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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by mubnoos 2022. 5. 23.

ㆍ샌델은 시장의 공정성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이 사회에는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돈으로 구매해서는 안 되는 성, 입학자격, 노벨상, 환경, 사회봉사까지 돈으로 사고팔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고 주장한다. 즉 시장의 교환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재화의 가치를 변질시키게 된다는 말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공부를 잘하게 하려는 본래의 의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돈을 받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시장적 인센티브가 비시장적 인센티브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시민적 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사회의 모든 덕묵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한다. 

 

ㆍ'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 아리스토텔레스

 

 

 

 

 

 

서론 시장과 도덕


ㆍ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ㆍ시장가치가 사회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학이 제왕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고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살고 싶은지 자문해봐야 할 때다.

 

ㆍ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ㆍ우리가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1) 불평등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인 사회에서 생활하기란 재산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들다. 따라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부유한지 가난한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점차 많아지면서 수입과 부의 분배가 점점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고파는 세상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2) 부패

삶 속에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요염시킬 수 있다. 시장이 단순히 재화를 분배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교환되는 재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드러내면서 부추기기 때문이다.

 

ㆍ시장경제는 생활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의 이미지에 따라 사회관계가 형성된다. 

 

ㆍ시장논리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생활에서 도덕적 논쟁을 결여시킨다. 시장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선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른 것보다 기준이 높은지, 혹은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1. 새치기

ㆍ지불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하는 시장논리가 '선착순;이라는 전통적 관행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ㆍ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는 현상은 낭비이면서 비효율적 행동이고, 가격체계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다. 

 

ㆍ줄서기에 관해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의 두 가지 주장

1) 자유시장주의자의 입장: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한 원하는 재화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 

2) 공리주의자의 입장: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 

 

ㆍ경제적 효율성이란 사회구성원 전체의 경제적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다. 

 

ㆍ줄서기보다 시장논리를 옹호하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은 더욱 근본적인 반박에 부딪히기 쉽다. 즉 공리주의적 사고가 유일하게 중요한 견해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어떤 재화는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부여하는 효용를 넘어선 가치를 지닌다. 재화의 분배방식은 재화가 지닌 본질의 일부일 수도 있다. 

 

ㆍ시장의 줄서기, 즉 가격을 지불하는 행위와 기다리는 행위는 재화를 분배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며, 각 방식에 적합한 활동은 다르다. 줄서기 도덕은 '선착순' 원칙으로 평등주의적 매력을 지닌다. 따라서 적어도 어떤 목적을 달성하면 특권, 영향력, 풍부한 재력 등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ㆍ때때로 규범은 변하며, 어떤 원칙이 우선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ㆍ줄서기를 비롯해 재화를 분배하는 기타 비시장적 방식이 시장논리로 대체되는 경향은 현대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현상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2. 인센티브

ㆍ시장지향적 경제논리는 결혼과 이혼을 어떻게 분석할까? 결혼에서 기대하는 효용이, 독신으로 남거나 좀 더 나은 짝을 찾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이와 비슷하게 기혼자는 독신이 되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에 기대하는 효용이, 자녀와의 물리적 별거, 공동 자신의 분리, 법률 비용 등 이별로 상실하는 효용을 초과할 때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동을 시장논리로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학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한 가지 이유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금전적 인센티브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ㆍ부패는 유리한 판결이나 정치적 영향력 등 판매해서는 안 되는 대상을 사고파는 행위다. 

 

ㆍ부패한 판사나 공무원처럼, 돈을 받고 불임시술을 받은 여성은 사고팔아서는 안 되는 대상을 판다. 그 여성들은 자신의 생식능력을 책임감과 보살핌의 규범에 따라 행사해야 하는 선물이나 의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금전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도구로 다룬다. 

 

ㆍ재정적 인센티브에 대한 경제학적 기본개념, 즉 인센티브를 많이 지급할수록 학생들이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결과도 나아진다는 개념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ㆍ벌금과 요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벌금은 도덕적으로 승인 받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비용이고,

요금은 도덕적 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가격이다. 

 

ㆍ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환경파괴적인 습관을 바람직하게 바꿔야 할 의무를 돈으로 벗어던질 수 있게 한다면, 자연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강화시켜서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은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다. 

 

ㆍ도덕은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싶은 방식을 가리키고, 경제학은 세상이 실제로 작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ㆍ어째서 경제적 효율성을 신경 써야 할까? 아마도 선택의 합계로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ㆍ경제학자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3.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ㆍ일반 경제논리는 재화를 사고팔 때, 재화의 특징은 바꾸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사람의 신장, 성, 학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 불미스럽다. 

