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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by mubnoos 2021. 4. 6.

  • 존재와 무는 윤리체계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 지속적인 자유와 책임, 그리고 삶의 진정한 애매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인간이 현재적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실존은 근본적으로 우연성에 있다.
    인간과 별개로 존재하는 가치 기준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은 타인들이 자유로울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
  • 존재의 부조리와 직면했을 때 현대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모험가, 열정적인 사람, 근엄한 사람, 지식인이 될 건 가요? 가치가 없을 때 가치는 어디서 나올 것인가? 어떻게 무에서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을 채택하는 것이 더 쉬울까? 

  • 샤르트르는 인간이란 일개 '무용한 열정'이며 대자존재와 즉자존재의 종합을 실현하려고, 그리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고 헛되어 노력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지만, 가장 낙관적인 윤리학이란 인간 조건에 포함된 결핍이라는 요소를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결핍없이는 윤리학도 없다. 자기자신과 정확하고도 완전하게 일치한 존재(즉자존재)에게 애당초 당위개념이란 의미가 없다. 신에게 윤리학을 선사할 수는 없다.
  • 인간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다. 세상은 미지의 권능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작품이다.
  • 모든 종류의 인본주의는 세상이 외부에서 인간에게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산출해 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발상을 공유한다. 인간의 의지가 자기의 진정한 실재를 표출하는 한, 세상은 인간이 의지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 부재하는 것을 현존하는 것으로, 도피를 의지로 전환시키려면 자기가 기투한 것을 적극적으로 떠맡아야만 한다. 그것은 주어진 자발성이 하는 전적으로 내적이고도 추상적인 운동으로 물러나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발성의 의미를 규정하는 구체적이고도 특정한 운동을 충실히 수행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 우리의 선택은 이미 조형된 세상에 의해 재확인 되는 것에 불과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집단이 견고한 모양을 갖출수록 한 개인이 집단에서 벗어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진지한 사람은 거의 모두 편의주의적인 경솔함을 길러낸다. 우리는 카톨릭으이 순진한 명량함, 즉 파시스트적 '유머감각'에 익숙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달아나버림으로써 자기네가 선택한 것의 비정합성이 자기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한다. 우상이 더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면, 진지한 사람들은 밑바닥 인간의 태도로 재빨리 미끄러져 들어간다.
  • 자신과 타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서도 여러 수단을 통해 이 목적을 존중하도록 자신을 강제하는 사람은 더 이상 모험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모험가가 특정 계급이나 정당의 특권, 특히 권위주의적 체제와 파시즘의 특권을 지켜주는 모든 체제에 대해 만족하게 되는 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변증법적 필연의 문제다.
  • 상황이 유리해진다면 모험가는 너끈히 독재자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사실은 전체성의 우두머리 노예라는 점일 뿐이다.
  • 모든 광신적인 운동에는 진지함이라는 요소가 있다. 혐오, 공포 혹은 믿음의 열정에 휩싸인 일군의 사람들이 고안해 낸 가치들은 타인들을 자유가 아닌 주어진 사실로 인지하는 가운데 생각되고 인지된 것이다. 그러나 열정에 바탕을 두지 않는 광신주의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지한 세상에 대한 모든 집착은 억눌렸던 성향과 콤플렉스가 터져나오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사물이라는 것은 내가 그것을 빼앗기는 과정을 거쳐야만 내게 주어지는 것이다.
  • 존재함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란 존재함을 가지고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 진실로 이루어져야할 것은 무지한 노예게엑 자신의 처지를 초월하게 하는 봉기라는 수단을 제공하여 그들의 무지를 끝장내는 일이다. 
  • 자유라는 대의는 나의 것도 타인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전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해방된 노예에게 열릴, 그리고 그를 통해서 모든 인간에게 열릴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것이다. 실존을 위한 것, 세상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가치다.
  • 어떤 정당이 지도계급에게 그들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이런 요구에 대해 추상적 정의의 이름을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기만적으로 깃든 모순에 분노하는 것이다. 왜나하면 자유는 오직 타인들의 자유를 경유하면서 전개되는 무한한 운동으로서 의지될 때에만 순수하게 그 자체로서 의지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관계없는 자체의 자유로 뒷걸음질 치게 되면, 그 즉시 어떤 대상을 위해 의지되는 자유를 부정하게 된다.
