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진정으로 원해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일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안했다. 그래서였을까?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셀 수 없이 많이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난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 돌아봤을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하게 그 질문들에 답변할 수 없어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매일, 그리고 항상 열심히 했다. 하루도 불량 안 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초월해 그 지점을 유지하고 다시 초월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방향도 모르고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더라도 그것은 물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선택이 아니였다. 그게 나였다. 나는 물에 빠져 발바둥치는 사람이였고, 아직도 그 물 안에 떠있다. 돈이 우선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해도 버는 지폐 뭉치 따위를 실제로 보지도 못한다. 간혹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도 가끔은 헷갈린다. 발버둥 치는 것을 그만두고 싶을 때 떠올리는 핑계가 돈일 수는 있지만, 돈이 필수문제였거나 우선이였던 적은 없었다. 회사와 주변사람들에게 인정과 대우도 받았다. 난 부자가 되고 싶고 부자가 될 것이다. 돈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절대로 돈이 전부는 아니였다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돈이 아니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난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중소기업 공장에서 일하면서 무슨 큰 돈을 기대했겠는가. 내가 질문했던 것은 항상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래서 난 내가 하는 일에게 결코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통제하고 정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전부는 아니여도 내가 누구인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하나라도 명료하고 정확한 것만 있다면 삶은 의미가 있다. 적어도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난 무엇을 얻었을까? 돈? 경험? 전문지식? 내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것은 결국 나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의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더라도, 적어도 앞으로의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어하는지를 정의할 수 있었고, 그것을 증명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크든 적든 회사는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이 작은 회사안에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살아가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회사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게 돕는 요약본이다. 그 요약본을 통해서 전반적인 삶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성급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을 해석하는 사고는 변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일한다. 나는 내가 정의한 내가 되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진짜 대단하고 지독하다.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이 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난 더 열심히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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