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지역성과 보편성
ㆍ문자는 항상 인간을 짓누른다.
프롤로그┃읽기와 쓰기의 오해
ㆍ텍스트를 일고 쓰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이다. 다시 말해 읽기와 쓰기는 인위적으로 의식하며 훈련해야 하는 것이지 하다보면 모두가 잘 되는 것이 아니다.
ㆍ'그러나'가 나오면 중요하다. '따라서'가 나오면 결론이다.
ㆍ독해의 핵심은 문장과 문장으로 형성된 선의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다.
ㆍ글쓰기 고수는 '그러나'를 사용하지 않는다.
ㆍ텍스트는 이성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이고, 이성적 사고의 핵심은 연결이다.
제1부 텍스트의 이해
ㆍ나는 생각한다. 고로 표현하다.
ㆍ텍스트는 논리적 사고 표현의 결정체다.
ㆍ논리의 핵심은 연결이다.
ㆍ쓰기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고, 읽기는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다.
ㆍ누구나 한 번쯤은 배경지식이 없는 분야의 텍스트를 읽고 머릿속이 하얘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통상 이런 경우 '내 글읽기 능력에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분야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안 읽힌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내용도 문제없이 읽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글 읽기가 어려운 것은 배경지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세상엔 내가 아는 내용보다 모르는 지식이 더 많다. 책을 읽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다.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 배경지식을 늘리려 한다면 이는 앞뒤가 바뀐 격이다. 그렇다고 배경지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배경지식이 없는 글을 어떻게 읽어 내려가야 하느냐인 것이다.
ㆍ학교문법을 마스터하고도 텍스트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학교문법의 태생이 한 문장을 정확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문장의 완성은 학교문법의 종착점이다. 하지만 두 문장 이상으로 구성된 문장과 문장 단위 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한 문장을 완성하는 능력과 그렇게 만들어진 ‘한 문장’과 ‘한 문장’을 연결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학교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보완 체계가 ‘논리문법’이다. --- 본문 중에서
제2부 한 문장의 오해, 문장과 문장의 이해
ㆍ원리는 기술을 만든다.
ㆍ문장의 연결, 한 문장은 수평적 연결이다.
ㆍ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장과 문장은 수직적 연결이다.
ㆍ연결의 방향성은 주고받음 개념으로 결정한다.
ㆍ중심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ㆍ소쉬르 언어학은 "사람들은 어떻게 언어를 통해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의 실마리를 파롤 parole 과 랑그 langue 를 언급한다. 랑그란 동일 언어 공동체 구성원의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는 '언어 규칙의 총체'를 의미한다. 반면 파롤은 랑그를 바탕으로 개인이 표현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랑그는 제도로서 언어활동을 규제하는 규약이고, 이 체계와 규약이 실천적으로 작동된 결과이자 개인적인 언어 행위가 파롤이다.
제3부 논리문법으로 읽고 쓰기
ㆍ중요한 것은 반복한다.
ㆍ원리는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에필로그┃논리력, 평가력, 집중력 그리고 기억력
ㆍ텍스트와 인간의 능력은 밀접하다.
ㆍ텍스트는 비전이다.
ㆍ내가 읽는 텍스트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성적, 논리적 사고체계는 완벽하다.
읽기와 쓰기는 반복을 통해 완성된다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 (0) | 2022.05.11 |
---|---|
매경이코노미 2158 (0) | 2022.05.11 |
다시, 연습이다 / 글렌 커츠 (0) | 2022.05.10 |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 사치 코울 (0) | 2022.05.10 |
끌림의 대화 / 김범준 (0) | 2022.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