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라'고 가르쳤다.
ㆍ철학에서 배제된 감각의 연구는 과학에 맡겨졌다. 하지만 감각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한계는 명확하다.
ㆍ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원래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추구한 목표 중의 하나였다.
들어가며 감각론의 역사적 전개
ㆍ그냥 보아서 지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근원적인 의미에서 참이다. - 하이데거
ㆍ소크라테스 이전의 감각론은, 감각지각과 이성적 사유를 구별한 것은 파르메니데스지만, 철학사에서 '감각론'이라 불릴 만한 이론을 처음 제시한 이는 엠페도클레스였다.
ㆍ데모크리토스에게 감각이란 대상에서 발산된 원자들이 감관으로 들어오는 현상이다.
ㆍ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매체를 통해 감관에 전달되는 것은 대상의 질료가 아니라 그것의 형상이다. 감관은 대상을 질료 없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ㆍ고대의 감각론 연구의 세 가지 전통
1) 영혼론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철학, 자연학적 전통
2) 공간의 지각을 설명하기 위한 광학, 기하학적 전통
3) 안과질환의 치료를 목적으로 시작된 의학, 해부학적 전통
ㆍ데카르트는 철학에서 감각을 배제한다. 그가 주창하는 이성적 사유는 감각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데카르트는 이성적 존재가 되려면 감각을 불신하고 상상력을 배제하며 정념을 통제하라고 가르쳤다.
ㆍ지각이란 감각이후와 이성이전의 인지능력이다.
1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감각론
01 진리와 속견: 파르메니데스
ㆍ최초의 철학자들은 모든 자연현상의 바탕에 깔린 공통의 근원, 즉 '아르케 arche'를 찾으려 했다.
탈레스에게 그것은 물이었고,
아낙시만드로스에게는 무규정자, .
아낙시메넥스에게는 공기였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그것은 불이었고,
엠페도클레스에게는 물-불-공기-흙의 4원소,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의 그것은 원자였다.
ㆍ서구에서 감각지각의 이론은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는 등식이 깨지는 순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ㆍ지성에 있는 것 중에서 먼저 감각에 있지 않았던 것은 없다. - 파르메니데스
ㆍ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세계의 인식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존재를 탐구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비존재를 탐구하는 길이다. 이 중 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첫번째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은 오직 유뿐 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무는 없다. 왜?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역리>
02 유사가 유사를: 엠페도클레스
ㆍ엠페도클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피로 생각한다. 그 어디보다 피 속에서 4원소가 가장 온전히 뒤섞이기 때문이다.
03 반대가 반대를: 알크마이온·헤라클레이토스·아낙사고라스
ㆍ문제는 세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로고스)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감각적 경험을 모으는 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물론 감각지각은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된 인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각정보를 해독할 능력, 즉 이성이 있어야 한다.
ㆍ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시각은 동공에 사물이 비침으로써 발생한다.
ㆍ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모든 감각에는 통증이 따른다. 이는 필연적 귀결이다. 왜냐하면 대조적인 대상에 접촉하는 것 자체가 기관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04 위대한 절충: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ㆍ디오게네스는 공기를 영혼이자 지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의 바탕에 이성이 있다고 본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으로 보인다.
ㆍ디오게네스에 따르면 청각은 귓속의 공기가 외부의 공기에 의해 움직여 그 울림을 두뇌로 전달할 때 발생한다.
ㆍ사유 역시 공기가 하는 일이다. 사유는 특히 깨끗한 마른 공기에서 나온다. 습기는 지성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잠을 자거나 술에 취하거나 배가 부를 때는 생각이 느려진다.
2부 세개의 대(大)이론
05 에이돌라: 데모크리토스
ㆍ원자론의 세계는 원자atom와 공간void으로 이루어진다.
ㆍ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 파르메니데스의 역리
ㆍ데모크리토스에게 감각이란 대상에서 발산된 원자들이 영혼의 원자와 충돌하는 현상이다.
ㆍ데모크리토스는 역사상 최초로 감각의 종류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렇게 다섯가지로 제시한 이이다.
