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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 다윈

by mubnoos 2021. 8. 16.

 

 

 

 

 

 

 

 

인간 다윈, 위대한 사상가 다윈

나는 여동생 캐서린보다도 배우는 속도가 훨씬 느렸다고 하며, 내 기억에도 여러 면에서 나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학교 다니던 시절 자연사에 대한 내 취향, 특히 수집벽이 발동했다. 나는 눈에 띄는 식물마다 모두 이름을 알아내려고 했으며 온갖 사물과 조개, 도장, 서명, 동전, 광물질 등을 모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재미삼아 거짓말을 잘 지어내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혼자 오랫동안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걸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흔히 무언가에 열중한 상태에 빠지곤 했다.

 

교육의 수단으로서의 학교는 내게 백지에 불과했다.

 

전 생애를 통틀어 나는 외국어 하나도 변변하게 익히지 못했다.

 

여러 선생님이나 아버지도 나를 아주 평범한, 지적인 면으로는 보통 수준보다 약간 모자라는 소년으로 여겼다. "너는 신경 쓴다는 일이 사냥하고 강아지 돌보고 쥐 잡는 것밖에 없구나. 그래 가지고는 자신에게나 집안에게나 망신거리밖에 되지 않겠다."

아버지는 190센티미터 정도의 장신에 어깨가 넓고 뚱뚱한 편이어서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덩치가 크셨다. 마지막으로 체중을 달았을 때가 152킬로그램이었는데 얼마 후에는 더 늘었을 정도다. 아버지의 중요한 정신적 특성은 관찰력과 동정심이었다. 상대방에게서 확신을 얻어내는 아버지의 무한한 능력의 비결은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를 성공한 내과의사로 만들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다. 

 

아버지가 지녔던 가장 강력한 힘은 남의 성격을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대체로 기분이 유쾌한 상태여서 사람마다 함께 웃고 농담을 즐겼다.

 

사냥의 취미를 오랫동안 즐겨서 나는 대단한 명사수가 되었다.

 

나는 교육과 환경은 한 사람의 정신에 단지 작은 영향만 끼치며 대부분의 자질을 타고난다고 믿는 프랜시스 골턴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허영을 자극하는 면이 있지만 유명한 사람의 칭찬을 듣는다는 것은 젊은이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1장 내 정신과 성격 발달에 대한 회상
(1809년 2월 12일 ~ 1827년 12월 31일)

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성직자의 길을 가라고 권했다. 아버지로서는 당연히 내가 사냥이나 좋아하는 나태한 인간이 될까봐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믿노라"라고 말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2장 케임브리지 생활
(1828년 1월 1일 ~ 1831년 1월 26일)

돌아보면 내게는 보통 젊은이들을 약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학문적으로도 월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그들과 교류할 기회를 주었을 리가 없다.

 

 

 

 



3장 비글 호 항해
(1831년 12월 27일 ~ 1836년 10월 2일)

아버지는 비글 호 항해를 반대하셨다.

피츠로이는 자기 의무에 헌선적이었고, 실수에 관대했으며, 용감하고 단호하고 정열적이었음,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도움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다 떠맡으려 했다. 미남에다 체격도 훤칠하고 예의범절도 깍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피츠로이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다. 열정뿐만 아니라 자신을 거역한 사람에 대한 불쾌한 감정적 반응도 오래 끌고 가는 편이었다.

 

피츠로이와 나는 몇 번 심하게 다투었다. 그는 기분이 나빠지면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피츠로이는 내가 <종의 기원> 같은 불경스러운 책을 냈다며 매우 화를 냈다.

 

내가 생각했거나 읽은 것들은 내가 본 것이나 볼 것들과 바로 연결되었다. 이런 사고습관은 항해를 하던 5년 내내 지속되었다. 이런 훈련이야말로 내가 과학사에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가장 근본적인 도움을 준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스로에 대해 판단해본다면 나는 탐사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 때문이든, 자연과학의 방대한 보물창고에 몇 가지 사실을 추가하고픈 강렬한 욕심 때문이든, 항해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했다. 그러면서 이름이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야심도 숨길 수 없었다.

 

 

 

 



4장 영국으로 돌아와서 결혼을 하기까지
(1836년 10월 3일 ~ 1839년 1월 28일)

하루 종일 과학에 관계된 일만 할 수는 없었기에 이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었다.

