두려운가? 하지만, 남들처럼 산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열심히 공부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두려움에 갇히고 만다.
  • 뭐든, 겁 없이, 시도하라.
  • 나와 의견이나 취향을 같이하는 어떤 무리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소속감 같은 걸 원하는 겁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이렇게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04 앎과 배움 배움을 향한 참을 수 없는 욕망

  •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앎의 이상한 기쁨
  • 알아 가는 과정은 '나눔의 욕망'을 발생시킨다.
  • 배움은 늘 친구를 동반한다. 앎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없다면, 함께 앎에 대해 논할 친구가 없다면, 그 앎은 나만의 인식 속에 갇혀 화석이 되어 버릴 것이다.
  • 배움은 나의 세계를 확장해 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사건을 보는 다양한 관점, 편견과 독단으로부터의 해방을 동반하지 않는 배움은 배움이 아니다. 배움은 그래서 아프기도 하다. 알고 있던 세계가 깨질 때마다 조금씩 피도 나고 상처도 생기기 때문이다. 
  • 배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두려움을 이겨 내고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것, 자유란 이런 게 아닐까요?
  •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세요? 그렇다면 우선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 배우는 자들은 압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요.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은 끝나 버린다는 사실을요.
  • 배움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믿음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 친구가 된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걸 내포한다.

 

  • 누구도 모든 걸 완벽하게 가질 수는 없다. 어딘가는 부족하고 어딘가는 넘치게 마련이다.
  • 생각하던 대로만 생각하고 늘 가던 길로만 가는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과 같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늘 하던 말만 하는 것 역시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무지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그게 무지다. 생각없이 사는 것, 모험 없이 사는 것, 자기밖에 모르고 사는 것, 그런 무지와 어리석음에 저항하는 것이다.
  • 니체 - 인식한다는 것은 낯선 것이나 의심스러운 것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어떤 것을 찾아내려는 의지이다.
  • 사랑한다는 건 그것의 친숙함이 아니라 생소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세상은 언제나 변해 왔고, 변하고 있고, 변해 갈 것이다. 오직 변할 뿐, '더 좋게' 혹은 '더 나쁜게' 변한다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mubno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