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도 프로불편러일까
• 나는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좋아한다. 본래 이 말은 작은 이슈 하나하나에도 정치적인 올바름을 요구하는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멸칭이다. 유사어로 프로예민러도 있다. 별거 아닌 것에도 불편해하고 예민함을 드러내는 너희들, 유별나다는 멸시와 경시의 언어, 하지만 프로불편러로 지정된 이들은 오히려 프로불편러가 어때서, 하는 당당한 태도와 함께 그 말을 상대방으로부터 뺏어왔다. 우리의 불편함은 부당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당당하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드러내겠다는 선언, 꼭 여성혐오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에서 프로불편러는 불합리함과 부당함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에 대한 자기긍정의 표현이 되었다.
• 내가 생각하는 프로불편러는 세상에서 평균으로 통용되는 불의나 불합리함에 반응할 정도로 민감한 동시에, 또한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 합당한 것인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냉철한 존재다.
#1 새 시대의 야만
• 결과는 바뀔 수 없지만,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한시적이다.
• 야구는 철저히 누적의 서사다. 착실히 쌓은 아웃 카운트와 출루가 승부를 결정한다.
• 아이돌 각자도생의 시대
제국의 아이들 멤버이자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 역으로 출연 중인 임시완은 '연기돌'로 불린다.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 하지만 정작 그의 최근 활동은 연기돌보다는 그냥 연기자에 가까워 보인다. 임시완은 팀 활동보다는 개인 활동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바로 높은 인지도와 수익으로 연결될 수 없는 시대, 기획사에서 데뷔를 위해 흘린 땀이 충분한 도제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열심히 개인활동을 하는 아이돌 멤버들은,그래서 비정규직 시대의 파트타임 근무자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곳이다. 아이돌 멤버란 사실은, 기획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이제 결코 하이 리턴은커녕 안정적인 생활조차 약속해주지 않는다. 남은 건, 각자도생이다.
언젠가 라디오에 출연한 B1A4의 바로는 드라마 출연 수익에 대해 '개인적으로 한 것이 때문에 수익을 나누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같으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팬과 대중도 그러지 않고서는 각각의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나마도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고, 그 드라마가 히트할 때의 이야긷다. 모든 아이돌 멤버들이 임시완처럼 새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웬만큼 뛰어나거나 운이 좋지 않으면 중도 탈락하기란 너무 쉽다. 가장 빛나는 젊음의 시기를 모두 투자해야 한다. 실패했을 때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정망은 없다. 바닥으로 떨어지면, 각자도생하지 못한 개인의 능력 탓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논리는 이제 꿈을 파는 산업까지 집어삼켰다. 과연 이것을 건강한 시스템이라 말할 수 있을까.
• 성장은 생존을 통해서만 담보할 수 있다. 견뎌내는 모든 시간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견뎌내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다.
• 생존의 어려움보다는 생존을 위해 버리거나 놓아버리는 것들에 집중한다.
• 타의에 의해 자기실현의 자유를 빼앗긴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마치 그들의 자율적인 행동처럼 말해선 안 된다. 당장 윗세대가 지금은 젊은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최소한 기만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2 프로불편러 일기
• 성장은 생존을 통해서만 담보할 수 있다. 견뎌내는 모든 시간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견뎌내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은 없다.
• 종종 왜 뇌섹남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뇌섹녀가 없느냐는 정당한 비판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은 남성의 지성이 여성의 그것보다 중요해서라보다는 오히려 합리적 소통이 가능한 남성이 적어 뇌섹남이 비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뇌섹남이라 할 수 있는 부류의 장점은 개저씨의 반대 항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 우리는 순수함과 폭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 메를로 퐁티
• 모호함에 고의성이 더해진다면 이것은 교활함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 미운오리새끼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극성스러운 어머니가 아니라 부재하는 아버지다. 미운오리새끼라는 기획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긍정하는 것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수직적이거나 수평한 관계가 아닌, 가부장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 나 혹은 내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
#3 그들과 나와 우리의 이야기
• 글을 쓰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독자를 향한 작업이지만, 막연했던 생각을 공적 발화로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다잡게 되는 작업이기도 했다.
• 사랑만큼 순수하거나 이상적인 관념으로 증류하기 어려운 개념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 자체 너무 다양한 욕망의 관계망 안에서만 겨우 구체화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4 이 죽일 놈의 공놀이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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