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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대한 반론 / 마이클 샌델

by mubnoos 2021.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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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화의 윤리학

ㆍ계획적으로 자녀를 청각장애로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ㆍ특정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아이를 '주문'하려는 부모의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ㆍ왜 예측 불가능함이라는 요소가 도덕적인 면에서 차이를 낳은 것처럼 보이는가?

 

ㆍ유전학의 획기적인 발전은 밝은 전망과 어두운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 유전학은 인간을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밝은 전망을 제공한다. 우려되는 점은 새로운 유전학적 지식으로 인해 자연으로서의 우리 모습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령 근육의 힘과 기억력과 기분을 향상시키고, 자녀의 성별과 키를 비롯한 유전적 특질을 선택하고, 신체적?인지적 능력을 개선하고, 우리 자신을 “비할 데 없는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ㆍ현대사회에서 거의 간과되고 있는 문제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자연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문제, 주어진 이 세계에서 인류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런 문제는 거의 신학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에 현대의 철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새로운 힘을 갖게 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다.

 

 


불안감의 근원 

ㆍ새로운 유전한적 지식으로 인해 자연으로서의 우리 모습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ㆍ자연으로서의 우리를 공학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1) 태어날 아이의 자율권을 침해한다.

2) 자기 자신을 위해 유전적 강화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불편함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만약 옳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ㆍ유전적 강화의 목적은 질병의 치료나 예방, 신체적 손상 복구, 건강회복과 관계가 없다. 

 

 

 

 

유전공학

ㆍ치료와 강화 사이에는 도덕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차이가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ㆍ선천적 불평등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ㆍ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강화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기술을 과연 열망해야 하는가?'이다. 

 

ㆍ우리는 자녀가 이미 충분히 건강한데도 그 자녀의 키를 몇 센티미터 더 늘리기 위해 거금을 써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ㆍ불편한 감정의 원인은 그 수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기술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있다. 

 

ㆍ그것들이 인간의 자유나 번영의 어떤 측면을 위협하는가?

 

 

 

 

 

 

2. 생체공학적 운동선수


스포츠의 이상: 노력인가, 재능인가

ㆍ강화와 유전공학에 따르는 주요한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노력과 주체성을 훼손한다는 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러한 기술이 일종의 과도한 행위 주체성을, 다시 말해 우리의 목적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본성을 비롯한 자연을 개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을 대표한다. 문제는 인간의 기계화가 아니라 자연과 본성을 정복하려는 충동이다. 

 

ㆍ스포츠의 핵심은 노력이 아니라 탁월한 성과다. 유전공학으로 경기력이 강화된 운동선수의 진짜 문제는, 자연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인간 활동으로서의 스포츠 경쟁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ㆍ운동 장비의 혁신도 일종의 강화 수단이다. 

 

ㆍ나쁜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수술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만일 우즈가 정상적인 시력을 갖고 있었는데도 시력을 더 향상시키기 원했다면 어떤가? 이 수술은 부당한 강화인가?

 

ㆍ나이키의 '고도 조절 숙소': "생활은 고지대에서, 훈련은 저지대에서" 히말라야 산맥과 유사한 고도에서 수면을 취함으로써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수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지구력의 핵심 요인이다. 그리고 해수면 수준의 지대에서 일주일에 100마일 이상을 달리면서 근력을 극대화한다. 

 

ㆍ혈액이 근육에 산소를 전달하는 능력을 강화해 선수의 지구력을 증가시킨다. '저산소 방과 저산소 텐트'사용은 세계반도핑기구에 의해 위배된다. 

 

ㆍ어떤 경기에서든 규칙이란 완전히 임의적인 것이며, 규칙을 정당화하는 것은 오로지 경기의 오락적 재미와 관중수뿐이다.

 

ㆍ안정성 문제 이외에는 경기력 강화를 위한 약물 복용이나 유전학적 개입을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다. 

 

ㆍ나는 강화와 유전공학에 따르는 주요한 문제는 그것이 인간의 노력과 주체성을 훼손한다는 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러한 기술이 일종의 과도한 행위 주체성을, 다시 말해 우리의 목적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 본성을 비롯한 자연을 개조하려는 프로메테우스적 열망을 대표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인간의 기계화가 아니라 자연과 본성을 정복하려는 충동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인간의 능력과 성취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관점을 놓치고 있으며 심지어 그런 관점을 파괴할 수도 있다

 

 

 

 

 

 

3. 맞춤 아기를 설계하는 부모

ㆍ우리는 친구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들이 지닌 매력적인 특성을 어느 정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자녀는 그렇지 않다. 

 

ㆍ문제는 부모가 자녀를 설계함으로써 자녀의 자율권을 빼앗는다는 점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설계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스스로 선택해 태어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자녀를 설계하는 부모의 오만함, 그리고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다.

 

ㆍ의학적 치료가 자연적 상태에 개입하는 것이기는 해도 그것은 건강의 회복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통제와 지배를 향한 욕구가 담겨 있지 않다.

 

ㆍ무엇을 좋은 건강이라고 보고, 무엇을 정상적인 인간의 기능이라고 볼 것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ㆍ건강을 순전히 도구적 관점으로만 보는 것, 즉 다른 무언가를 최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ㆍ치료와 강화를 구분하는 경계는 흐릿하다. 

