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실험적 사랑 / 발터 반 로숨

by mubnoos 2022. 3. 14.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들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의 대조되는 기질과 닮은 기풍은 이상적인 상호보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태어난 시민적인 환경에 철저히 반항하고, 자유와 자율을 동경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서, 강연 그리고 활동을 통해 금세기의 사상과 사건, 즉 실존주의와 남녀평등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자유로운' 사랑의 모델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1997년에 발간된 이후, 이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가 시작됐던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유쾌하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지적인 방종의 뒤안길에 억압과 양성애의 기질을 은폐하고 있었던 것일까?

 

 

 


서문 / 존경과 멸시의 야누스, 그들

 

ㆍ이 책은 불확실성 위에 서로를 구속했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러한 일은 쉽지 않았고 항상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개개인의 삶이 실험적인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1. 이탈이 빚어내는 관계의 기술

 

ㆍ"당신은 나 자신입니다."

 

ㆍ인간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귀속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망각하는 존재이다. (사르트르 작품의 기본 소재)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고유한 삶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확실한 보장이 없으면 그 가능성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만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다. 

 

ㆍ"나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쓰는 것이 매우 즐겁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ㆍ보부아르 = 카스토르

 

ㆍ보부아르는 그녀의 일기에서 "사랑은 공생이 아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르트르에겐 원칙이 있었다. 사르트르는 이 원칙을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에 적용했고, 보부아르가 이 원칙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녀도 인정했다. 둘은 낭만적이지 않은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를 힘들게 배워야 했다. 역사의 시간 속,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예외적인 상태에서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 이 사랑의 비밀은 서로 거리를 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당신은 나 자신입니다." 낭만적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은 침묵의 황홀, 모든 가치와의 불일치와 지양, 존재에서의 악의 제거를 의미한다. 

 

ㆍ언어는 이별이 있기에 때문에 존재한다. 언어는 이별을 끝없이 되돌리고 또 재생산한다. 모든 것이 말로 표현될 수는 없지만 말로 표현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만 성공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ㆍ그는 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자신에게 내재한 무언가를 학대하고자 하는 듯 했다. 행복한 육체적 관계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자연적인 욕구가 아닌 파괴적인 폭력이 그를 이끄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완전히 경직되고 마비되고 있었다. 따뜻한 감정도 그 상황을 완화시킬 수 없었다. 나는 이 남자가 학습된 프로그램을 따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 비앙카

 

ㆍ사르트르는 언어의 거장, 유혹적인 편지의 거장이었다. 

 

 

 

 

 

 

 

 

 

 

 


2. 시몬과 카스토르

 

ㆍ보부아르는 동시대에 많이 읽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였다. 게다가 그녀는 <제2의 성>을 출간했는데, 그 책의 파급력은 사르트르의 천재적 행동을 미미하게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https://mubnoos.tistory.com/1528

 

제2의 성 / 시몬 드 보부아르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제2의 성 = 여성 https://www.youtube.com/watch?v=s3m7chXKjvE ㆍ시몬 드 보부아르는 소설가, 철학자, 저널리스트, 극작가, 회고록 작가, 참

mubnoos.tistory.com

ㆍ"우리는 여자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3. 사르트르 또는 처세술로서의 배반

 

ㆍ우연성, 그것은 인류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우아함이다. 

 

ㆍ사르트르는 여자의 내부에서 가장 구체적인 것, 내면적인 것을 유혹했다.

 

 

 

 

 

 

 

 

 


4. 발단과 계약

 

ㆍ무엇이 사르트르를 그렇게 매혹적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분명 삶 속에서 나타나는 그의 지적인 기질일 것이다. 

 

ㆍ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구혼한다. 단, 자유를 즐기는 그들의 사랑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도록 그들이 함께 행동한다는 조건을 달고, 그에게는 이러한 형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ㆍ도대체 이 두 젊은이들은 그런 관습을 머뭇거림 없이 포기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자신감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위하여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르트르는 모든 의심을 거부하는 과대망상을 지니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만인과 특히 자기 자신에게 의지력으로 어떻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그들은 과거를 극복했다. 