06 불을 뿜는 눈: 플라톤
ㆍ플라톤의 사상은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데모크리토스를 따라 우주의 모든 것이 미세한 입자들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 입자들은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라고 한다. 이들 원소는 각각 정사면체(불), 정육면체(흙), 정팔면체(공기), 정이십면체(물)의 형태를 취하는바, 모두 두 종류의 직각삼각형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다. 물론 이 생각은 피타고라스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ㆍ플라톤에 이르러 감각을 바라보는 서구철학의 두가지 경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1) 감각이 우리를 덧없는 생성의 세계에 가둔다고 보는 경향이다. 2) 감각을 윤리적 측면, 즉 실존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다. 감각이나 감정을 영혼이 불멸에 도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이후 서구철학의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는다.
ㆍ플라톤은 시각을 매우 능동적인 활동으로 보면서도 청각은 전적으로 수용적인 과정으로 설명한다. 고대에는 이처럼 시각을 능동적인 것, 청각을 수동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었다.
ㆍ모든 냄새는 물보다는 미세한 반면 공기보다는 굵다.
07 매체를 통한 변화: 아리스토텔레스
ㆍ철학의 대립되는 두 노선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 물질이 스스로 형태와 조화를 이룬다.
플라톤의 관념론: 사물의 형성에는 질료 외에 어떤 정신적 원리가 필요하다.
ㆍ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물질이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사물 속에는 형상과 질료가 결합되어 있다. (질료형상론)
ㆍ사물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은 4원인설을 제시했다. 그 4원인이란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다. 예를 들어 대리석 신상이 있다고 하자. 이 신상은 왜 존재하는가? 이 물음에 우리는 네가지 대답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질료인 대리석으로, 장인의 마음에 떠오른 형상을 본떠서, 장인의 노동에 의해, 신전에 모셔놓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신상은 먼저 어떤 목적이 있고(목적인), 그 목적에 적합한 형상을(형상인), 장인의 노동에 힘입어(작용인), 특정한 재료(질료인) 속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ㆍ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원인이며 원리이다' 영혼은 세가지 의미에서 살아 있는 신체의 원인이 된다. 첫째, 영혼은 신체의 작용인이다. 그것은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이다. 둘째, 영혼은 신체의 형상인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신체에 형태를 부여한다. 셋째, 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목적인이다. 뒤집어 말하면 자연적 신체들은 영혼의 도구다. 여기에는 4원인 중의 하나가 빠져 있다. 영혼이 신체의 원인이라 할 때, 질료인이 빠진 것은 '영혼은 형식 또는 형상이지 질료가 아니'기 떄문이다. 질료는 자연적 신체의 원인일 뿐 생명의 원인은 아니다.
ㆍ감각은 수동적이다. 사유는 능동적이다. 생각은 스스로 원할 때에만 할 수 있다. 감각은 신체와 결합되어 있기에 우리에게 강제되며, 사유는 신체와 분리되어 있기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사유란 외부세계에 관한 것이기에 언제나 외부와 관계를 맺어야 하나, 능동적인 것이기에 동시에 외부세계와 분리되어야 한다. 이 딜레마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해결한 셈이다.
ㆍ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상과 감관의 직접적 접촉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감각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ㆍ데모크리토스에게 감각은 대상에서 발산된 원자가 감관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체를 통해 감관에 전달되는 것이 대상의 질료가 아니라 오직 그것의 형상뿐이라고 본다.
ㆍ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각대상은 결국 색채다.
데모크리토스가 흑, 백, 적, 황록의 4원색을,
플라톤이 흑, 백, 적의 3원색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색이 흑, 백 2원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ㆍ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맛은 색깔처럼 모두 일곱가지이다.
3부 헬레니즘의 감각론
08 감각은 진실하다: 에피쿠로스
ㆍ헬레니즘 시대란 구체적으로 알렉산더대왕의 사망 BC323 이후 그리스가 로마에 멸망하는 악티움해전 BC31 사이의 기간을 가리킨다. (BC323 ~ BC31)
ㆍ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아타락시아나 스토아학파가 설파하는 아파테이아의 경지는 흔히 생각하는 '쾌락'이나 '금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가령 행복을 위해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획득하라고 말하는 에피쿠로스가 최고의 열락으로 꼽은 것은 육체의 쾌락이 아니라 정신의 '평정'이었다.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도 마찬가지다. 후세에 '금욕'으로 잘못 번역된 askesis는 원래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는 연습을 뜻했다. 아스케시스는 중세 수동승들의 자기금욕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변덕스러운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행복에 필요한 '무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연습의 하나일 뿐이었다.
