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4년 된 거 같다. 친한 중 한명과 관악기 - 관악기라 하면 너무 거창하고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소리 나는, 쉽게 말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연습할 수 있는 그런 ‘피리‘ 따위의 -하나를 구입해서 자유로운 새처럼 연주하자.
하는 작은 계획이 우리에게 있었다.
우리는 아마 커피숖 정도의 장소에서 ‘그것’에 관한 구체적 향후계획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었다.
우선 플룻은 너무 비싸고,
오카리나는 음색이 너무 청아하고,
리코오더는 너무 카리스마가 없고,
하모니카는 너무 민중적이고,
우리에게 어울리는 악기를 찾고자 머리를 쥐어짰다.
도통 좋은 피리가 생각나지가 않아, 조만간 낙원상가에 함께 방문해서 선택하기로 일단락 마무리 지었다.
그깟 피리가 뭔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던 거 같다. 진정 관악기연주 같은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하고 말이다.
JImi의 천재성, Eric Crapton의 여유로운 스트링 Sting의 성 몇개와 맞바꿀만한 재능
참고로 난 휘파람도 못 분다.
우리의 '비젼'도 어쩌면 피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능동적으로 탐색하여 나의 삶을 선택하여 매진하는 ‘그것’
피리를 선택하든 기타를 선택하든 선택은 항시 어렵다. 왜냐면 그건 나에게 맞는 선택이여야 하기에, 적어도 나에겐 그것은 항시 wonder이다.
언젠가 Stevie Wonder의 MP3파일들을누군가에게 보내준 적이 있다. 그리곤 그 후 그 누군가를 만났는데, ribbon in the sky를 듣고 너무 좋다며, 거리를 걷다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오바’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좋으면 사람이든, 음악이든, 악기든, 어떠한 선택이든 whatever 숨을 쉴 수 없을 정도 이상의 느낌, 아니 숨을 쉴 수 없어도 좋은 느낌. 그게 바로 perfect일 텐데. perfect는 어디있는가? 그리고 not perfect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진정 나이를 먹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