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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 요모타 이누히코

by mubnoos 2025. 1. 3.

 

1978년 어느 날 도쿄 이자카야
나는 졸업논문 제출 후 세미나 동기생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그 자리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 양 군으로부터 한국에 가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시끌벅적 저마다 생각하는 한국을 말한다. 그리고 며칠 후 세노는 한국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사범대학 객원교수 초청장이 든 우편물을 받고, 지난 술자리에서 한국에 가겠다고 했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아, 내가 진짜 한국에 간단 말인가?

1979년 군사정권하의 서울
서울의 대학에 일본어 강사로 부임한 나. 병역 의무를 해야 하는 같은 세대의 한국 청년, 강렬한 반공의 공기, 식민지 시대의 기억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생활하던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계엄령이 선포된다. 1년간의 서울 체류는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영화관, 시장, 버스, 술집, 전라도 여행 등 곳곳에서 만난 1979년 한국 풍경과 사람들. 한운사, 안병섭, 김지하, 김대중, 김영삼, 하명중, 하길종, 지명관, 최인호, 전혜린, 전채린 등 실존 인물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진진하다.

대통령이 암살된 다음 날 계엄령의 서울
1979년 10월 27일. 계엄령 하에서 나는 학교 교문 앞에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엔 계엄령하의 서울을 걸어보기로 한다. 세종문화회관 맞은편에 미국대사관이 위치했기에 특히 경계가 삼엄했다. 나는 몇 번이고 병사들에게 검문을 당했고 여권을 보여주며 세종로를 가로질렀다. 경복궁 옆길로 접어들어 프랑스문화원 쪽으로 향했다. 프랑스 영화를 보러 몇 번이나 지나갔던 길이다. 화랑과 세련된 서양식 카페가 즐비한, 서울에서도 유난히 세련된 거리다. 이미 가게 대부분은 태극기를 조기 게양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수많은 질문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은 채 서울을 떠났다. 1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한국과 한국인, 거리를 두고 관찰자 입장에서 보려고 했지만 점점 빨려 들어갔다. 한국인은 언제나 정면으로 말을 걸어왔다. 국가란 무엇인가. 군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역사와 언어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나는 한국인이 민족이든 역사든 거대한 관념과 씨름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그리고 내 손은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고 머뭇거렸다.

 

 

 

계엄령은 법이 전면 정지되고 삼권이 군에 이관된다. 군대는 자유롭게 시민을 구속하고 연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군법회의로 처벌할 수 있다. 나는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는 떠올릴 수 없었다. 

 

김제규가 박정희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이 권력을 강탈해 새로운 독재자가 되곘다는 야망과는 전혀 다른 순수하게 국가를 둘러싼 진지한 위기의식에 근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