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에 대한 보장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가설이 〈소유와 자유〉의 출발점이다.
즉, 자유가 없어도 어떤 형태로든 소유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Property and Freedom
by Richard Pipes
서문
소유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공유할 것인가 아니면 사적 소유를 인정할 것인가?
소유가 없는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유가 없는 자유, 그리고 자유가 없는 소유란 가능한가?
ㆍ소유란 단 한번도 철폐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누가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공정한 제도는 아무도 가지지 않은 것보다 모두가 소유주인 사회이다. - 윌슨
ㆍ소유는 어떤 사람이 외부의 것에 대해 다른 이를 배제한 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 지배를 행사하는 것이다.
ㆍ자유가 소유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ㆍ자유
1) 정치적 자유
2) 법적 자유
3) 경제적 자유
4) 사적 자유
제1장 소유의 의미
ㆍ인류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을 통해 판단되는 인류가 선호하는 것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인간은 동시에 두 개의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괴리가 생겨난다. 즉 이상과 소망,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계와 가혹하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
1. 고대의 소유제도
ㆍ어느 누구도 소유하지 않았고 심지어 토지에 자기 영역이라고 표시하는 것조차 잘못이었다. 남자들은 함께 일해서 창고를 채워 넣었고, 땅은 자발적으로 더 많은 수확량을 내주었다.
2. 중세시대
ㆍ예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 소유와 부를 걷어차지 않았고 부잣집에 가서 대접도 받았다.
ㆍ초기 기독교 교회는 사적 소유를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교인들에게 최대한 기부를 많이 하도록 장려하는 데 집중했다. 소유물은 오직 이기적으로 사용될 때에만 악으로 여겨졌다.
ㆍ자기 부정을 외치던 교회는 오래지 않아 거대한 세속적 권력으로 부상했으며 막대한 토지와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ㆍ'소유가 없는 사회는 오직 천국에서만 가능하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3. “고결한 야인”의 발견
ㆍ이성의 삶이란 모범적 평등이었다. 유토피아 작가들에게 지상선은 자유가 아니라 평등이었다. 현재상태에서 인간은 열정의 먹이가 되어 이성보다는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냉혹한 지배에 순종해야 한다.
4. 초기 근대사회
ㆍ이전까지 소유는 본질적으로 토지를 의미했다. 토지는 주권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논의는 완권 혹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업의 발달로 유럽 일부 지역에서 소유는 점자 자본도 포함하게 되었다.
ㆍ부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은 가족의 행복에 필수적이며 명성을 가져다 주고 국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한다. 부는 개인의 자유와 위엄을 보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비록 반대는 있었지만 소유와 부에 대한 이 긍정적 시각은 17~18세기 서양사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5. 17세기 영국: 소유의 신성화
ㆍ모든 곳에서 항상 통치권은 소유에 의해 세워지며 정부는 통치자와 백성 간의 소유분배에 의해 결정된다. - 헤링턴
ㆍ'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
ㆍ'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소유한다.' - 존 로크
ㆍ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유라는 뜻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자유를 의미한다.
ㆍ로크의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고 명백하다. 왕은 백성이 소유한 그 어떠한 것이라도 침해해서는 안 되며 만약 그럴 경우 백성과 전쟁을 하게 된다. 백성은 왕을 배신해도 좋다.
ㆍ'이익과 행복'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아담 스미스가 보기에 사적 소유는 생산성을 강화함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했다.
6. 18세기 프랑스: 소유에 대한 본격적 공격이 시작되다
ㆍ대부분의 국민들이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유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유를 더욱 원했기 때문이다.
7.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ㆍ소유는 불가침제도의 지위를 얻었으며 헌법에 의해 국가로부터, 또 민법에 의해 동료드롤부터 침해받지 못하도록 보호받았다. 한편 일반대중은 점점 더 소유에 대해 적대적 토대를 보였다.
ㆍ'자유로운 삶을 위해 소유가 필요하다면, 물질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할당되어야 한다.' - 무정부주의의 아버지, 피에르 조셉 프루동
ㆍ19세기까지도 실제로 '소유'는 토지를 의미했다.
ㆍ진정한 평등이란 공동소유에 의존한 상태를 의미했다.
ㆍ소유란 무엇인가? 바로 도둑질이다. - 프루동
ㆍ평등은 소유의 부정이다.
ㆍ'공산주의 이론은 사적 소유의 철폐라는 단 한마디로 요약된다.' -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초기 저서에서부터 원래 모든 것은 공동소유였다고 전제했다.
