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과거 회상
- 우리는 책에 굶주려 있었고, 섹스에 굶주려 있었고 성적표에 연연하는 아나키스트였다. 모든 정치, 사회 제도가 썩어빠진 걸로 느껴졌으나, 우리는 쾌락주의적 혼돈에 기울어 있을 뿐,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엘릭스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어디까지나 도식화하자만 그렇다는 거다.
-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 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
-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 영국인들이 진지해야 할 때 진지하지 않은 게 싫어.
- 상처를 피할 도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얼마간은 성취를, 얼마간은 실망을 맛보는 것. 나는 이제껏 재미있게 살아온 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볼멘소리르 하거나 깜짝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면에서 에이드리언은 자신이 뭘하는지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인생에서 뭔가 아쉬운게 있다는 뜻은 아니라.
-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의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2부 현재
- 젊을 때는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중년으로 보이고, 쉰 살을 넘은 이들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어릴때는 그렇게도 결정적이고 그렇게도 역겹던 몇 살되지도 않는 나이차가 점자 풍화ㅗ되어 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이라는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 2종류의 여자- 매사에 분명한 여자 &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
-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 내는 것
-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야..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가령 손목의 요골동맥 바로 옆에 시계의 앞면이 오도록 차는 경우, 이런 사적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며, 기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을 때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때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같았다. 그 순간 마치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 앞으로도 알지 못하고, 이해할수도 없을 모든 것들 중에서 내가 지금 알지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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