 

ㆍ부모의 사랑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받아들이는 사랑'과 '변화시키는 사랑'이다. 

 

ㆍ성과와 완벽에 대한 요구는 주어진 능력을 불평하는 충동에 불을 지핀다. 이것이 강화에 도덕적 문제가 수반되는 근원적 이유다.

 

ㆍ생명공학 기술로 아이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도한 간섭과 관리가 수반된 요즘의 양육 방식과 정신적으로 비슷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둘이 유사하다 해도 아이의 유전적 조작을 찬성해야 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부모가 지나치게 관리하는 양육 관행에 물음표를 던져봐야 할 이유가 된다. 오늘날 자주 목격되는 과잉 양육은 삶을 선물로 바라보는 관점을 놓친 채 과도하게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심리를 보여주는 징후다. 이것은 우생학에 가까워지는 불안한 징조이기도 하다. 

 

 

 

 

 

 

 

 

 

 

4. 우생학의 어제와 오늘

ㆍ'잘 태어난' 우생학

 

ㆍ1907년 유전적으로 결함 있는 미국인들 6만 명 이상이 불임수술을 당했다.

 

ㆍ정확히 무엇때문에 우생학이 잘못된 것인가? 오로지 강제성을 띤다는 이유 때문에 우생학에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음 세대의 유전적 구성을 통제하기 위한 비강제적 방법들도 잘못된 것인가?

 

ㆍ인공수정은 예비 부모들이 자녀가 갖고 태어나길 원하는 유전적 특성을 지닌 생식세포를 고를 수 있게 해준다. 

 

ㆍ난자 시장에 반대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무엇인가? 

 

ㆍ우생학적 목적으로 아이를 설계하는 것과 시장의 요구에 따라 아이를 설계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는가?

 

ㆍ자유주의적 우생학은 사회적 개혁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특권층 부모가 원하는 종류의 아이를 갖고 아이에게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주기 위한 방법이다. 자유주의적 우생학은 국가가 강제하는 유전공학을 전혀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유전공학으로 설계되는 아이의 자율성이 존중되기만을 요구할 뿐이다.

 

ㆍ우생학적 양육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양육 방식은 세계에 대한 특정한 태도, 즉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태도를 표현하고 확고히 하기 때문이다. 

 



 

 

 

5. 정복과 선물

ㆍ유전학적인 혁명이 인간의 능력과 성취에 선물의 성격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인식을 잠식한다면, 겸손-책임-연대라는 도덕적 지평의 세 가지 중요한 특성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ㆍ우리는 진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점으로 향하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우주적인 사건이다.

 

ㆍ유전적 강화가 노력과 분투의 의미를 퇴색시킴으로써 인간의 책임성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책임성의 약화가 아니라 책임성의 증폭이다. 겸손이 와해되면서 책임성이 엄청난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운보다는 선택에 많은 무게를 두게 된다. 아이를 위한 적절한 유전적 특성을 선택한 것이나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부모에게 지워지게 된다. 또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되는 재능을 획득한 것이나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운동선수 자신에게 지워지게 된다.

 

ㆍ요즘도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운동능력 강화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선수들이 서로에 대해 갖는 기대치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선발 투수가 속한 팀의 득점이 부진하면 나쁜 운을 탓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요즘은 암페타민이나 여타 자극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늘어나서, 그런 약제를 복용하지 않고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은 “발가벗고 출전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ㆍ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 보험 시장은 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와 관련된 위험 요인을 모르거나 통제할 수 없을 때에만 연대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하여 각 개인의 병력과 기대수명을 신뢰할 만한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보험에 가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건강하지 못할 운명을 지닌 사람이 부담하는 보험료는 엄청나게 치솟을 것이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나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속한 보험회사에서 탈퇴하기 시작하면서 보험의 연대성 측면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ㆍ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강화를 둘러싼 논란에 내재한 도덕적 의미는 자율성이나 권리 같은 익숙한 개념만으로, 또 비용과 이익의 계산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화에 대한 나의 우려는 그것이 개인적 악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습관과 존재 방식에 결부되는 문제라는 데 있다.

ㆍ우리의 본성에 맞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신 세상에 맞추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사실 우리의 힘과 자율권을 잃어버리는 행동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하기 힘들어지며, 정치적·사회적 개선을 향한 충동도 무뎌진다. 우리는 새로운 유전학적 힘을 이용해 “인간성이라는 뒤틀린 목재” 를 똑바로 펴려고 하기보다는,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지닌 재능과 한계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정치적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에필로그

ㆍ현재 미국에는 아이의 복제를 금지하는 연방법이 없다. 

 

ㆍ배아는 태아가 아니다. 그 배아는 식별 가능한 인간의 특성이나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ㆍ모든 인격체가 한때 배아였다는 사실과 수정에서부터 출생 사이의 과정에서 인격체로 보기 시작할 수 있는 확실한 지점이 없다. 

 

 

ㆍ미끄러운 경사길 오류, 배아 공장, 난자와 수정란의 상품화를 경고하는 이들의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배아 연구가 필연적으로 그런 위험들을 초래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연구용 복제를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초기 인간 생명의 신비로움을 지키기 위한 적절한 도덕적 규제들을 마련한 가운데 그러한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할 때에야 비로소 초기 단계의 인간 생명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막을 수 있으며, 생의학의 발전이 인간적 감수성을 침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mubn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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