 

밀턴의 <실락원>을 가장 좋아해서 비글 호 항해기간 중에 소풍을 떠날 때 작은 책 한 권만 골라야 할 경우에는 언제나 그 책을 들고 갔다.

 

결혼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곰곰이 따져보기도 했다. 결혼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는 그 때 썼던 메모를 보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보면 역시 내 삶의 가장 큰 결정인 결혼을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구약은 힌두교 경전이나 다른 미개인들의 신앙과 마찬가지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독교를 신의 계시로 믿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오히려 어떻게 기독교를 사실로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행복이란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증명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모든 의식 있는 존재는 대체로 행복을 즐기도록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존재의 신체적, 정신적 기관이 모두 사용이나 습관,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을 통해서 발전해왔다. 이들 기관이 그 주인이 다른 존재와 성공적으로 경쟁하여 종족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동물은 통증, 배고픔, 목마름, 공포 같은 고통이나, 먹기, 마시기, 종족번식 등과 같은 쾌락, 먹을거리를 찾는 일처럼 두 가지가 뒤섞인 행위를 통해서 자기 생물종에게 가장 유익한 행동과정을 추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또는 모든 의식 있는 존재는 자연선택을 통해서 그런 방식으로 발달해왔으며, 쾌락적 느낌은 습관적 길잡이 역할을 해온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가장 하등한 동물이 갖고 있던 것에서부터 발전해온 결과인 인간의 정신이 엄청난 결론을 내릴 때 신뢰할 수 있는가하는 의심을 가졌다. 이러한 결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과관계의 결론이 아니라, 단지 물려받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지 않은가?

최고의 만족은 사회적 본능이라고 하는 어떤 충동을 따름으로써 얻어진다.

 

나는 내 삶을 꾸준히 과학에 바침으로써 제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5장 런던을 떠나 다운에 정착하기까지
(1839년 1월 29일 ~ 1842년 9월 14일)

헉슬리와 교류하게 되었다. 그의 지성은 번갯불이 번쩍이듯 빨랐으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내가 알았던 사람들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글이나 말로 무엇을 표현할 때 결코 평이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는 아주 다정한 친구여서 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짊어지려 할 것이다. 그는 영국 내에서 유기체의 점진적 진화 원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었다.

 

"다윈 씨는 말보다는 책이 훨씬 낫군요,"

 

 

 



6장 다운에 살면서 지금까지
(1842년 9월 15일 ~ 1876년 5월)

런던에 사는 것이 건강에는 나쁜 영향을 끼쳐서 우리 부부는 결국 시골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우리는 은둔하듯 살았다.

 

내 가정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여기서 또 밝힐 것은 내 아이들은 건강문제를 제외하고는 걱정을 끼친 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다섯 아들의 아버지로서 진정으로 이런 자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본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함께 노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을 다시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7장 자연과학에 대한 사랑

내가 곧 발견한 사실이 사람이 유용한 동물이나 식물 종을 만들어낼 때의 핵심원리는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종의 기원>는 분명 내 인생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내 저술들이 대체로 과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논쟁을 피해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은 1872년 가을에 출간되었다. 나는 <인류의 유래>에서 이 주제에 대해 한 단원만 할애하려 했으나 내 기록을 한데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별도의 논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물을 유기체의 범주로 격상시키는 일은 늘 나를 기쁘게 했다.

 

적어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죽는 날은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날이 될 것이다.

 

음악은 내게 기쁨을 주는 대신 몰두해오던 일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자극했다.

 

모든 소설가들을 축복한다.

 

내 취향대로 맞춘 소설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노지 않는 이상 일류일 리가 없다. 그 인물이 여성이면 더 좋은 일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적어도 매주 한 번은 시와 음악을 즐기는 규칙을 세울 것이다. 뇌에서 퇴화된 그 부분도 사용하다 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본성의 감성적인 부분을 연약하게 만듦으로써 지성에 해를 입힐 수 있고 도덕적인 성향에 타격을 줄 수 도 있는 것이다.

 

내게는 헉슬리처럼 비상한 이해력이나 재치가 없다.

 

나는 형이상학이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 내 기억력은 방대하지만 흐릿한 편이다.

 

스스로를 판단해볼 때 나는 다른 사람이 앞서 간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나는 점점 자유롭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다지 회의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는 과학 발전에는 해로운 마음가짐이다. 과학자에게 어느 정도의 회의론은 엄청난 시간낭비를 피하기 위해 권한 만하다.

 

규칙적인 습관은 특정한 작업을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돌아보면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상당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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