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귀찮게 뭘…?: 경제학은 왜 알아야 하는가?
ㆍ지난 몇십 년 사이에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경제학도 '과학'이라고 믿도록 우리가 유도되었다. 하지만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학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론이 있고, 각 이론은 복잡한 현실의 서로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 판단을 적용해 결국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경제학 이론들은 각자 초점을 맞추는 분야에서마저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예측하는 데 계속 실패해 왔다. 확학에서 다루는 분자나 물리에서 다루는 물체와는 달리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ㆍ경제학자들은 과학자인 척하는 걸 좋아한다.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
1장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ㆍ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적 선택에 관한 연구다?
ㆍ경제가 돈에 관한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물리적인 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돈은 상징일 뿐이다. 돈은 나와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나에게 빚진 것, 혹은 그 사회의 자원 중 얼마만큼이 내 몫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ㆍ물려받는 방법을 제외하면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직업에 종사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은 직업에 관한 연구가 차지한다.
ㆍ직장을 구해 일을 하는 것 말고 이전 transfer 을 통해서도 돈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다. 이전은 단순히 돈을 남에게서 받는 것을 말한다.
ㆍ무엇보다도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지 않으면 소비도 있을 수 없다.
2장 핀에서 핀 넘버까지: 1776년의 자본주의와 2014년의 자본주의
ㆍ궁극적으로 부의 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더 세세한 분업을 통한 생산성의 향상이다. - 애덤 스미스
ㆍ경제 활동을 벌이는 행위자 즉 경제 주체와 생산을 비롯한 기타 경제 행위가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관한 규칙 즉 경제 제도 또한 근본적으로 달려졌다.
ㆍ이윤은 시장에서 무엇을 팔아서 번 것 (수입)에서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뺀 것이다. (이윤 = 수입 - 비용)
ㆍ시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파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면 이윤을 쫓는 생산자들이 가능한 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물건을 생산할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는다. - 애덤 스미스
ㆍ애덤 스미스는 유한 책임 원칙에 반대했다. 기업을 소유하지 않고 유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돈'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해 운영을 철저히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ㆍ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돈을 찍어 냈고, 심지어 일부 대규모 상인들도 화폐를 발행했다.
3장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도달했는가?: 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
ㆍ현대에는 사고파는 것이 불가능한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인간(노예), 아동 노동, 관직 등이 옛날에는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었다.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 경제
ㆍ자본주의는 서유럽, 특히 영국과 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가 자리한 '저지대 국가들'에서 16~17세기경에 탄생했다. 자본주의는 서유럽에서 최초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6세기에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자본주의의 여명: 1550∼1820년
ㆍ새로운 1)과학, 2) 기술, 3) 제도가 출현했다. 1) 먼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변화하면서 현대 수학과 과학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토양이 만들어졌다. 2) 18세기에는 방직과 제철, 화학을 비롯한 산업 분야에 기계화된 생산 체계를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다. 그리고 3) 점점 널리 퍼지는 시장 거래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은행이 진화했고, 개인의 부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나옴에 따라 법인 또는 유한 회사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주식 시장도 탄생했다.
ㆍ식민지 확장의 시작
1820년∼1870년: 산업 혁명
ㆍ평균 수명 17세, 주당 80시간 노동: 일부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ㆍ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자본주의 기업처럼 운영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본주의 기업이 기업의 운영을 중앙에서 계획하듯 사회주의에서도 중앙에서 경제 활동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중앙 계획이라고 부른다.
ㆍ19세기 서유럽 국가들과 서유럽 파생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은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의 확산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ㆍ영국 정부는 관세 tariff 를 통해 저지대 국가에서 생산되는 더 양질의 상품으로부터 영국 생산자들을 보호했고, 선진 방직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숙련공들을 스카우트하는 작전의 뒤를 봐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플랜더스, 플레밍 같은 성은 당시 스카우트된 플랜더스 숙련 방직공들의 자손들이다. 이들이 없었으면 이안 플레밍의 007도, 알렉산더 플레밍이 개발한 페니실린도 없었을 것이다.