  • 자본주의는 생산에 가장 우호적인 체제로 건립되었으며, 식민주의자는 원주민이 묵혀 놓고 있던 부를 착취하여 그것을 활용하는데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다.
  • 나치에게 필요한 것은 징벌이 아니라 그들이 신비화 작업에 사로접혀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해 주는 일이다. 그리고 신비화 작업에 희생된 이들을 자기들의 자유에 임하도록 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투쟁의 긴급성은 이 느리고 고된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 억압 당사자들은 자기네가 아무것도 희생시키지 않는다고 단정하면서 그들이 희생시키는 것의 가치를 부정해버린다.
  •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 대의의 승리는 무한성에 귀착되는 까닭에 그것은 언제나 전체적 집단성에 관심을 둔다. 그리하여 집단이 전부가 되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 우리는 얼마나 많은 교훈적 연설들이 다음과 같은 철학을 고무해 왔는지 알고 있다. 자기를 상실함으로써 자기 삶을 성취하며, 예속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를 실현한다는 철학말이다. 모든 지도자들은 이런 식으로 설교해댄다. 그리고 이런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려는 사람은 틀려먹은 인간이나 겁쟁이로 몰린다. 용감한 사람은 자유의지대로 즐겁게 죽고, 죽음을 거부하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게 된다.
  • 인간에 대해 집단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진, 합창, 집단노동 및 투쟁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같은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개인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각자는 몇몇 타인들로 대체될 수 없으며 나아가 폭력은 사람들이 동의해주었던 희생이라는 쓰라린 고통을 세상에 선동하지 못한다.
  • 사유로 인해 범죄의 범죄성이 세상에 밝혀지기 때문에 모든 권위주의적 정당은 사유를 위험한 것으로, 성찰을 범죄로 간주한다.
  • 우리는 결국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좀 더 유용해이는 것을 위해 덜 유용해보이는 것을 희생시키는 게 좋다는 주장으로 물러나는 듯 하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치는 점은 유용하다는 단어의 보어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 정치는 항상 국가, 제국, 연합, 경제 등의 거창한 이상들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형식 중에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치는 구체적 개인들을 함축할 경우에만 귀중하다. 만일 연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손해를 통해서만 어떤 연합이 착립될 수 있다면, 그런 국가 혹은 연합은 반드시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 자신보다 거창한 형식을 선호하는 모든 이상주의, 신비주의 따위를 물리쳐야 한다.
  • 모든 정치는 경찰을 이용한다. 그들은 개인에 대한 철저한 무시를 공공연히 과시하면서 폭력 자체를 사랑한다. 경찰의 나태함과 잔인함 중 일부는 정치적 필요성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쪽을 따르지 않으려는 것이 윤리가 삼아야할 의무인 까닭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한다.
  • 부정에 있어서 그러한 것처럼 자유의 건설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실존의 우연적 사실성, 즉 아무 이유없이 애초부터 거기에 존재하고 있던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실존의 상황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자유를 인간에 의해 의지된 무엇으로 재정복하는 문제다.
  • 인간이 결핍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은 쉼없이 그것에 투쟁해야 한다.
  • 인간의 모든 윤리학은 거짓된 과업에 투신하도록 선동하는 것에 불과핟. 왜냐하면 모든 타인들을 위한 가치를 가지고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어진 세상을 미망에 빠진 놀이로 대체해버린 사람들이 서로 공모하도록 만드는 문제에 불과하지 않은가/
  • 거짓말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스스로 건립한 진실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참과 거짓의 기준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류는 자신을 완전히 속일 수 없다.
  • 우리는 둘러싼 세상이 압도적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세상이 우리의 두터운 무지, 도래할 파국의 위험, 거대한 집단에 속해 있는 우리의 개별적 취약점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계없이, 여전히 남아있는 사실은 오늘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한성 속에서 그러니까 무한성에 열려있는 실존을 의지하는 선택을 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 할 일을 하라. 그러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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