09 영혼의 숨결: 스토아학파
ㆍ헬레니즘 시대에 에피쿠로스학파와 쌍벽을 이룬 사조는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등으로 대표되는 스토아주의였다. 이들이 '스토아학파'라 불린 이유는 창시자인 제논이 주로 공공의 광장이었던 아고라 근처의 '스토아 포이킬레', 즉 벽화가 그려진 주랑에서 가르침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들 구스토아학파보다는 루시우스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같은 로마의 신스토아학파가 대중적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ㆍ우주의 모든 것은 '숨결'과 '물질'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숨결'은 구약성서의 야훼가 아담의 입에 불어넣어준 숨처럼 질료에 생명을 부여하는 원리다. 스토아학파가 로고스, 즉 세계창조의 원리를 '숨결'이라 부른 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의학 이론의 영향으로 보인다.
ㆍ스토아학파는 감각지각이 일어나는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영향-인상-승인)
1) 감각기관이 외부대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2) 그 영향을 토대로 표상기관이 그 대상의 '인상'을 형성한다.
3) 그렇게 형성된 인상을 헤게모니콘이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승인을 거친 인상은 '렉스톤 lexton'이 된다. 렉스톤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감각된 것은 막연한 인상을 넘어 마침내 개념, 즉 언어로 표현되는 명제의 자격을 얻게 된다.
10 소요학파: 테오프라스토스
ㆍ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와 더불어 헬레니즘 철학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이른바 소요학파 peripatetikos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립한 리세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학자들로, 대부분 생의 마지막까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충실한 추종자들로 남았다. '소요학파'라는 이름이 걸어다니면서 강의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버릇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실은 당시에 리세움이 건물의 보행로를 가리키는 '페리파토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데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ㆍ감각론의 세가지 주요 형태
1) 데모크리토스의 발산설 -> 에피쿠로스
2) 플라톤의 유출설 -> 스토아학파
3) 아리스토텔레스의 매체설 -> 소요학파
4부 고대 감각론의 세 전통
11 시각원뿔: 에우클레이데스
ㆍ고대의 시각론의 전통
1) 인식론과 심리학(영혼론)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철학적, 자연학적 전통
2) 주로 공간지각에 대한 기하학적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탄생한 수학적 전통
3)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관심과 눈병치료의 목적에서 시작된 의학적 전통
ㆍ에우클레이데스의 <광학>은 시각에 대한 최초의 기계적 설명으로, 훗날 이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의 토대가 된다.
12 황소의 눈: 갈레노스
ㆍ에우클레이데스가 기하학의 '연역적' 방법으로 시각을 연구했다면, 갈레노스는 관찰과 실험이라는 '귀납적' 방법을 따른 셈이다. (인체의 해부)
13 세 전통의 종합: 프톨레마이오스
5부 고대에서 중세로
14 공감으로서 감각: 플로티노스
ㆍ'공감'이라는 말은 원래 '함께 syn + 영향받는다 patheia'는 뜻이다.
15 집중으로서 감각: 아우구스티누스
ㆍ플로티노스는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이 신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스스로 신이 되려 했던 인간이 이제 신에게 은총을 간구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ㆍ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토대는 당대의 플라톤주의, 즉 신플라톤주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학파에서 유래한 이론들을 결합해 고유의 사유체제로 발전시켰다.
ㆍ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감각은 감관이 외부의 인상을 수용하여 그 자극을 감각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함으로써 발생한다. 자극의 전달은 뇌에서 경부와 척수를 거쳐 피부와 감관으로 이어지는 미세한 파이프 모양의 통로들을 통해 이루어지는바, 이 중 촉각을 감당하는 통로는 여타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보다 훨씬 더 미세하다. 감각지각은 이 통로들 속에 흐르는 숨결에 의해 이루어진다.