ㆍ영국은 식민지인 미국의 제조업 발달을 의도적으로 억제했다.
1870∼1913년: 결정적인 하이눈 시기
ㆍ자본주의의 성장은 1870년 즈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860년대와 1910년대 사이에 새로운 기술 혁신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이른바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전기를 사용한 기계, 내연 기관, 인공 염료, 화학 비료 등등이 그 예이다.
ㆍ대규모 투자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하자 이전에는 특권을 가진 기업에만 한정 허용되었던 유한 책임제가 일반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누구나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ㆍ제도의 변화는 경제 성장을 가져왔다. 유한 책임 회사와 채무자에게 우호적인 파산법은 기업 활동의 위험을 줄여서 부의 창출을 권장하는 효과를 낳았다.
1914∼1945년: 파란의 시기
ㆍ1914년 발발한 1차 대전은 자본주의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ㆍ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 경제 시스템은 대기업과 대기업 카르텔에 의해 이미 고도의 계획 경제 형태를 띠고 있어서 완전 계획 경제 시스템 바로 직전 단계까지 가 있기 때문이다.
ㆍ대공황은 자본주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이 상처와 함께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지고,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고개를 들었다.
ㆍ1914~1945년 기간의 혼란은 2차 대전의 발발로 그 정점에 이르렀고,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목숨 수천만을 앗아 갔다. 전쟁은 19세기 초 이후 가속적으로 증가하던 경제 성장률이 처음으로 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1945∼1973년: 자본주의의 황금기
ㆍ2차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가 오기 전까지의 기간을 흔히들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역사상 가장 높은 성잘률을 이루어 냈다.
ㆍ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회동한 2차 대전 승전국들은 전후 국제 금융 시스템을 주도할 두 개의 중요한 기관을 설립했다. '브레튼우즈 기구'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 두 기관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으로 더 잘 알려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다.
1) 국제통화기금(IMF) : 국제 수지 위기를 겪는 국가들에게 단기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위기에 봉착한 나라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돕는다.
2) 세계은행(국제부흥개발은행, IBRD) : 프로젝트 대출을 위해, 댐 건설 등의 특정 프로젝트에 쓸 돈을 빌려 주고, 민간 부문 은행보다 더 긴 상황 기간 혹은 더 낮은 이자율을 제공하기 때문에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나라들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ㆍ전후 경제 체제의 세 번째 버팀목은 1947년 서명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었다. 1947년에서 1967년 사이 GATT는 '라운드'라고도 부르는 협상을 여섯 차례 주도해 주로 부자 나라들의 관세를 삭감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 발전 단계가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 관세를 삭감하자 시장이 더 넓어지고 그 결과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생산성이 향상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겼다.
ㆍ자본주의 황금기의 원인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설명은 경제 정책과 제도를 개혁해 혼합 경제 체제를 탄생시키고 운운용했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점을 섞었다는 의미다. 대공황 이후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고,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결함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데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ㆍ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국가들은 철강, 철도, 은행, 에너지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사유 기업들을 국유화하거나 새로운 공기업 혹은 국영 기업을 세웠다. 생산 수단을 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사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ㆍ대공황의 교훈을 거울삼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의도적으로 경기 역행적 거시 경제 정책을 시행했다. 케인스식 정책이라고도 알려진 이 정책은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 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도 늘리는 반면, 경제가 상향 곡선을 그리는 동안에는 지출과 통화 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ㆍ자본주의의 황금기에는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했다.
1973∼1979년: 과도기
ㆍ황금기는 1971년 미국이 달러-금의 태환을 중지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공황을 겪으며 금 본위제가 거시적 경제 운용의 융통성을 방해한다는 인식에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과거의 금 본위제를 폐지했다.
1980년∼현재: 신자유주의의 흥망
ㆍ마거릿 대처 정부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민영화 privatization 였다.
