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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유교 / 한성구

by mubnoos 2022. 7. 15.

 

 

 

 

 

제1장 동양사상의 여명 

ㆍ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근원을 찾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ㆍ유교에 대한 탐색은 역사적 검토로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원' 혹은 '뿌리'에 접근해간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ㆍ타파해야 할 네 가지 관념

1) 모든 민족은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다. 

2) 모든 지역은 원래부터 통일되어 있었다. 

3) 신화 속 인물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다.

4) 고대는 태평성세였다.

 

ㆍ제사란 기본적으로 인간이 신에게 감사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행위다. 

 

ㆍ레비-스트로스는 원래 유사성이나 아무런 관계도 없던 두 실체(인간과 신) 사이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종교라고 했다. 

 

ㆍ문화란 각종 상징 체제로 점철된 인간 사유와 행위의 통합체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 상징이 없을 수 없다. 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부족할수록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려는 마음은 커지게 되는데 이런 의지는 대부분 상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서로 관련 없는 것을 관련지어주는 것이 상징이라는 매개체다. 상징은 부호, 기호, 암호, 숫자 등으로 표현되며 무엇인가 그 배후에 실재하는 존재를 암시하거나 계시한다. 즉, 감가가으로 직접 지각할 수 없는 의미나 가치 등을 어떤 유사성을 매개로 사물이나 부호, 숫자 등으로 구상화하는 것이다. 상징은 아직 어둠 속에서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이해할 때 사용하는 중의적 분류 기준이며 객관 세계로부터 세계로 들어갈 때 필요한 수단이다. 

 

 

 

 

제2장 유교의 탄생 

ㆍ중국은 주나라에 들어오면서 은나라 때까지 이어오던 제정일치 체제에서 벗어나 인문의 새돌 진입한다. 

 

ㆍ주나라 초기에 국가의 기틀을 잡은 주공은 신탁과 무속에 의존하던 사회풍조를 정리하고 인문적인 사회규범인 '예'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주나라가 은나라의 모든 것을 폐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하늘을 섬겼고,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ㆍ막스 베버는 유교를 가리켜 '인간을 마술의 정원에서 구출한 합리화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유학이 갖고 있는 현세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특징은 인간의 덕성에 대한 신뢰와 합리성에 기반을 둔 사회에 대한 이상을 표방하고 있다. 

 

유교는 여러 시대를 거치며 탄생 당시의 원형으로부터 많이 멀어졌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원칙을 기초로 한 창조적 전화(轉化)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지식인들의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로 점철된 왜곡과 변질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ㆍ유교는 원시유교에서 시작하여 한당유교, 송명 신유학, 청대 고증학, 현대 신유학이라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나왔다.

1) 원시유교가 공자에 의해 유교가 처음 제창되었을 당시의 초기 모습을 담고 있다면,

2) 한당유교는 음양이론과 황로도가, 법가사상 등이 융합된 정치화된 유교의 모습을 띠고 있다.

3) 송명 신유학에는 명맥이 끊긴 도통을 이으려는 유학자들이 소명의식과 광범위하게 세력을 넓혀가던 불교에 대한 견제 심리가 담겨 있다.

4) 청대 유학은 명말 불교화한 유학, 즉 양명 심학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고증학 및 실학의 복고주의적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5) 현대 신유학에서 물밀듯이 밀어닥친 서구 사상과 과학의 세례 앞에서 위기에 직면한 동양 전통 사상의 출로를 모색하고 새롭게 거듭나고자 하는 근현대 지식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ㆍ은나라가 망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술이다.

 

ㆍ1930년대에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근대 철학사인 <중국철학사>를 쓴 펑유란은 중국의 철학사를 '자학시대'와 '경학시대'로 나누고, 중국은 아직 근대 철학의 시대로 진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자부터 한나라 초기 회남왕까지를 자학시대로, 동중서부터 캉유웨이까지를 경학시대로 규정했다. 

 

자학시대: 전국시대 이전에 '~자'라고 이름 붙여진 책들이 대거 출현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고대철학은 대부분 제자백가의 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학시대라고 한 것이다. 

 

ㆍ자학시대에서 경학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계기로는 진시황이 감행한 분서갱유 사건과, 한 무제와 동중서가 추진한 '파출백가, 독존유술(모든 사상을 물리치고 오직 유학만을 숭상함)' 정책을 들 수 있다. 한 무제와 동중서의 정책은 유교만을 정통으로 간주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공자는 신격화되었으며 유교는 절대화되어 춘추시대 이후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사상적 분위기는 사라지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서갱유를 거치며 유실된 경전 체제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전의 진위를 따지고 문구 해석에 치중하는 학풍, 즉 경학이 득세하게 되어 2천여 년에 걸친 경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ㆍ우리는 흔히 공자가 유교를 창시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공자는 '유'라는 집단의 사상을 정리한 사람, 혹은 '유'라는 학문을 이어받아 유교 학파를 만든 사람이지, 유교 사상을 창시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공자의 유교 혹은 유학이 있기 전에 이미 '유'는 존재했다. 

 

ㆍ'유'는 부드럽다는 의미다.

 

ㆍ유는 원래 장례나 기우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인문의 시대로 들어와 제사가 상대적으로 간소해지자 예법이나 절차를 다루는 전문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제3장 공자의 유학 

ㆍ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의 봉건제가 무너지고 예약이 붕괴된 시대였지만 인간의 삶과 사회, 국가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제자백가들이 등장해 사회 혼란을 해소하고 질서와 평화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각축을 벌인 대전환의 시대이기도 했다.