ㆍ아우구스티누스에게 감각은 '신체가 겪는 것에 대한 영혼의 자각'이다.
6부 중세 아랍의 광학
16 광학적 유출설의 부활: 알킨디
ㆍ'아랍 르네상스'라 불리는 새로운 사조의 효시는 알킨디였다. 그는 철학의 영역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룩한 것을 '아랍어의 용법, 우리 시대의 관습 및 우리 자신의 능력에 맞게 완성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시각론의 영역에서 그가 접할 수 있었던 고대의 전통은 주로 헬레니즘 시대의 이론, 특히 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광학이었다.
ㆍ알킨디가 후세에 남긴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물체가 사방으로 '빛'을 발산한다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물이 빛을 사방으로 '발산'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반사'한다고 말한다.
17 의학적 유출설의 부활: 후나인
ㆍ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의 발산설: 대상 자체가 자기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리에게 뭔가를 보낸다.
ㆍ플라톤, 에우클레이데스의 유출설: 대상은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우리의 지각능력이 그리고 뻗어나가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ㆍ아리스토텔레스의 매체설: 대상과 우리 사이를 매개하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대상에 관해 알려준다.
18 유출설에서 유입설로: 이븐시나
19 아리스토텔레스의 부활: 이븐루시드
ㆍ이븐루시드는 이븐시나를 따라 눈에서 유출되는 그것을 '물질'로 보느냐, 비물질적 '빛'으로 보느냐에 따라 두 유형으로 유출설을 나눈다.
ㆍ원래 '지향성'이라는 말은 아우구스티수의 용어로, 정신의 '집중'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20 근대광학의 아버지: 알하이삼
7부 근대광학의 역사
21 중세 유럽의 광학: 그로스테스트에서 베이컨까지
ㆍ링컨의 주교 로버트 그로스테스트는 '중세 옥스퍼드의 과학적 사유전통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불린다. 자연연구에 실험적 방법과 수학적 방법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22 영적 변화로서 감각: 아퀴나스
ㆍ중세후기에 일어난 '아리스토텔레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은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다.
ㆍ아퀴나스는 이븐시나를 따라 빛을 룩스 lux, 루멘 lumen, 라디우스 radius, 스플렌도르 splendor의 네가지로 구분한다.
23 르네상스의 시각론: 오컴에서 플라터까지
24 근대광학의 탄생: 케플러
8부 외감에서 내감으로
25 멋진 신세계: 데카르트
ㆍ데카르트는 대상의 영상이 망악에서 뇌로 전송되는 과정을 포함하여 시각의 전과정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
ㆍ데카르트의 신세계는 불, 공기, 흙의 3원소로 이루어진다.
ㆍ데카르트는 사물에서 감각적 특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연장으로 환원하여 스콜라철학의 '질적' 자연의 관념을 '양적' 자연의 관념으로 바꾸어놓았다. 자연은 이제 그 크기와 운동을 수학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연장이 된다. 근대적 의미의 '자연'이 탄생한 것이다. 연장으로서 자연은 '보거나 만짐으로써'가 아니라 '이해함으로써' 지각된다. 여기서 감각은 고유의 인식기능을 박탈당하고 만다. 자연을 파악하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사유'의 일이며, 그 이해의 명석, 판명함은 수동적 감각이 아니라 능동적 주의, 즉 정신의 집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ㆍ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감각적 자연 속에 있어 있다고 믿은 반면, 플라톤은 형상의 세계가 감각적 현실과 떨어져 있다고 믿었다.
ㆍ데카르트의 신세계에서 빛은 순수 역학적 현상일 뿐이다.
26 빈 서판: 로크·버클리·흄
ㆍ로크의 경험주의는 '감각에 먼저 있지 않고 정신에 있을 수는 없다'
ㆍ로크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세계'와 그것에 대한 '관념'으로 나뉜다.