 

ㆍ어떤 면에서 사과와 결혼식 축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다. 하지만 이를 사고파는 것은 그 재화가 지닌 속성을 변질시키고 가치를 감소시킨다. 

 

ㆍ경제학자들은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보면 선물보다 현금을 주는 편이 낫다. 그러나 선물 대신 돈을 주면 선물의 의미가 퇴색된다.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우정을 유지하는 사회적 관행을 상품화하면 공감, 관용, 배려 같은 규범의 자리에 시장가치가 들어선다. 

 

ㆍ공정성과 부패에 관한 두 가지 논쟁은 돈으로 사야 하는 것과 사지 말아야 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에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에 반영되는 불평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부패에 관한 반박은 시장이 훼손하거나 변질시킬 수 있는 태도와 규범을 거론한다. 

 

ㆍ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쓸 계획이라면 "충분히 많이 지급하든지 아니면 전혀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

 

ㆍ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 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ㆍ루소는 사실상 시민의 미덕을 사용하지 않으면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대중에 대한 봉사가 더이상 시민의 주요 임무가 아니고 시민들이 직접 봉사하는 대신 돈으로 봉사하려 한다면, 국가는 머지않아 멸망하고 만다."

 

ㆍ많은 경제학적 분석의 기초는 선은 사람들의 자기 행복에 대한 개인적 평가의 총합이고, 별개의 도덕론에 기반한 개인적 선호와 분리되어서는 평가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ㆍ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많은 이타심을 지니고 있다. 나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이타심을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소중하고 드문 재화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기적인 개개인이 모여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가족, 친구, 그리고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이타심을 아껴둠으로써 보존하는 것이 훨씬 낫다. 

 

 

 

 


4. 삶과 죽음의 시장

ㆍ전통적으로 '삶과 죽음'은 시장에서 금기시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시장논리가 침투하면서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하려고 생긴 생명보험은 투기를 목적으로 그 증서를 사고파는 것이 허용되면서 타인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고, 웹사이트에서 유명인의 죽음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행위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시장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시장이 제공하는 효용과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시키는 시장 관행은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ㆍ생명보험은 언제나 그 안에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한다. 하나는 상호 안전 보장을 위한 리스크의 통합이고, 또 하나는 죽음에 대한 대비책이자 암울한 도박이다. 생명보험에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며 불안전하게 결합하고 있다. 도덕적 규범과 법률적 제재가 없기 때문에 도박적 측면은 애초에 생명보험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목적을 무력하게 만든다. 사회적 목적이 사라지거나 모호해지면 보험과 투자와 도박을 분리하는 약한 경계선이 무너진다. 

 

ㆍ우리는 시장이 제공하는 사회적 선을 위해서라면 도덕성을 잠식하는 시장 관행을 감내하겠다고 결정한다. 생명보험은 이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겨날 수 있는 재정적 위험에 대해서 가족과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지난 두 세기 넘게 한 개인의 생명에 피보험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을 놓고 도박을 벌이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투기를 향한 유혹을 억제하기는 어려웠다. 

 

 

 

 

 

 


5. 명명권

 

ㆍ기록을 세운 야구공을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공을 친 선수에게 공을 돌려주는 것은 더 이상 단순히 품위 있는 행위로만 비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그러움을 나타내려는 영웅주의적 행위이거나 아니면 자기 소유물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행위다. 

 

ㆍ자유방임주의 논거에는 두 가지 반박이 따른다. 하나는 강압과 불공정성에 관한 반박이고, 또 하나는 부패와 타락에 관한 반박이다. 

 

ㆍ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반박은 첫째, 경제적 필요로 인한 강압이지 사실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 그것 자체가 부패와 타락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은 광고 문신을 이마에 새기고 돌아다니는 것은 비록 자발적인 선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개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다. 

 

ㆍ일부 광고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사회를 전체적으로 상업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행위 지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면 환경을 파괴하듯이, 새로운 영역으로 팽창한 광고가 처음에는 받아들여질 만하더라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지면 사회 전체가 기업 후원과 소비지상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ㆍ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첫째, 기업의 후원으로 제작된 교육 자료는 편견과 왜곡, 피상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둘째, 기업이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 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유해하다. 

 

ㆍ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사회적 위치, 태도,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ㆍ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