ㆍ로널드 레이건은 부자들이 부를 더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더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낙수 효과 이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는 동시에 레이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최소 임금을 동결하면서, 그것이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이 논리는 공급 경제학이라고 불리며 향후 30년 동안, 아니 그 이후까지도 미국 경제 정책의 기본 신념을 자리잡았다.
4장 백화제방: 경제학을 ‘하는’ 방법
1. 고전주의 학파: 시장은 경쟁을 통해 모든 생산자를 감사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ㆍ고전주의 학파의 주된 논점 : 1) 보이지 않는 손, 2) 세의 법칙, 3) 자유 무역
ㆍ비교 우위론: 일련의 가정하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자유 무역을 하면 두 나라 모두 생산량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2. 신고전주의 학파 : 각 개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행동하므로, 시장이 오작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 나두는 것이 좋다.
ㆍ신고전주의 학파는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소비자가 제품에 내리는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좌우되는 수요 조건의 역할을 강조한다.
ㆍ고전주의 학파가 뚜렷이 다른 계급들이 모여 경제를 구성한다고 생각한 데 반해 신고전주의 학파는 경제가 합리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ㆍ신고전주의 학파는 경제학의 초점을 생산에서 소비와 교환으로 옮겼다.
ㆍ이기적 개인과 자기 균형 회복력이 있는 시장은 고전주의 학파와의 유사점이다.
ㆍ신고전주의 학파의 강점: 정확성과 융통성
ㆍ신고전주의 학파의 단점: 비현실적 개인, 현 상황에 대한 과도한 수용, 생산 부문 무시
3. 마르크스학파 :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사유 재산이 더 이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면서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ㆍ노동 가치론, 계급, 생산이라는 고전주의 학파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ㆍ치명적 흠이 있으나 여전히 유용한 이유는 기업, 노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분이다.
4. 개발주의 전통 : 후진 경제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놓으면 개발이 불가능하다.
5. 오스트리아 학파 : 모든 것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아무한테도 간섭하면 안 된다.
6. (신)슘페터 학파 :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기업이 대형화하고 관료주의화하면서 쇠락하게 되어 있다.
7. 케인스학파 : 개인에 이로운 것이 전체 경제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
ㆍ케인스는 한 사회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소비하지는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에서 이론을 시작한다. 생산된 것이 모두 팔리고, 노동자들의 노동 서비스를 포함해서 생산에 투입된 모든 자원이 활용되는 완전 고용 상태가 이루어지려면 생산과 소비의 차이, 즉 저축이 투자가 되어야 한다.
ㆍ완전 고용을 위한 능동적 재정 정책이 케인스학파의 해결책이다.
8. 제도학파: 신제도학파? 구제도학파? : 개인이 사회적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
9. 행동주의 학파 : 인간은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규칙을 통해 의도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ㆍ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는 독립 의지를 가진 모든 개인의 권리를 존중한다면 사회 구성원 가운데 누구의 상황도 나빠지지 않으면서 일부의 상황이 나아져야만 그 사회적 변화를 개선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더 이상 개인의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견해인데, 파레토 기준(Pareto criterion)이라 부르는 이 개념은 현대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사회의 개선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제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변화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파레토 기준은 사실상 현상을 유지하고 어떤 것에도 개입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처방이 되고 말았다. 파레토 기준을 채용함으로써 신고전주의 학파는 굉장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ㆍ헤크셰르-올린-새뮤얼슨 이론에서는 모든 나라가 기술적, 조직적으로 모든 것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각 나라가 특화할 제품을 다르게 선택하는 것은 단지 제품마다 생산에 필요한 자본과 노동의 조합이 다르고,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인 양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결국 비현실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즉 과테말라가 BMW 같은 차를 만들지 않는 것은 생산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것이 경제적이지 않아서인데, BMW를 생산하려면 자본이 많이 들고 노동력은 조금 드는 반면 과테말라는 노동력은 풍부하고 자본은 조금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2부 경제학 사용하기
ㆍ평등의 추구는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다.
ㆍ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일한다.
에필로그-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우리는 경제학을 사용해서 경제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ㆍ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Cui bono(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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