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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을 권리 / 황두영

by mubnoos 2022. 1. 27.

 

 

 

 

 

들어가는 말: 제도는 자유를 위한 것

혼자 아니면 결혼, 내키지 않는 두 선택지를 넘어서기 위해서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하다. 생활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에 이르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연인일 수도 있다. 또 이혼과 사별 후에 더 이상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는 사람도, 노인과 장애인처럼 특히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긴요하게 쓸 수 있는 제도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 '이외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둘이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해소할 때 필요한 공정한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다. 

 

ㆍ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고독'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외롭다. 국가는 국민이 외롭게 살도록 방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폭증하는 1인 가구를 자유와 낭만을 갖춘 새로운 생활방식처럼 꾸미지만 실제로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누구와 같이 사는 게 민폐가 되는 여러 환경, 너무 높은 결혼의 장벽, 가부장적 가족문화 등으로 어쩌다 보니 비자발적으로 1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족 간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서로 돌보지 못하거나 돌봄을 거부하는 상황도 빈번해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운 경우가 많다.

 

ㆍ고독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실재한다.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그건 사회적 문제이자 정책적 과제다. 지속적인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돌봄을 제공하는 자원이 필요하다. 

 

 

 

ㆍ제도는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제도가 금지의 형태를 갖는 것은 다른 이의 자유로운 삶을 훼손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금지 자체가 제도의 목적이어서는 안 되며, 개인이 그려나가는 삶의 지도를 국가가 대신 그려줄 수도 없다. 더욱 다양한 욕망으로 다양한 관계로 가족을 꾸리려고 할 때 제도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ㆍ제도는 모든 이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1부 외로운 대한민국

 

 

한국에서는 가족이 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 값이 너무 비싼 나머지 가족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치열한 가족 구조조정의 그 결과,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해졌을까? 가족으로서 주어진 과도한 부담을 피하고자 가족구성원을 줄여나간 결과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과 일상을 나누는 행복,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줄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가족 구조조정으로 위험은 줄일 수 있었지만 ‘돌봄 공백’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ㆍ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한국 사회의 폭력과 고도성장기를 거친 우리 부모 세대가 겪어야 했던 혼돈과 열패감은 모든 아이의 기억에 상흔을 남겼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외로움은 이미 끓어 넘치고 있다. 국민들이 외로워져야만 굴러가는 이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니 이를 해결할 창의적인 방안도 찾지 않는다. 혈연가족과 살거나 결혼하는 게 답이 아닌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게 최종적인 해결책일까?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안전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불안과 외로움은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와 살지 않은 죗값일까?

 

ㆍ문제는 한국 경제가 과거처럼 빠르게 성장하지 않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가족에 대한 투자 성과가 없어지면서 일어났다.

 

ㆍ결혼을 하면 배우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가족과 나의 가족 모두가 내 삶에 리스크다.

 

ㆍ졸혼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고 별거하는 현상인데, 배우 백일섭 씨와 소설가 이외수 씨가 졸혼을 선언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는 이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이혼 절차를 거쳐서 양육권을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재혼을 할 의사가 없다는 전제하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자녀에 대한 증여, 상속 문제도 생길 수밖에 없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가 이혼하면 배우자의 가족에게 알리기 난처하기도 하고, 혹요 재혼할 경우 상속분이 줄어들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ㆍ이러한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것은 오히려 무모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안 낳아서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겁을 줘봤자 아이를 낳으면 당장 내가 망할 것 같은 불안감보다 강하기는 어렵다. 

