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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과 한 발짝 사이의 책임

by mubnoos 2022. 2. 4.

 

명절 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 왜 그런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은 가족들이 안내해 준 - 졸업, 취업, 결혼 , 육아 - 과정들을 거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거 같다. 가족은 책임이다. 난 책임들로 만들어져 있다. 장손, 큰아들, 오빠 ,아빠, 남편, 큰사위, 이사...나는 그 책임들의 거미줄에서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한다. 명절 후에 어딘가 편하지만은 않은 기분은 아마도 책임들의 복잡한 마음 때문이리라.



나비가 비행하는 모습을 "한 발짝"이라도 멀리서 본다면 그 모습은 한가로이 아름답다. 

하지만 그 나비의 모습을 "한 뼘 사이"에서 보게 된다면 그 모습은 조잡하고 흉물스럽다. 



지금 와서 객관적으로 평가해본다면 내가 했던 것들 중에서 딱히 '성공'이라고 내세울만한 게 기억하지 않는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탁월한 면이 무엇인지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다. 매일매일의 나의 삶은 치열하고, 치사하며, 냉정하며, 이기적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족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매일 성공했다고 해석할 순 있겠다. 책임들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한 뼘 사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실수와 실패투성이들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 발짝" 떨어져 책임들이 구성하는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때에는 성공 혹은 성취의 모습들을 간혹 발견할 때가 있다. 사실 이 'View'만 아니라면 이 책임들의 과정을 절대 추천하지는 않는다. 



실수와 오류, 실패는 인간적인 것이다. 가족들도 실수, 오류, 실패로 구성되어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인간적인 파편들은 우리가 실제로 무엇 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가족의 벌어진 간격과 갈라진 빈틈을 채우고 지탱하는 것은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무겁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발짝' 거리를 조정하며 성공과 행복으로 해석하며,  '한 뼘'사이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딸이 춤을 추고 알파벳을 외우고, 조카가 여기저기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시간 동안, 엄마는 그만큼 늙었다. 오랜만에 만난 늙은 엄마를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직면하기 두려웠다. 엄마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이렇게 늙어버린 건 모두 나 때문인 것 같고, 시간이 더 이상 가지 않도록 잡고 싶었다. 난 단 한 번도 좋은 아들이었던 적이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아들은 결코 아니다. 좋은 아들은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 다 하듯이 평범하게 사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루키 말처럼, 인생은 버팀이다. 가끔 왜 버텨야 하는지 모를 때 생각한다. 엄마도 그 책임들을 버텼으니까 버텨야 한다고. 오늘따라 비행하는 나비의 모습은 힘겨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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