ㆍ미래의 사회는 생산들의 자유롭고 동등한 연합이라는 무정부적 이상 세계가 될 것이다. 국가가 감독하지 않아도 되며 개인은 여기서 완벽한 자아성취를 이룰 수 있다. 개인은 더 이상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어 '원자화'되지 않는다.
ㆍ인간의 상상을 사로잡은 현재의 사상 가운데 루소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 이는 소유가 자연에 반하며 공산주의가 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이 사상은 워낙 영향력이 커서 학자들은 무의식으로 이에 굴복하고 있다.
ㆍ<자유론>의 밀은 두 가지 면에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시각으로부터 탈피했다.
1) 소유주의 자손이 그 유산에 대해 무조건적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상적으로는 상속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일종의 최고치 기준을 정해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재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밀은 토지를 단순히 다른 형태의 소유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어느 누구도 토지를 만들지 않았으며 이동가능한 부의 경우 동료가 비슷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아도 되지만 토지의 경우는 다른 사람을 배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주의 소유권은 국가에 종속되며 국가는 소유주가 이를 개선하지 못할 경우 몰수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 밀의 사상은 영욱에서 '신자유주의'의 발생을 자극했다.
8. 20세기
ㆍ<정의론>의 존 롤스는 아무리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라 하더라도 불공평한 법과 제도는 개혁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공평함의 핵심은 불평등이다. 롤스의 이상은 모든 사회적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완벽한 평등주의였다. 소득과 부는 똑같이 배분되어야 했다. 하지만 '불평등한 배분이 모든 사람에게 유리하지 않는한' 이란 약간은 당혹스러운 조건을 붙였다. 롤스는 사회가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필요에 따라 모두에게 분배하는 원칙을 토대도 두어야 한다는 공산주의 격언을 찬성했다.
ㆍ1980년대 이후로 '민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세계를 휩쓸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이긴 것이다.
제2장 소유제도
1. 동물의 소유
ㆍ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에 대한 접근과 지배를 주장하는 동시에 다른 종뿐만 아니라 같은 종으로부터도 거리를 유지한다.
ㆍ영역 점유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원생동물부터 가장 발달한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임이 밝혀졌다.
2. 아이의 소유욕
ㆍ본능적 충동에 의해 우리는 소유물을 모은다. 이렇게 수집된 것들은 정도마다 다르지만 우리의 경험적 자아의 일부가 된다.
ㆍ소유에 대한 최초의 개념은 내가 통제하는 것과 내 행동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생겨난다. 아이들은 '내 것'이란 단어를 매우 어렸을 때부터 사용하며 두 개의 단어를 이어 말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바로 소유에 관련된 것이다. (ex. 아빠의 의자)
3. 원시인의 소유
ㆍ소유는 인간문화의 보편적 특징이다. 인간이 삶의 영위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의존하는 모든 것들이 소유의 범주 안에 속한다. 따라서 소유는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사회의 기본조직을 구성한다.
ㆍ원시인들은 물질적 개체뿐만 아니라 노래, 전설, 디자인, 마법주문 등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지적 재산에 대해서도 개인적 소유를 주장했다.
ㆍ소유가 발달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대상이어야 하며, 양이 제한적이어야 한다.
4. 수렵채집사회
ㆍ대부분의 원시사회는 사냥감을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정확한 규정을 갖고 있었다.
5. 사유토지의 등장
ㆍ언제, 그리고 왜 토지는 상품이 되었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토지와 더불어 생산적 자산에 대한 소유의 근대적 개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경제적 요인이다. 토지가 부족, 가족, 혹은 개인의 소유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인구증가의 압박으로 보다 합리적인 토지 이용방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을 무분별하게 마구착취할 경우 자원은 고갈되기 때문이다.
6. 농경사회
ㆍ원시인들은 미래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신체적으로 가능할 때까지 동물을 멸종시키고 숲을 파괴했다. 수렵과 채집생활을 보리고 정착된 농경생활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구석기시대 인간의 지나친 사냥을 지적한다.
7. 정치조직의 발달
ㆍ사회 혹은 부족 조직에서 정치조직으로의 변신은 권한이 영토화되면서, 즉 친족이라는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사는 모든 거주민들에게 권한이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 <국가의 기원>, 로버트 로위
ㆍ경제성장은 생산량 증가가 인구증가를 앞설 때에 일어난다. 경제성장은 소유권이 사회적으로 생산적 활동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때 일어난다. 이 같은 소유권의 생성과 구체화와 집행은 비용이 많이 든다. 사적 이득이 거래비용을 초과할 잠재력이 커짐에 따라 이 같은 소유권을 설립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정부는 소유권의 보호와 집행을 떠 맡는다. 왜냐하면 자발적인 사적 집단보다 이 서비스를 훨씬 싼 비용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고대의 사적 소유
ㆍ법적 의미의 사적 소유는 국가, 즉 공적 권력의 등장과 함께 생겨났다.