 

ㆍ아이를 낳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이를 대충 키워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도 공공교육을 확대해 육아 노동의 부담을 줄여주고, 아동수당을 통해 아이에게 나가는 생존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단순히 살아 있게 하는 것 이상이다. 한국의 양육은 더 나은 계층에 자녀를 데려다놓기 위한 도전이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가족 앞에서 모든 노력이 정당화되는 한국 사회가 나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가난한 사람은 가족 때문에 이 모양이라며 서로를 원망하고, 모든 걸 가진 사람은 그 힘으로 가족을 끌어올리려고 부정을 저지른다. 가족 사랑을 이유로 교사가 시험지를 훔치고, 국회의원이 자녀를 대기업에 취업시키려고 기업을 협박한다. 정권 비선실세가 재벌과 사학을 불러다가 딸이 대학에 갈 방법을 찾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자녀를 위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한다. 한국 사회의 '가족 사랑'이 가끔 참을 수 없이 역겹다. - 가족 사랑에서 책임과 의무를 덜어야 한다. 대충 사는 사람도 대충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덜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함께 살고 서로를 돌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을 기반으로 함께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 일단 정부는 돈을 아낄 수 있다. 가령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상 2019년 최저 생계비용의 기준을 1인 가구 51만2102원, 2인 가구 87만1958원으로 잡고 있다. 단순 계산해 수입이 전혀 없는 두 명에게 생계급여를 지급할 때, 혼자 사는 두 명에게는 102만4204원을, 둘이 같이 살면 87만1958원을 지원해야 하므로 재정을 약 17%가량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둘이 같이 살면 최저 생계비용 이상의 소득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므로 실제로 더 많은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2부 서로 돌보며 함께 살지만


혼자는 힘들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정서적 충만, 경제적 안정, 장애 활동보조 등 이성애적 사랑에 비해 작은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는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국가가 굳이 따져 묻는다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수도 있다.

 

ㆍ동거 가구의 가정폭력 피해자는 이혼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ㆍ동거 경험이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가정폭력 피해에 더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 

 

ㆍ동거 커플에겐 안전 이별은 중요한 문제다. 안전 이별은 정신적, 물리적 폭력 없는 이별이란 뜻이다.

 

ㆍ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부부로서 누려야 할 법적 인정, 사회복지혜택을 포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혼인신고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ㆍ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다. 정확히는, 동성애자도 위한 법이다. 동성애자도 대한민국 헌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인 이상 우리 법의 혜택에서 배제할 수 없다.

 

ㆍ1999년 프랑스는 시민연대협약인 팍스(PACS)를 도입하며 선도적으로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 프랑스 팍스는 동성, 이성 가리지 않고 동거를 폭넓게 인정하며 사회복지혜택 등 다양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ㆍ차별금지법은 벌써 13년째 싸우고만 있다. 그저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일 뿐인데 말이다.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립 생활의 방식이 다양할수록 자립을 결심하기가 더 쉬워진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권리라는 큰 틀 안에서 혈연·혼인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도 더불어 논의되어야 한다. 두 권리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함께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이다. 

 

‘결혼’외에 가족을 구성할 방법이 없는 건 섹스하지 않는 사람과는 애초에 가족을 만들 법적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가족 구성을 위해 ‘성애적 관계’를 반드시 전제하는 것은 차별이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함께 사는데 성적 관계가 필수일까? 신뢰를 담당하는 중추가 성기에 달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3부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ㆍ생활동반자는 친족과는 다른 별도의 법적 관계를 새로 정의한다. 생활동반자를 맺어도 나는 나일 뿐, 누구의 아내도 남편도 며느리도 사위도 아니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 아누 파르타넨

 

ㆍ모든 가족은 제각기 다른 비합리성의 총체다. 모든 가족을 조금만 깊게 살펴보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각기 다르게 엉망진창이다. 

 

ㆍ이 괴물(가족)이 당신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당신은 이 괴물을 사랑해야 한다. 아니 사랑을 넘어서 괴물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괴물의 뱃속에서 내 삶이 삭아간다. 

 

ㆍ가족은 무거울 뿐 아니라, 기능들도 구분되어 있지 않다 

 

ㆍ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즐거움의 값이 너무 비싸다.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은 협소하고 책임은 크다. 

 

ㆍ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혹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등록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찾아야 한다. 낡은 성 역할에 기대지 않고 평등한 개인끼리 함께 사는 방법, 윤리, 제도를 말이다. 

