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텐트 안에서 후레시를 입에 물고 버릴 물건을 정리했다. 그렇게 버리고 추렸는데도 쓸데없는 물건이 이리도 많은 걸 보니 난 참 많은 걸 가졌구나 했다.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가로등 하나 없고, 집도 없이 어두운 텐트안에서 씻지도 못하고 끈적한 몸으로
뒤적뒤적 가방 안에 MP3와 헤드폰을 발견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예상 밖의 일이다.
MP3의 전원을 꾸욱 눌렀다. 사과무늬가 불빛과 함께 빛났다. 낯설며, 익숙한 느낌이다. 전자파의 힘이 생각보다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MP3의 배터리가 절반 정도의 잔량이 남은 것을 확인했다. 헤드폰의 스폰지가 땀이 말라 끈적했다. 후레시를 끄고 음악을 들었다. 침묵의 어둠.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은 듯 나 자신도 없어지는 듯 하다. 가슴속에 바람 같은 것이 부는 듯 시원했고, 마치 이곳에 있지 않은 것처럼, 두려움 같은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배터리의 잔량에 비해 밤은 길다. 아마 배터리가 나가면 먼 길을 차를 타고 나가 돈을 내고 충전을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짐이 되버리거나..
잠들지 않고 배터리가 나갈 때까지 어둠 속에서 음악을 들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기술과 과학, 혹은 내가 가진 것들이 자연의 거대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연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있을까?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법칙과 예측 불가능한 날씨, 수많은 벌레들, 제각기의 짐승들,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 생육하여 번성하라 했거늘, 살아 움직이는 자연은 경의로우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 그자체다. 자연은 냉담하다. 한편으로는 숨막힐정도로 고요하다.
MP3의 배터리와 달리, 태양은 의심할 여지없이 다시 뜨고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대답이 없는데, 계속 묻는 것 밖에 답이 없는 것이다. 삶이 어려우면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삶이 곧 언젠가는 끝나는 의미 그자체이니… 선택, 어쩌면 선택은 거대한 축복 혹은 사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