ㆍ고대 그리스는 제도의 역사에서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먼저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로 사실 '정치 politics'란 개념도 그리스어로 도시란 뜻의 '폴리스 polis'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정치란 '모든 사람과 관계된 것' 혹은 '공공의 것'으로 '사적', '개인적', '이기적'인 것과 반대의 개념이다. 그리스에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권리와 의무가 합쳐진 시민의식이라는 현상이 등장했다. 또 영국 자유농민의 시조인 독립적이며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농업의 증거가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치는 우연이 아니었다. 시민권과 토지소유는 외부인에게 배타적이었으며 토지를 소유한 시민들 사이에서 상호의존적 유대관계가 형성되었다.
9. 봉건유럽
ㆍ약 900년에서 1250년 사이에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지배와 종속제도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주구너과 소요권의 독특한 융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10. 중세 도시
ㆍ사적 소유는 도시생활의 원동력인 상업경제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토지의 경우 이에 대한 분명한 소유권이나 이를 팔 권리가 없어도 땅을 점유하고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상품이나 돈은 그렇지 않다. 상품이나 돈은 거래되거나 투자될 때에만 경제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 소유를 부정할 수 없을 경우메나 거래하고 투자할 수 있다.
ㆍ중세 도시의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쟁취한 자유의 종류는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크게 정치적, 개인적, 경제적, 법적 권리로 나뉜다.
11. 초기 근대 유럽
ㆍ17세기에 '소유'란 단어는 물리적 소유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자유까지도 포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유는 자연스럽게 국가권한의 범위 밖에 놓이게 되었다.
ㆍ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식민지에서도 참정권은 토지소유주에게만 한정되었다.
12. 요약
ㆍ뭔가를 취득하고자 하는 탐욕은 보편적 현상으로 동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적용되며, 아이와 어른, 원시인과 문명인 등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이는 자기 보존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중요한 심리학적 측면도 있어서 자신감을 강화시켜준다. 그 대상은 처음엔 물질적 재화이지만 무형적 측면도 있어서 아이디어, 예술적 작품, 발명, 심지어 우리를 둘러싼 공간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ㆍ배타적 사용에 대한 주장은 토지의 경우 특히 두드러진다. 인간은 땅과 신비한 유대감을 느낀다. 원시 공동사회란 개념은 사실성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는 단지 근대와 준과학적 언어로 포장된 황금시대에 대한 고대의 신화일 뿐이다.
ㆍ소유는 인간처럼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구조의 일부분이다.
ㆍ자유란 사상은 노예의 의식 속에서, 그리고 노예제도가 만든 자유와 억압이라는 대조적 상황으로부터 발생했다고 한다.
제3장 영국과 의회민주주의의 탄생
1. 노르만 정복 이전의 시대
ㆍ영국은 세계 최초로 민족국가를 형성한 나라였다.
ㆍ이탈리아 반도 이외의 다른 로마제국 영토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통치 아래서 영국의 모든 땅은 궁극적으로 로마 황제의 소유였다.
2. 노르만 왕조
3. 보통법(common law)의 역할
ㆍ평민 변호사란 직업이 13세기에 생겨났다.
ㆍ중세 보통법은 원칙적으로 토지법이었다.
4. 조세제도
5. 튜더 왕조
ㆍ엘리자베스 여왕은 상당한 토지를 상속받았으나 부패와 왕실 영지의 부실관리로 토지수입만으로는 재정상의 필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럽 전역의 인플레이션으로 거둬들인 지대의 가치가 하락했다. 물가상승으로 지출은 늘어났지만 지대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6. 초기 스튜어트 왕조
ㆍ17세기 영국사람들은 대부분 소유를 자유의 정수로 여겼다.
ㆍ무엇인가를 그의 소유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그의 동의 없이 그로부터 뺴앗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동의 없이 소유물을 취하는 것은 훔치는 것이다.
