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중학교2학년 때, 집에서 혼자, 비디오로 봤다.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당시의 난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고, 어릴 적부터 클래식 및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정신질환보단 피아노연주와 주인공의 기행에 비중을 두고 봤었다. 극중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게 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악마의 교향곡)’에 대해 간결한 지식들은 없었지만, 악보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고, 연주하기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것은 연주를 듣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직감할 것이다. 극중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은 이 곡을 연주하고 정신질환을 앓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생물∙심리∙사회학적 측정적인 관점보단 극중 정신질환이 주인공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천재성을 기억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로서 정신병을 앓고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현존하는 인물이기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글을 시작한다.
Synopsis
나찌에게 가족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불행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피터는 어린날 아버지의 횡포로 바이얼린을 켜지 못해 꿈을 좌절당하고 그 보상심리로 아들 데이빗을 피아니스트로서 대성시키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스스로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비범한 재능을 가진 데이빗은 엄격하고 독선적인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정의 중압감에 시달린다.
지나치게 가족 중심주의 사고를 가진 피터는 데이빗의 천재적 재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라면서도, 일면 데이빗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던 어느날 런던의 왕립대학에서 유학 제의가 들어오자 데이빗은 권위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거부하고 집을 떠나 런던 왕립대학에서 전설적인 교수 세실 팍스의 지도를 받는다. 팍스 교수는 데이빗에게서 소위 천재의 광기를 발견하나 데이빗은 눈부신 재능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단절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즉 자신만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과 성공의 압박감을 견뎌내지 못한 그는 영육이 산산히 부서져버린다.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과 그의 몇몇 대화를 보면, 그의 사고 진행에 이상을 보이는 증상들을 볼 수 있다. 죄의식과 자기징벌을 내용으로 하는 계속되는 자책망상, 과대하게 고양된 기분, 안정되지 않은 행동 등이 그가 보이는 정신과적 증상이다.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그의 복잡하고도 불안한 심리를 읽을 수 있다.
"항상 이겨야 돼!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
누구나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데이빗의 정신분열이 아버지의 병적인 집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동의 할 것이다.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음악의 꿈을 접어야 했던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은 그가 데이빗에 대하여 병적인 집착과 왜곡된 사랑을 보여주는데 단초가 되는 슬픈 경험인 것이다. 데이빗를 통하여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음악의 꿈을 대신 이루기 원하는 보상 심리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불행하게도 한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왜곡된 도구로 사용된다.
아버지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데이빗는 그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음악을 위한 유학이었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공간을 떠나는 일인 동시에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는 첫 발걸음이었다. 아버지라는 왜곡된 집착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왠지 모르게 피터가 불쌍해 보였다.
나찌에게 자신의 가족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경험이 있는 피터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존 경쟁 의식에 싸여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어린 아들 데이빗에게도 강요되어 이는 곧 데이빗에게 성공에 대한 압박감으로 부담 지워진다. 메이저 콘서트에서 굳이 악마의 교향곡이라는 난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pilogue
음악인들의 생애를 담은 영화들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인물이 더 극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본다.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도 그렇고, 왕의 춤의 륄리, 불멸의 연인의 베토벤 등 당장 생각나는 인물 몇 명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영화 '샤인'의 데이빗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비정상적임'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음악가, 예술가들은 '특별한 사람'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 비록 영화라는 작은 매체이지만, 데이빗이 이러한 특별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차근차근 정신적으로 분석하면서 영화 속의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그 무엇'을 찾아내고자 했던 이번 경험이 매우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이러한 분석적인 태도로 음악을 읽고, 문화를 읽고, 세상을 읽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