 

ㆍ사르트르는 그녀에게 2년간의 계약을 통해 전례 없는 시도를 지켜나갈 것을 제안한다. 우선 그들은 그들이 이론적으로 승인한 자유를 2년간은 누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주저 없이, 그리고 새로운 제약도 없이 우리의 생활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약도 했다. 서로를 기만하거나 다른 그 무엇도 숨기지 않겠노라고." 이 계약은 두 사람이 모든 속박을 떨쳐버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규칙을 실행함으로써 사랑의 실체를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ㆍ이 두 사람은 아무 재산도 없이 누추한 호텔에서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았다. 그들은 아무 곳에도 연고를 갖지 않고, 아무런 계급도 추구하지 않을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난 그녀를 질투자히 않는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랬다. 처음으로 사르트르에게 다른 여자가 중요해졌다. 나는 질투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난 그런 감정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로 놀라지는 않는다. 내가 우리의 삶에 대해 했던 생각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르트르가 나에게 처음부터 말했듯이, 그는 예정에 없던 곳을 여행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원칙을 수용하고, 그 사실 또한 주저없이 수용한다."

 

 

 

 

 

 

 

 


5. 이 세상 내부의 세상

 

ㆍ몰입하는 능력은 들뜸과 가라앉음을 즉각 방어하는 기술이다.

 

ㆍ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지칠 줄 모르는 자기 초월을 이해하고 그것에 매혹되었다는 이유만으로 50년 가까이 그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ㆍ보부아르는 앨그렌과 함께 그녀의 '완전한 첫 번째 오르가슴'을 체험했다. 동시에 그녀는 '남녀 사이의 사랑이 얼마만큼 진정으로 열광적일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로 사르트르가 23세였고 보부아르가 21세였다. 모두 고등학교 철학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의 친구인 르네마(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되었다. 젊은 두 남녀는 첫눈에 서로 반했다. 특히 보부아르 쪽에서 더욱 깊이 빠졌다. 사르트르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키는 겨우 160cm에 불과했고 눈은 또 사팔뜨기였다. 그러나 그의 두뇌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재였다. 이 이상한 천재에게 보부아르는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만난 젊은 두 사람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계약결혼’이란 이름의 새로운 형태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결합은 확실히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계약결혼 조건의 주요 내용은 이러했다.

  •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다.
  • 아이를 낳지 않는다.
  • 늘 함께 살 의무를 지지 않는다.
  • 부부 사이에 부르는 ‘튀(여보)’ 호칭을 쓰지 않고 거리를 두는 ‘부(당신 정도의 의미)’라는 호칭을 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의식적이든 우연이든 맞게 되는 타인과의 로맨스를 간섭하지 않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결혼을 이들은 시작한 것이다. 이런 조건 때문인지 사실 이 두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제각각 숱한 여성과 남성들과 별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듯이 혼외정사를 즐겼는데 요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행위를 그들은 평생을 해왔던 것이다.

 

 

사르트르가 처음 육체적으로 상대한 여성은 창녀였다. 19세 때였고 창녀는 22세였다. 시몬느라는 이 아가씨는 어릴 때 친척에게 몸을 빼앗기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18세 때부터 몸을 팔고 있던 창녀였다. 두 사람은 엉뚱하게도 한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사르트르는 그 아가씨에게 빠져 사흘 밤낮을 그녀와 함께 침대에서 보냈다.

 

섹스를 몰랐던 사르트르에게 시몬느의 육체는 감미롭고 황홀했으며 그녀의 육체 깊은 곳으로 빨려 들기만 했다. 기겁을 한 사르트르의 가족들이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사르트르의 가족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몬느가 스스로 사르트르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더 멋지고 돈 많은 새로운 애인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1934 29세의 사르트르는 베를린에 있었다. 이때 사르트르는 이미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을 한 뒤였고 보부아르를 파리에 남겨두고 베를린엔 혼자 와 있었다. 그가 베를린에 온 것은 일종의 유학이었다. 그런데 이 베를린에서 사르트르는 또 한 명의 여성과 로맨스를 갖게 된다. 상대는 마리라는 여성으로 유부녀였다. 이 유부녀와의 사랑에 사르트르는 한동안 깊이 빠졌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되어 파리로 되돌아 온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베를린에서 있었던 마리와의 연애 사건을 낱낱이 털어 놓았다. 이것은 용서를 비는 고백이 아니라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당당한 보고였다.

 

유학을 끝낸 사르트르가 베를린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10대의 아름다운 소녀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민 온 소녀였는데 이름이 올가였다. 당시 사르트르는 약물 복용으로 가끔 환각 증세를 보이곤 했는데 올가는 바로 이런 사르트르를 돌보는 간병인이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간병인과 환자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남녀의 관계로 이어졌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사는 집안에서 올가는 함께 살면서 사르트르의 새로운 애인이 된 것이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서 보부아르는 그녀의 소설 <초대 받은 여자>에서 언급하고 있다. 즉 연하의 여성이 어떻게 연인을 빼앗아 가는가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녀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르트르가 이렇게 바람을 피우는 동안 보부아르는 얌전히 사르트르의 곁만 지키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니었다. 보부아르도 이 사이에 몇 명의 남성들과 로맨스를 가졌다. 물론 사르트르도 알고 있었다.

