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두 도시 이야기 / 찰스 디킨스

by mubnoos 2021. 1. 28.
728x90

London & Paris (프랑스 대혁명)

 

  • 혁명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혁명 또한 군중심리에 의해 형성된다. 그리고 그 심리에는 오로지 거친 흥분과 애국심에서 비롯된 열기만 있을 뿐, 인간에 대한 동정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다.“인간이 상상을 표현할 수 있게 된 이래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상상 속의 온갖 괴물들, 즉 온갖 탐욕스럽고 게걸스러운 괴물들의 형상이 모두 하나로 합쳐져 나타난 실체가 바로 기요틴(사형대)이다.’
  • 프랑스의 혁명으로 인해 프랑스의 자본의 영국의 은행으로 몰려들어 일종의 호황을 맞는다.
  •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내면의 열망이다.
  • 반전: 시드니 칼튼; 찰스 다네이와 꼭 닮은 영국의 변호사이다. 무례한 알코올중독자였던 그는 스트라이버 변호사와 함께 찰스 다네이를 변호한다. 그는 찰스의 아내인 루시 마네트를 흠모하는데, 결국 스스로 찰스 다네이 대신 사형을 받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즉 그때는 지금도 너무도 비슷했고, 그 떠들썩한 권위자들은 좋은 쪽으로건 나쁜 쪽으로건 오직 과장된 비교로만 그 시대를 받아들이려 했다. 13

 

제리의 뻣뻣한 흑발은 들쑥날쑥 벗어진 정수리만 빼고 삐죽삐죽 위로 뻗쳤다가 둥글넓적한 코 근처까지 덥수룩하게 흘러내렸다. 그건 머리에 난 머리카락이 아니라 쇠창살을 위로 박은 대장장이의 작품과 같아서, 말타기 놀이를 할 때 상대가 최고의 개구리 뜀뛰기 선수라도 거절할 만큼 위험해 보였다. 27

 

쏟아진 적포도주는 파리 생탕투안 교외의 좁은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손과 얼굴, 헐벗은 발과 나막신까지도 물들였다. 나무를 톱질 하던 남자의 손은 나무토막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아기 엄마는 낡은 머릿수건을 다시 두르는 바람에 이마에 붉은 얼룩이 생겼다. 술통 조각을 게걸스럽게 씹었던 사람들의 입가에는 지저분한 얼룩이 남았다. 긴 자루 같은 나이트캡을 더러운 자루 밖으로 머리가 쑥 튀어나온 듯 뒤집어쓴 멀대같이 키가 큰 익살꾼은 포도주가 스며든 진흙을 손가락에 묻혀 벽에 낙서를 했다. 피.

때가 오고 있었다. 또다시 포도주가 거리의 자갈 틈으로 쏟아지고, 그 흔적이 그곳의 많은 사람을 붉게 물들일 때가 오고 있었다. 49

 

굶주림은 연기 없는 굴뚝에도, 아무리 뒤져도 먹을 만한 동물 내장조차 찾아보기 힘든 쓰레기 더미에서 시작했다. 궁기는 빵집 주인의 옷소매에도 새겨져 있고 질 나쁘고 빈약한 작은 빵 덩이에도 쓰여 있었다. 소시지 가게에서 파는 죽은 개로 만든 소시지에서도 새겨져 있었다. 범을 굽는 원통 화로에서도 달그닥 달그닥 바싹 마른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마지못해 기름 몇 방울을 넣어 튀긴 꺼칠한, 잘게 썬 감자튀김 접시에도 굶주림은 담겨있었다. 굶주림이 어울리는 곳 어디에나 굶주림은 풍겼다. 범죄와 악취가 그득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샛길이 많은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에는 어딜 가나 넝마를 걸치고 나이트 캡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넝마와 모자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그들을 음울하게 내려다보는 것들은 모두 병색이 완연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궁지에 몰리면 역습할 것 같은 야생동물 같은 면이 있었다. 하도 짓밟히고 억눌려서 슬금슬금 움직여도 눈은 불처럼 이글거렸다. 무언가 억누르느라 꼭 다문 입술은 하얗게 질렸다. 이마에는, 자신이 매달리거나 누군가를 목매달아 죽일 때 생각하는 교수대의 밧줄과 비슷한 주름이 파여 있었다. 간판들(간판이 가게 수만큼 많았다.)도 하나같이 우울하게 빈곤을 보여 주었다. 정육점에는 말라빠진 고기만이, 빵 가게 간판에는 거칠고 빈약한 빵 덩어리가 그려져 있었다. 술집 간판에는 묽은 포도주 나 맥주 양이 적다며 투덜거리거나 인상을 쓰고 수군거리는 술꾼들이 어설프게 그려져 있었다. 무기와 연장을 제외하고는 무엇 하나 풍요롭지 않았다. 50