 

ㆍ가족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 가족을 이루는 데 너무 높은 장벽은 함께 사는 즐거움을 포기하게 한다. 지금은 강요된 외로움의 시대다.

 

ㆍ행복추구권은 스스로, 내 인격에 따라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한다. 

 

ㆍ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혼인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어 가까운 친척 관계가 아닌 동성동본 부부의 혼인을 허가하였다. 

 

ㆍ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며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건 사회적 에티켓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선택과는 별개로 결혼에 대한 접근은 불평등하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혼인만으로 제한하는 건 평등과 차별의 문제다. 결혼이 싫으면 안 하면 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다. 

 

ㆍ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익숙할 뿐,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국가가 굳이 따져 묻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수 있다.

 

ㆍ섹스하는 사이만 같이 살 수 있나요?

 

ㆍ부부라고 해서 성관계로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는 이성애 부부에게 원활한 섹스를 하냐고 묻거나 증명하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부부가 성생활 없이 살지만 그들에게 가족을 구성할 자격이 없으니 헤어지라고 강제하지 않는다. 더구나 가족을 구성하겠다고 정부에 밝힐 때 내가 상대와 섹스하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면 이는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 

 

ㆍ이성애자의 성애적 관계에만 가족을 만들 권리를 부여하는 건 사회의 노동력 재생산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다.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노동자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기를 수 있는 커플에게만 함께 살 권리를 부여해온 것이다. 그 사이에서 노동력 재생산과 무관한 사람들의 함께 살 권리는 배제되어 와다. 

 

원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꾸릴 자유가 헌법적 권리라면, 그 틀이 꼭 혼인이어야만 할까? 혼인제도는 하나의 선택에 불과해지고 있다. 개인의 가치관, 경제적 상황, 삶의 단계 등에 따라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할 수 있다. 행복추구권이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 자기운명결정권을 포함하고 있는데, 내 운명 중에 혼인만 유독 자신의 의지로 바꾸지 못하는 상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나 우리 사회의 공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면 혼인만이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문제를 좀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가져온다. 혼인이 배우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맺는 계약이라면, 생활동반자는 둘의 동거에만 초점을 맞춘 계약이다. 그렇기에 생활동반자 관계의 해소는 이혼과 다르다. 생활동반자 해소는 어디까지나 사생활의 문제이며, 나의 사회적 신분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돈도 감정도 둘 사이에 잘 정리하면 된다. 

 

ㆍ돌봄의 국가의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여성의 본능이자 덕목이라고 여겨졌다. 

 

ㆍ상대가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이 사람과 함께하기로 결정했을 때야말로 행복할 수 있다. 

ㆍ사회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정차 평등해질 때, 정작 그들을 위한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면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될 뿐이다. 

 

ㆍ가정의 본질을 살펴보면 영구적인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서로 보살피고 협력하는 구성원들이 구성한 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영구적인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는 단체가 꼭 친족일 필요는 없다. 

 

 

 

 

 

 

4부 만들자, 생활동반자법

 

ㆍ낡은 가족제도의 틀이 서로 돌보며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을 더 외롭게 두어선 안 된다.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겠다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마음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ㆍ생활동반자를 맺을 수 있는 사람

- 합의한 성인이 함께 등록

- 영주자격 외국인의 생활동반자 등록

- 청소년은 맺을 수 없어

- 혼인 중인 사람도 불가

 

ㆍ생활동반자가 함께 살 때

- 주거권

- 피부양자 인정의 문제

- 도와줄 권리

- 대신 결정할 권리

- 비혼 독신자의 친양자 입양 허용

 

ㆍ생활동반자가 헤어질 때

- 해소의 사유

- 함께 이룬 재산의 분할

- 손해배상 위자료-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ㆍ생활동반자가 사망할 때

- 장례를 치를 권리

- 상속과 유언의 문제



 



나가며: 한국정치의 다음 단계

 

ㆍ사람들은 외로움이라는 통증을 다스리느라 삶의 많은 부분을 허비한다.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은 다들 외로움을 견디며 노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악다구니 쓰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간다. 덜 외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