7. 잉글랜드 공화국
8. 후기 스튜어트 왕조
9. 명예혁명
10. 유럽대륙
ㆍ프랑스에서 세습 전제정치가 발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왕의 부였다. 왕은 조세권한은 물론 왕실 소유지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부유해졌다. 영국 왕의 경우 상당부분의 수입을 의회로부터 통제당하는 바람에 왕실의 토지를 거의 다 팔아버렸다. 반면 프랑스의 국왕은 자신의 사유지를 양도할 수가 없었다.
ㆍ러시아는 자기만의 길을 갔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일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근대까지도 사적 소유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동양의 방식을 모방해 정부제도를 발전시켰다.
제4장 세습 러시아
ㆍ1991년 전까지 러시아와 러시아의 통치를 받은 국가들은 시민권을 거의 누리지 못했으며 정치적 권리 역시 전혀 없었다.
1. 무스코비 왕조 이전의 러시아
ㆍ소유권의 대상은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어야 하며 공급이 제한적이어야 한다.
ㆍ몽골족은 다른 정복지인 중국, 한국, 이란과 달리 러시아 영토는 물리적으로 점령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가난하고 접근이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ㆍ러시아의 사유지는 공적 소유로부터 발생했다. 러시아의 사적 소유는 국가 형성을 유도하거나 국가와 함께 발달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발생했다. 즉, 사적 소유는 국가의 관대한 처분에 의한 산물이었다.
2. 노브고로트 공국
ㆍ민주주의와 소유는 함께 발전했다. 15세기 말 노브고로트가 모스크바 공국에 함락되기 직전 노브고로트의 토지 중 약 60%가 개인의 소유였다.
3. 무스코비 왕조
4. 러시아의 도시
5. 러시아의 시골
6. 피터 대제
ㆍ티퍼 대제는 대개 러시아를 서구화하는 데 가장 많은 공헌을 했던 군주로 알려져 있다. 피터대제는 모든 토지보유권을 '부동산'으로 만들었으며 보편화되었다. 피터 대제 이후 러시아 지주들의 법적, 경제적 권한은 상당히 축소되었다.
ㆍ피터 대제는 국민의 세금부담을 대폭 높여놓았다.
ㆍ1721년 국가는 교회와 수도원에 속한 토지마저도 차지했다.
7. 예카테리나 여제
ㆍ토지와 다른 생산적 자산에 대한 사적 소유는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더불어 18세기 후반에 러시아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ㆍ러시아에서 사적 소유는 소수를 위한 자유 및 권리와 더불어 농노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ㆍ18세기 지주들은 사실상 농도에 대해 무제한적 권한을 갖게 되었다. 단지 흉작일 경우 이들을 먹여 살여야 하는 의무만 있었으며 목숨을 빼앗거나 채찍으로 때리거나 고문을 하는 세 가지 행위만 금지되었다. (그래도 미국의 흑인노예와 같은 정도는 아니였다.)
8. 농노해방
9. 화폐경제의 탄생
ㆍ1860년대 이전까지 러시아에는 민영은행이 없었다. 대부분의 신용업무는 거의 국가기고나이 독점했다.
10. 결론
ㆍ러시아의 역사기록은 사적 소유가 자연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ㆍ러시아의 경험은 자유란 법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자유는 소유와 법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해야 한다. 취득성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다른 사람의 소유와 자유에 대한 존중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제5장 20세기의 소유
ㆍ사적 소유가 한때 정부의 권력에 방해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 방해물은 거의 아무런 노력 없이 제거할 수 있다. 현대법에서는 사적 소유제도가 정부활동의 규모와 방향을 거의 제약하지 못하며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특징이다.
ㆍ소유권의 침해와 대량학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ㆍ민주적 사회복지 정책 역시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자유와 소유를 침해했다. 공산주의처럼 분명히 드러나거나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공산주의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1. 공산주의
ㆍ민주주의는 정부가 국민의 지배를 받고 법에 순종하도록 요구하지만 실제로 민주적 정권은 법을 자신에게 이롭게 만들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엘리트에 의해 좌우된다.
ㆍ전체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공적 권한을 독단적이고 자기 영속적인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집중시키는 데 있다.
ㆍ레닌은 광적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매우 냉혹하게, 사유재산 몰수를 추진했다. 레닌은 토지, 부동산, 공장 등에 대한 모든 소유 증명서를 무효화시켰다. - 1920년 민간은행이 청산되고 단 하나의 국가가 소유하고 경영하는 인민은행으로 대체되었다. 무제한으로 지폐를 발행함으로써 기존 화폐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었다.
ㆍ전체주의 정권 가운데 소비에트연방이 소유가 없는 사회라는 공산주의적 실현에 가장 가까이 갔다.