 

사르트르 외에 그녀가 사귄 첫 번째 연인은 미국의 소설가 넬슨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40년대 후반이었는데 보부아르는 그때 이미 39세의 나이였다. 보부아르는 넬슨과의 정사로 사르트르에 대한 질투의 괴로움을 이겨 낼 수 있었으며 또 성적으로 회춘을 할 수 있었다. 보부아르는 넬슨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사르트르의 입장이 묘하게 되었다. 질투라는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사르트르도 보부아르와 넬슨과의 관계가 깊어지자 긴장되고 침통해졌다. 이 긴장과 우울을 사르트르는 또 다른 미국 여성과 관계를 가지면서 잊으려고 했다. 이렇게 서로서로 ‘우발적 연애’를 하고 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러나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은 채 용케도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 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1950년대에 일시적으로 팽팽한 긴장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넬슨과의 관계를 청산한 보부아르가 이제는 17세나 연하인 한 신문기자와 사랑에 빠졌기 떄문이다. 이때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여행을 함께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랜츠먼이란 이 신문기자와 동거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때에도 사르트르는 이에 대항이라도 하려는 듯 겨우 17세에 지나지 않는 유태인계 알제리아란 소녀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사르트르는 이 소녀를 너무 깊이 좋아해 한때는 이 소녀와 정식 결혼식을 올릴까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성을 되찾은 사르트르는 결국 이 소녀를 양녀로 삼으면서 보부아르와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이즈음 상당히 오래 계속되었던 레츠먼도 보부아르의 곁을 떠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오랜만에 다시 옛날로 돌아왔으며 두 사람의 애정은 이런 파란을 거친 뒤 더욱 깊고 튼튼한 끈으로 묶여졌다. 그 뒤 두 사람의 괴이한 결혼생활은 51년 동안 계속되다 1980 4 15일 보부아르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사르트르가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떠난 6년 뒤인 1986 4 14일 보부아르도 79세의 나이로 영원한 연인인 사르트르의 뒤를 따라 이 세상을 떠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 사람의 계약결혼은 전통적인 규범이나 윤리관으로 볼 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합이었다. 그러나 인습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새로운 부부형을 제시해주었다.

보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보부아르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지능이나 교양이 높고 권위를 갖추었으며 나를 위압할 수 있는 남성을 원했다”라고 말해왔으며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바로 이런 남성이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철학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성적은 사르트르가 1등을, 보부아르가 2등을 했다. 처음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제의한 계약결혼 조건은 2년 동안이었다. 2년 동안 살아보고 살 만하면 그때 그때 연장해 나간다는 조건이었다. 보부아르는 이때의 일을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그냥 사실혼의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부부가 지켜야 하는 의무나 부담감 같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사르트르가 일부일처의 틀에 얽매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23세의 나이에 접촉하게 되는 많은 매력적인 여성들의 유혹을 모두 뿌리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이를 ‘필요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우발적인 사랑’도 서로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또 우리의 결합은 억지로 유지되거나 하나의 습관으로 타락해서는 안 되며 모든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이러한 상태를 막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사는 동안 어떤 때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르트르가 제3의 여인과 로맨스를 가지게 되면 사르트르는 이 사실을 편지로 보부아르에게 알려주곤 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여인들과의 관계를 보부아르가 받게 될 마음의 상처나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주 노골적인 표현을 써 가면서 상세히 고백을 했다.

 

육체 관계를 가지면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그대로 편지에 적는가 하면 여인들이 사르트르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연애편지 전문을 그대로 베껴 보내기도 했다. 잔인할 정도의 정직함조차 이들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결합시킨 사랑은 보통 사람들의 애정관계와는 차원이 다른, 닿을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신뢰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히 여성으로서의 보부아르의 탈선을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상식적인 테두리를 인정하지 않는 보부아르는 이런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만년에 가서 “개방적이고 대담해지는 섹스 관계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태도의 해이를 정당화해 주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보부아르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인생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성공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르트르와의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인간들은 너무나 추상적으로만 자유를 말한다. 그들은 그저 외부의 강제만 없으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가 선택할 수 있고, 또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이다. 자유란 곧 자신의 삶의 상황 속에서 확실성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