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ㆍ당신의 근원적인 자각과 정체성 자체에는 본래 아무런 경계도 없다.
ㆍ당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은 물질로부터 몸, 마음, 혼, 영에 이르는 의식의 스펙트럼 전체에 걸쳐 있다.
ㆍ나는 이런 다종다양한 관점들을 더 큰 그림의 일부로 조망하는 일종의 '통합'을 시도했다. 나는 치료, 치유 및 내적 성장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들을 '의식의 스펙트럼'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틀로써 화해시켰다. 이런 접근은 서양의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있어서 세 가지 주요 방향의 핵심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1) 인지-행동주의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포함하는 전통적 자아심리학
2) 생명에너지학과 게슈탈트 같은 인본주의심리학
3) 정신통합과 융 심리학 및 신비사상 전반과 같은 초개아심리학이다.
1. 서론 : 나는 누구인가?
ㆍ정체성이 확립되는 그 모든 과정의 바탕에는 좀더 기본적인 절차가 하나 존재한다. 즉 '나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 라고 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작업' 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마음속에 있는 내적 경험의 세계에다가 일종의 정신적인 선이나 경계를 긋는다. 그런 다음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을 '나'라고 느끼거나 '나'라 고 부른다. 반면에 그 경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아닌 것'으로 느낀다. 정체성은 전적으로 그 경계선을 어디에 긋그냐에 달려 있다.
ㆍ초개아 (trans-personal) 란 한 개체의 측면을 '넘어선' 어떤 과정이 그의 내부에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감각적 지각이 단순한 예 중 하나이다. 나 / 나 아님'의 경계가 유기체의 피부 너머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ㆍ의식의 스팩트럼 페르소나 수준 (페르소나 / 그림자) 자아 수준 (자아-마음 / 신체-몸) 전유기체 수준 (전유기체 / 환경) 합일의식
ㆍ정상지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평을 확대하고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밖을 향한 조망과 안을 향한 깊이라는 양편 모두에 있어서 경계의 성장을 의미한다.
2. 그것의 절반
ㆍ진보와 불행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인 것처럼 보인다. '진보'를 향한 충동 자체가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은 더 많은 불만을 느끼게 된다. 진보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 문명은 사실상 욕구불만 을 제도화 시켜놓았다.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긍정이란 부정에 기초해서만 규정된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해버린 것이다.
ㆍ실제하는 선이라도 우리가 그 선의 양편이 분리되어 있고 서로 무관하다고 상상할 경우, 즉 대립된 둘 사이의 외적 차이만 인정하고 내적 일체성을 무시할 경우 그것은, '환상 속의 경계'가 되고 만다. 선을 긋는 것은 괜찮지만 그 선을 경계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고통과 쾌락을 구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고통으로부터 쾌락을 분리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ㆍ대극을 분리시켜놓고 긍적적인 쪽으로 진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초월하면서 감싸 안는 하나의 토대를 발견해냄으로써 대극을, 긍정과 부정 모두를 통합시키고 조화되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토대가 합일의식이다.
3. 무경계 영토
ㆍ궁극의 형이상학적 비밀을 감히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우주에는 그 어떤 경계도 없다.' 경계는 실재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실재를 작도하고 편집한 방식의 산물, 즉 환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영토를 지도화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가 된다.
ㆍ모든 현실의 궁극적인 재료인 '원자 차원의 것들'의 위치를 설정할 수 없는 것은 한마디로 그것이 '경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분명한 경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측정할 방법조차 없다. 이처럼 '궁극적 실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완전하게 측정될 수 없다는 사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 불리며, 그것은 고전물리학을 내리친 마지막 치명타였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그것을 '딱딱한 틀의 붕괴'라고 불렀다. 낡은 경계들이 붕괴된 것이다.
ㆍ이제 확률과 통계를 가지고 연구해야만 한다. 이는 그들이 충분히 많은 원자 요소의 측정치를 끌어모아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모인 집단을 '가공의 경계'로 구분된 별개의 사물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 다음 메타 경계를 만들어내고, 그 체계가 전체로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 경험에서 나온 추측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 경계가 가공이자 거짓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궁극적 실체' 자체가 여전히 무경계 상태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물리학자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4. 무경계 자각
ㆍ합일의식이란, 진정한 실재에는 경계가 없다는 단순한 자각이다.
ㆍ최초의 경계를 찾아보자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험과 느낌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된 나, 즉 '분리된 채로 경험하고 느끼는 나'를 아주 잘 찾아보자는 뜻이다.
5. 무경계 순간
ㆍ일반적으로 '영원'이란 단어 자체의 진정한 의미를 오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영원을 아주 아주 긴 시간, 예컨대 수백억년 넘도록 끝없이 계속해가는 시간의 연장이라고 상상한다. 영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적으로 '시간 밖에 존재하는' 자각 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순간이란 과거도 미래도, 이전도 이후도, 어제도 내일도, 탄생의 죽음도 알지 못하는 무시간적인 순간이다.
ㆍ이 순간에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도 없다. 고로, 종말을 초래할 탄생과 죽음이란 없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은 절대적인 평화다. 그것은 이 순간에 있지만, 이 순간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6. 경계의 생성과 전개과정
ㆍ'저 밖에 있는 대상' 모두는 단지 나의 '투사' 불과하므로, 그 모든 것은 나의 한 측면들로 재발견될 수도 있다.
7. 페르소나 수준 : 발견의 출발점
ㆍ경계로 이루어진 삶은 투쟁의 연속이며 공포, 불안, 고통 그리고 마지막엔 죽음으로 점철된다.
ㆍ고통은 거짓 경계를 알아차리는 최초의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올바로 이해하기만 하면 고통은 해방을 준다. 고통은 모든 경계를 넘어선 곳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통의 원인은 병들어서가 아니라 지성적 통찰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ㆍ페르소나란 다소간 부정확하고 허약해진 자기상을 일컫는다. 페르소나는 분노, 자기 주장, 성적 충동, 환희, 적대감, 용기, 공격성, 충동, 흥미 등과 같은 자신의 특정한 성향을 스스로 부정할 때 만들어진다.
8. 켄타우로스 수준
ㆍ켄타우르소스 수준은 인간 잠재력 계발 운동, 실존주의, 인본주의 치료법 등이 목표로 하는 바로 그 높은 수준이다. 이들은 모두 심신과 정서를 고차적인 합일체, 심층적 총체로 통합한다는 기본 전제를 채택하고 있다.
ㆍ켄타우로스적인 삶의 의미, 즉 근본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삶 자체의 과정이 기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의미는 외적인 행위나 소유에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빛을 발하는 내적인 흐름에서 발견된다. 세계로, 친구에게로, 인류 전체로, 그리고 무한 그 차체에 이르기까지 이런 흐름을 '발산시키고 관계를 맺는' 가운데 발견된다.
9. 초월적인 나
ㆍ해야 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어떤 행위가 나타나든 단지 그것을 주시할 뿐이다. 모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다만 '무선택적 자각'으로 머물러 있어보라.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괴로움도 '진정한 나'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했을 때이다.
10. 궁극의 의식상태
ㆍ창조도 없고 파괴도 없다. 운명도 없고 자유의지도 없다. 길도 없고 도달함도 없다. 이것이 궁극의 진실이다. - 라마나 마하르쉬
ㆍ진정한 영적 수행이란 '깨달음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부터' 샘솟아 나오는 것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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