ㆍ버클리는 실체의 관념은 정의상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이성을 통해서 그 존재에 도달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것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기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ㆍ흄은 어제의 의식과 오늘의 의식 사이에 동일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는 그저 유사성이 있을 뿐이나, 그것을 우리가 동일성으로 착각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27 내감의 작은 역사: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계승자들
ㆍ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 이후의 활동으로 공통감 외에 1) 상상력, 2) 판단력, 3) 기억력을 든다.
1) 상상력은 대상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능력으로, 감관에 있고 또한 감각을 닮았다. 상상력은 특히 시각에 의존한다. 하지만 상상력은 감각과는 명확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 눈이 감긴 상태에서도 어떤 영상을 보기 때문이다. 특히 꿈은 상상력이 감각과는 별개의 능력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2) 감각 위에 상상력이 있다면 그 위에는 판단력이 있다. 판단력은 감각의 측면에서 대상이 기쁨이 주는지 고통을 주는지 파악하여, 행동의 측면에서 그것을 회피할지 추구할지 말해주는 능력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억과 회상을 구별한다. 기억이 어떤 것을 지각한 후에도 그 지각을 계속 보유하는 능력이라면 회상은 상실하거나 접근이 끊긴 기억을 복구해내는 능력을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억력 역시 감각에 속하나 지성에도 발을 걸친 능력으로 보았다.
9부 감성의 미학적 구원
28 감성론으로서 미학: 바움가르텐
ㆍ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를 비롯한 이전의 합리주의자들과는 달리 인식에서 '감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대상 속에서 어떤 완전한 혹은 탁월함을 지각할 때 우리는 '쾌'의 감정을 느낀다.
ㆍ완전성은 다양성의 통일이다. - 크리스티안 볼프
29 취미의 세기: 영국의 취미론
ㆍ에디슨은 취미를 상상력과 연관시킨다. 그는 취미의 쾌가 별도의 감각이 아니라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본다. 상상력이 밖에서 들어온 인상들을 모아 상을 떠올리면, 취미는 그렇게 떠오른 상의 완전성을 판정한다. 이때 쾌가 발생한다.
30 상상력의 시대: 칸트
ㆍ이마누엘 칸트 '내감'을 내적 상태의 의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ㆍ외감은 밖으로 '공간'을 지각하고, 내감은 안으로 '시간'을 지각한다. 칸트에게 시간-공간은 직관의 형식이고, 감각은 그 직관의 질료다. 이 질료들을 시공의 형식으로 종합하여 이미지로 표상하는 능력이 바로 '생산적 상상력'이다.
ㆍ칸트에게서 대륙의 합리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는 종합에 도달한다. 합리주의자들은 미를 사물의 객관적 속성으로 보고, 그것의 판정에는 객관적 기준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기준을 그들 자신이 정한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자들의 미학은 독단적이었다. 반면, 버크와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미를 일종의 '감정'으로 보았다. 그들의 말처럼 미의 근거가 그저 주관적 감정뿐이라면, 애초에 취미의 객관적, 보편적 기준을 기대할 수 없다. 경험주의의 미학은 이처럼 미적 회의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칸트의 종합은 초월론의 관점에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두 입장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ㆍ미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이다. 미에는 실용적 목적이 없다. 미의 목적이 있다면 단 하나, 우리 마음에 드는 것뿐이다.
10부 감각의 부활
31 살아 있는 조각상: 콩디야크
ㆍ근대의 감각론에는 주류에서 벗어난 이질적 흐름도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살아 있는 조각상'이라는 사유실험으로 독특한 이론을 제시한 에티엔 콩디야크다.
ㆍ콩디야크에 따르면 판단, 반성, 욕망, 정념 등 우리 마음의 모든 기능은 감각 자체가 상이하게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역사상 가장 철저한 형태의 감각주의라 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던 로크마저도 내감이 외감에 의해 촉발된다고 했을 뿐, 내감이 외감에 의해 생산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로크는 데카르트 심신이원론의 영향 아래 판단, 반성, 욕망, 정념 등을 여전히 순수한 의식의 산물로 보았다. 콩디야크는 로크식 경험주의의 불철저함을 비판하며 마음의 모든 능력을 외감으로 환원한다.