 

ㆍ공자는 주공이 정비했다고 알려진 주대의 예법인 주례의 전승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그는 천하의 도가 사라지고 혼란한 시대가 온 것은 주례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예를 회복하기만 하면 요-순의 태평성세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인'을 이루고 '정명'을 구현하는 데 힘써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굳게 일어서고, 마흔에 흔들림이 없었으며, 쉰에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 예순에는 들어도 거슬림이 없었으며, 일흔에는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을 따르고, 예에서 노닐었다. 평생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배우고자 했으며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덕성을 잘 보존하고 발휘하여 타인을 사랑하고자 노력했다. 이로 인해 공자는 후대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스승이자 성인으로 숭상되었으며, 그의 사상은 동양 문화와 학술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ㆍ공자는 태어날 때 머리가 움푹 들어가 있어서 이름을 구라고 했으며 자라서는 키가 9척 6촌 (약210cm)에 달해 기이하게 보였다. 

 

ㆍ대동사회란 모두가 하나가 되는 지극히 조화로운 사회를 말한다.

 

ㆍ<논어>는 유교의 기본적인 경전이 '사서' 가운데 하나로, 공자의 언행과 사적을 기록한 책이다. '사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을 말하며, <시경><서경><역경(주역)><예기><춘추>의 '오경'과 함께 유교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ㆍ공자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려는 사람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점이 바로 <논어>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ㆍ유교 혹은 공자 사상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개념을 꼽으라면 '인'을 말할 것이다. 인은 '사랑''사람됨''배려심''선한본성' 등으로 다양하게 풀이된다. 

 

ㆍ유교의 핵심은 인의 정신이 아니라 인의 실천에 있다. 

 

ㆍ공자는 인과 함께 '예'도 강조했다. 인이 내면적 덕성에 해당한다면 예는 외면적인 사회규범이나 윤리 질서를 의미한다. 

 

 

 

 

제4장 공자 학단과 제자 

ㆍ덕성과 덕치야말로 유교의 근본 정신이다. 

 

ㆍ유교는 한나라를 거치며 국교화되어 지배 이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지만 도리어 백성들의 실제 생활과는 분리되어 외재적 규범이나 윤리강상만을 강조하는 억압과 강제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까닭에 현세에서 겪는 고통의 원인과 벗어남의 방법,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참된 세계에 대한 깨달음의 설법을 담고 있는 불교는 급속도로 중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ㆍ유학의 역사에서 맹자의 가장 큰 공헌은, 도덕을 인간성의 기초로 보고 사람이 선천적으로 구비한 선한 본성으로부터 정치 원리를 도출해냈다는 점이다. 

 

유교는 기본적으로 '이익'과 멀다. 맹자는 '이익'을 유교의 핵심 개념인 '인의'와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 인의에 어긋나는 이익 추구를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ㆍ맹자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제5장 유교의 반대자들 

ㆍ법가 사상은 진나라 군주 영정이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 통치 이론으로 받아들여 천하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ㆍ순자는 맹자의 인성론, 즉 성선설을 현실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요, 그 착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ㆍ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성선설의 주장은 모든 문제와 근원과 해결책을 바깥이 아닌 사람 내부에서 찾도록 함으로써 완전함을 담보할 수 없는 성악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긍정과 믿음이 없다면 해결책을 인간 외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한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신과 같은 절대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ㆍ유교의 성선설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 사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유교에 대한 후세의 비판은 대부분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송대 이학(理學)을 겨냥한 것이다.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버린다(存天理, 去人欲)”는 주자의 말이 원래 사람의 일차적인 욕망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후대의 유학자들은 이를 엄격한 금욕주의로 이해해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까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ㆍ순자가 말한 '악'이란 도덕적 측면의 절대적인 '사악함'이 아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과 욕구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본능과 욕구가 제멋대로 날뛰도록 나두면 사람이 아닌 짐승에 가깝게 되므로 교육을 통해 이를 순화시키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나라 때 중국에 건너온 유럽의 선교사들은 기독교와 유교가 유사하다는 전제 아래 기독교로 유학을 보완한다는 ‘보유(補儒)’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들은 유교가 주자의 성리학과 왕양명(王陽明)의 심학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참된 유학을 알기 위해서는 천주교 교리와 흡사한 원시유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ㆍ루쉰은 유교를 가리켜 사람 잡아먹는 '홀인'의 사상이라고 비난했다. 

 

 

 

 


나가는 말: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여정 

ㆍ인도 사람들은 몇 마리의 커다란 코끼리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코끼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엄청나게 큰 거북이라고 생각했다. 

 

ㆍ유교의 절대 전제는 무엇인가?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일 수도 있따. 인간은 하늘로부터 본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일 수도 있고, 세계는 도덕적 관계로 질서 지워져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ㆍ오늘날 유교 사상이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비판하거나 가르치려드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감싸 안으려는 포용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문학이라 불리는 모든 학문의 본질이어야 한다. 

 

원시유교가 과거에만 속한 것인가? 원시유교의 정신을 현재에 되새기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지나간 것들의 현재, 지금 있는 것들의 현재, 앞으로 올 것들의 현재’로 나누고 유교를 살아 숨 쉬는[生生不息] 활동체로 바라볼 때 유교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