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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휴머니즘 /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by mubnoos 2021. 11. 4.

 

아리스티드는 아이티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워 온 신부다. 해방신학의 살아 있는 모범으로 불리며,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던 아이티의 대통령이기도 했다. 아리스티는 네 번이나 아이티의 대통령이 됐으나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1990년 아이티 최초의 민주 선거에서는 67퍼센트의 지지를 받았고, 1991년에 망명 길에 올랐다가 아이티에 돌아와 민중들을 위해 싸웠다. 2000년에는 무려 92퍼센트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총 집권 기간은 5년 8개월에 불과했으나 군대를 해산하고, 국영기업의 조건 없는 민영화를 거부했는가 하면, 교육과 보건, 노동자 임금 따위에서 과감한 개혁을 이루어 냈다.

 

 

아이티는 카리브 해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다. 인구 850만 명, 1인당 국민총생산이 1,600불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프랑스와 싸워 이긴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기도 하다. 문맹률 또한 무척이나 높은 나라이고 미국의 내정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기도 하지만, 아이티 사람들은 더 나은 내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난한 아이티 사람들의 오늘을 새롭게 만들어 가려는 아리스티드 같은 이들이 아이티 안에서, 그리고 나라 밖에서 꾸준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휴머니즘』은 세계화가 제3세계 사람들에게 어떤 횡포를 저질렀는지, 자유무역이 어떻게 지역 시장을 짓밟고 지역 경제를 뿌리 뽑았는지, 외국의 자선에 기대는 것이 어떤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비록 굶주리고는 있지만 그 가난을 ‘존엄’하게 여길 수 있도록 아이티 아이들에게 희망을 교육하고, 숭고한 정신과 도덕적인 정치를 갈망하며, 절망 속에서도 대안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는 아이티 민중의 살아 있는 오늘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책이다.

 

 

 

 

 

옮긴이 말 ㅣ 존엄한 가난으로 떠나는 피정­이두부

ㆍ아이티는 남한의 1/3, 인구는 1/5, 소득수준은 1/14 정도인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 책은 그 나라의 신부였으며 대통령이었던 분이 띄운 아홉 통의 편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편지 ―부자는 더 부유하게,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ㆍ1960년대에는 세계의 부유한 20%가 전체 부의 70%를 가졌습니다만, 오늘날 세계의 부자들은 부의 86%를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세계의 가난한 20%가 전체 부의 2.3%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겨우 1%로 줄어들었습니다. 

 

ㆍ경제적 위기의 이면에는 인간의 위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이 있고, 권력자나 정책 입안자 같은 사람들에는 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을 하나의 종교로 만들어 버린 영혼의 결핍이 있습니다. 

 

ㆍ우리는 아직 먹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는 사회적 합의에조차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위기입니다. 믿음의 위기입니다. 

 

 

 

 


두 번째 편지 ―누가 크리올 돼지를 죽였는가?

ㆍ얼굴 없는 (디지털) 경제는 실제 경제나 생산되고 있는 경제보다 다섯 배나 큽니다. 

 

ㆍ우리는 교역에 반대하지 않으며, 자유무역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이 지구적 시장이 예전의 우리 시장을 모조리 없애고야 말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ㆍ모든 거래를 숫자로 환원시킬 때, 당신들이 인간적인 것을 모두 사라지게 했을 때,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ㆍ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유무역은 그렇게 자유롭지도, 그렇게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은 국제 금융 기구의 강력한 비호 아래 쌀 농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증가할 수 있었으나 아이티는 자국 농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ㆍ지구화된 경제체제에서 외국인 투자는 빈곤을 완화 시켜 주는 열쇠인 것처럼 떠들고는 합니다. 그러나 사실 외국인 투자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입니다. 

 

ㆍ우리는 이제 겨우, 비참한 상태에서 존엄한 가난으로 옮겨가는 중일 뿐입니다. 

 

 

 

 


세 번째 편지 ―나는 주스가 더 좋아요

ㆍ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집단적으로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 이 두 가지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 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합니다.

 

ㆍ가난한 사람들은 날마다 죽음과 맞댄 채 살고 있습니다. 

 

ㆍ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원조나 도움 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ㆍ평균적인 아이티 사람들은 일 년에 250달러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 편지 ―“기브 미 초콜릿”

ㆍ세계가 우리에게 물을 주겠다고 할 때, 물이 아니라 초콜릿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다섯 번째 편지 ―뱃속 평화와 머릿속 평화

ㆍ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의 필요와 권리를 우리들 노력의 중심에 놓도록 요구합니다. 이것은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은 먼저 음식과 깨끗한 물, 보건에 투자한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입니다. 

 

ㆍ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 

 

 

 

 


여섯 번째 편지 ―우리는 존엄한 가난을 원한다

ㆍ아이티 정부가 국제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리는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 봅니다.

 

ㆍ생명의 물은 우리 모두를 거듭나게 하는 세례를 줍니다. 

 

ㆍ농업은 국가의 원천적 부이며 주민의 복지를 위한 최후의 담보이다. 

 

ㆍ신자유주의 전략은 민간 분야가 공공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국가를 허약하게 만듭니다. 

 

ㆍ경제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은 땅과 나무와 흙, 땅에서 수세대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원조 프로그램이 우리의 자연 환경을, 땅에 의존해 살아온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 기대할 수 있나요? 1달러당 84센트가 원조를 제공한 나라에 다시 돌아간다면, 이 나라의 농민과 물을 위해 쓸 돈은 도대체 몇 푼이 남는 셈입니까? 

 

 

일곱 번째 편지 ―나는 소망한다, 우리 영혼에 한 줌의 소금을!

ㆍ지식은 상품이 아니다. 

 

 

 

여덟 번째 편지 ―배고픈 영혼을 치유하는 길

ㆍ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어떤 의심이나 회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싸움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입니다. 이 싸움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릅니다. 

 

ㆍ저에게는 아이티 민중들의 채워지지 않는 기대를 마주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입니다. 먹을 것과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더구나 자신이 그것을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런 상황에서는 오직 진리만이 그들의 신념을 먹여 살릴 것입니다. 

 

 

 

아홉 번째 편지 ―당신에게 보내는 아이티의 특별한 초대장

ㆍ새로운 세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비슷한 도전이 되는 시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좀 더 정당한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우리 시대의 불평등에 제동을 걸 수 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