ㆍ콩디야크는 감정을 신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설명한다. 한마디로 기쁨과 슬픔의 감정도 결국 감각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ㆍ아리스토텔레스는 촉각을 모든 감각을 토대이자 근원으로 여겼다. 콩디야크 역시 촉각이 모든 감각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32 사태 자체로: 후설·하이데거·메를로퐁티
ㆍ칸트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종합을 시도했다. 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존재의 형식 아니라 직관의 형식에 불과하다. 즉 애초에 의식이 세계 자체를 구성한 것이다. 물론 의식이 구성한 세계 밖에는 시공이라는 주관의 형식에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는 사물 자체가 존재할 것이나, 우리로서는 그것을 인식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우리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ㆍ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은 아포리아에서 탄생했다. 물음에 해답이 없는 이유는 애초에 물음 자체가 잘못 제기됐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아포리아는 정신과 신체, 주관과 객관을 분리한 근본오류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객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은 최초의 상태로 돌아가 그떄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할 것이다. 이 요청을 후설은 '사태 자체로'라는 구호로 정식화했다. 사태 자체로 돌아가기 위해, 후설은 이 최초의 나타남(현상)이 의식 안의 사건인지 혹은 밖의 사건인지에 대해 일단 판단을 중지하라고 권한다.
ㆍ후설의 영향으로 현대철학에서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 감각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등장하는데, 이는 대략 두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해석학이고, 다른 하나는 메를로퐁티의 신체현상학이다. 하이데거가 '주체와 객체의 분리' 이전의 아이스테시스를 명제진리보다 더 근원적 진리로 간주했다면, 메를로퐁티는 '신체와 정신의 분리' 이전에 아이스테시스가 갖고 있던 육체의 성격에 주목했다.
33 정신의 감성학: 플레스너
ㆍ헬무트 플레스너 역시 현상학적, 해석학적 전통 안에 속한다. 감각지각을 무엇보다도 체현된-행동화된-육화된 현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을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봄으로써 근대철학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기획을 플레스너는 '정신의 감정학'이라 불렀다.
34 육체와 신현상학: 슈미츠
ㆍ환원주의란 세계의 그 모든 풍부함을 과학의 통계적, 실험적 방법에 적합한 몇가지 특징들로 환원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ㆍ슈미츠의 신현상학, 슈미츠가 부활시키려는 것은 육체다.
ㆍ슈미츠에 따르면 '내가-지금-여기-이 상황에 있음'을 확신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 몸을 보면서 손으로 만지는 것이다. 또다른 명증성을 체험하는 방법은 패닉에 빠졌을 때 내게 시공의 좌표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때 느껴지는 급박함과 좁음은 상대적 시공과는 성격이 다른 시공간, 즉 절대적 시간, 절대적 공간이다. 육체로서 자아는 이 절대적 시공간 속에서 감지된다.
35 감각의 논리: 들뢰즈
ㆍ들뢰즈 역시 다른 신체현상학자들처럼 심신이원론을 거부하고 주객이 분리되지 않은 신체에서 출발한다. 신체가 대상이자 주체라는 관념은 직접적으로는 메를로퐁티에게서 유래한 것이나, 인간은 신체이자 동시에 신체를 갖는다라는 플레스너의 명제와도 상통한다. 하지만 이들과 들뢰즈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여전히 지각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인식론적 현상인 지각과 신체에서 벌어지는 존재론적 사건인 감각을 분명히 구별하기 때문이다. 특히 들뢰즈는 후자, 즉 감각에 주목한다.
ㆍ20세기의 해석학적, 언어학적 전회는 감각을 '상징계'에 편입시켰다. 현상학은 심신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아직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 그동안 물리적 신호의 제공자로만 여겨졌던 감각에 의미부여의 해석능력을 수여했다. 현상학의 이 해석학적 전회를 통해 감각은 의미나 해석의 차원을 갖기에 이른다. 한편 언어철학은 근대의 심리학주의를 비판하는 가운데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사적 표상인 감각질을 언어놀이와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령 비트겐슈타인에게 감각의 현상적 특질이란 오직 미적 체험에만 유효한 것이었다.
나가며 육체의 오디세이
ㆍ미학은 과도한 이성주의로부터 감각을 구제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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