ㆍ사적 소유의 폐지는 일당독재체제를 더욱 안전하게 해주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소련사람들은 정부를 위해 일했다.
ㆍ소유를 평등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기술, 관심, 근면함이 다르기 때문에 그 평등은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ㆍ인류역사상 사적 소유를 없애려는 가장 과감한 시도는 재앙으로 끝나고 말았다.
2. 파시즘과 민족적 사회주의
ㆍ파시즘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을 의미했으나 필요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도 파시즘으로 몰아세웠다. 공산주의자가 아니거나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 정부는 모두 사실상, 혹은 잠재적으로 '파시스트'였다.
ㆍ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이 사적 소유를 허용한 것은 사실이다. 묵인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ㆍ히틀러는 무솔리니처럼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와 자본주의를 증오하고 경멸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독일의 강력한 사회주의적 전통을 이용했다.
ㆍ전체적 정권을 추구했던 국가 모두 의도적으로 사적 소유권을 침해했다. 전체주의의 경험은 자유에 소유권의 보장이 필요한 것처럼 시민에 대한 무한한 개인적 권력을 추구하려면 시민의 소유권을 파괴해야 함을 확인해준다. 소유권이 존재할 경우 사람들은 국가의 전횡적 장악을 피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복지국가
ㆍ1930년대에 일부 국가에서 실시된 복지프로그램은 막대한 재정지출이 필요했다. 그 재원은 오직 조세를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근대의 민주적 정부는 사적 자산을 재분배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으로 바뀌었다. 소득세를 통해 정부는 기업과 개인의 소득을 상당부분 앗아갔으며, 이 중 일부는 복지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지출했고, 나머지는 수혜자에게 재분배했다. 이러한 활동은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시켜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가난 자체를 철폐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회적 개념을 통해 철학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정부는 자유주의의 근본적 열망인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보상의 평등까지 시도했다.
ㆍ자유란 이름으로 국가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의 행동은 자유시민의 자유의지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소유는 더 이상 자유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으며 그 생존조차 불확실해졌다.
4. 현대의 기업과 소유
ㆍ소유란 개념은 단 한번도 소유주에 의한 직접경영을 의미한 적이 없다. 고전적 의미에서 소유란 자산을 사용하고 처분할 권리를 말한다.
5. 조세제도
ㆍ인생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이다.
ㆍ직접세는 전쟁의 부산물이었다.
6. 국가권력의 성장
ㆍ미국은 전통적으로 자립을 강조했기 때문에 유럽보다 늦게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ㆍ누군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한다면 그는 개인의 소유를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국가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소유에도 접근할 수 있음을 보장해야 한다.
ㆍ국민의 부가 정부의 손에 집중되면서 개인의 자유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7. 환경보호와 사적 소유
ㆍ사적 소유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전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국가의 부가 축적되고 또 사회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소유권을 간섭할 수 있다는 가정이 인기를 얻으면서 사회복지라는 가면을 쓴 국가가 자유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8. 몰수
9. 권원(entitlement)
ㆍ1990년대 초를 비교해보면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미국인의 수가 지난 35년간 상당히 증가했다.
10. 계약
1) 최저임금제
2) 임대료 제한법
3) 은행규제와 유보
11. 고용차별 철폐조치
12. 고등교육기관의 인종 및 성차별 금지
13. 버스통학 혼합학군제(school busing)
14. 결론
ㆍ20세기는 소유권과 그에 수반된 모든 권리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ㆍ소유의 권리는 그 자체만으로 시민권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ㆍ사회복지란 명분하에 부를 분배하고 시민권을 위해 계약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소유권이 약화되자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 비록 평화 속에서 부가 축적되고 민주적 절차가 준수되는 모습을 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듯이 보이지만 말이다.
맺음말
ㆍ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동등한 세계는 아마도 낙원일 것이다. 이 같은 세상은 실현하기 어렵다. 억지로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도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으로 꼽을 것이다. 자유가 없으면 반드시 불평등과 부정의가 초래되며 결국 독재정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평등이 반드시 자유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칼 포퍼
ㆍ오늘날의 화두는 민주주의와 사유화이다.
ㆍ자유는 그 성격상 비평등주의적이다.
ㆍ인간이 동시에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월터 배젓
ㆍ수동적 국가란 개념은 원시 공산주의와 같이 신화에 불과하다.
ㆍ소유는 번영과 자유 모두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ㆍ민주주의는 소유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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