 

때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하릴없이 굶주리면서 점등원만 쳐다봤던 그 지역의 여윈 허수아비들은 점차 점등 방법을 더 좋게 바꾸면 어떨까, 저 밧줄과 도르레로 등이 아니라 사람을 매달아 자신들의 암울한 상태를 비춰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프랑스에 불어오는 바람에 허수아비의 넝마는 아직 흔들리지 않았고 노랫소리와 날개가 고운 새들은 아직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51

 

사실 당시에는 처형이 모든 직종이나 분야에서 유행했고, 텔슨 은행에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죽음은 만물에 대한 자연요법인데, 법률문제에서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따라서 위조화폐범도 사형, 위조지폐를 사용하는 자도 사형, 편지를 불법으로 개봉해도 사형, 사십 실링 육 펜스를 훔쳐도 사형에 처해졌다. 텔슨 은행 정문에 매어둔 말을 훔쳐서 달아난 마부도 사형, 실링 은화 위조자도 사형, 범죄에 사용된 돈의 사 분의 삼을 유용한 사람도 사형감이 었다. 이 방법은 새로운 범죄를 예방하는데 별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사실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회를 위해 개별 사건의 문제를 없애 주었고, 사후에 처리해야 할 어떤 문제도 남지 않게 해주었다. 81

 

기력은 모두 소진되었고 사방은 황량했다. 남자는 조용한 언덕을 가로질러 가만히 멈춰 서 있다 문득 앞에 펼쳐진 황무지에서 명예에 대한 야망과 자기부정, 불굴의 의지 같은 신기루를 보았다. 그 공평한 도시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중한 사람들이 그를 올려다보는 상상 속의 화랑이 있고, 탐스럽게 익은 삶의 열매가 열린 밭이 있고, 눈을 반짝이게 하는 희망의 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뿐, 환상은 사라져버렸다. 그는 즐비한 집들 중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옷도 벗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헛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친 광경에서 무엇이 그 남자의 일생보다 더 슬프겠는가. 뛰어난 능력과 선량한 심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쓰지 못하며, 자신을 파먹은 해충인지 알면서도 그 해충이 자신을 먹어 치우도록 보고만 있는 남자였다. 132-133

 

마을의 샘물도 대저책의 분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흘러갔다. 시간의 샘에서 분이 똑똑 떨어져 흘러가듯 세 시간 동안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흘러가 버렸다. 이윽고 두 곳의 잿빛 물이 으스스한 빛을 띠었고, 성의 얼굴 석상들이 눈을 떴다. 날이 점점 환해지더니 마침내 태양이 잠잠한 나무의 우듬지를 매만지고 언덕 너머로 빛을 뿌렸다. 햇빛을 받은 저택의 분수물은 핏빛으로 변하고 석벽은 주홍 색으로 물들었다. 새들의 노랫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세월의 흔적이 남은 후작의 침실 유리창 문틀에도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목청껏 달콤한 노래를 뽑았다. 이 때 창문에서 가장 가까운 얼굴 석상이 겁에 질린 듯 턱을 떨구고 입을 떡 벌린 채 놀란 눈으로 뭔가를 응시했다. 태양이 어느새 완전히 떠오르고 마을 사람들도 움직였다. 창문이 열리고 대문의 빗장이 요란하게 벗겨졌다. 아직 아침 공기가 선선한지 사람들은 한기에 몸을 덜덜 떨며 밖으로 나왔다. 이제부터 온종일 기다리고 있는 고된 일이 시작될 터였다. 183

 

런던의 어느 캄캄한 창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안, 멀리 생탕투안은 한번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붉은 발자국으로 뒤덮였고, 광란의 위협적인 발들은 분 노에 차서 닥치는 대로 목숨을 짓밟으며 자국을 냈다. 그날 아침, 생탕투안에서는 초라한 몰골과 우울한 표정을 한 거대한 무리는 앞뒤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강철 칼날과 총검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굽이치는 수많은 머리 위로 번쩍거렸다. 생탕투안의 목구멍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숲을 이룬 헐벗은 팔들이 허공을 향해 내지를 때의 모습은 찬바람에 흔들리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다. 생탕투안 시민들의 맥박과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이고, 질주하듯 뛰었다. 그곳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목숨을 내걸고 기꺼이 희생할 열정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307~308

 

그녀의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복 비슷한 단조로운 검은색 옷을 딸과 함께 입었는데 단정하게 입을 뿐만 아니라 즐거운 날 입는 화려한 옷만큼이나 정성껏 손질을 했다. 안색은 좋지 않았고, 예전 이마에 나타났던 골똘한 표정이 가끔이 아니라 늘 배어 있었지만, 그것만 빼면 여전히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밤이 되면 아버지에게 키스하다 가끔 온종일 억눌렀던 슬픔을 터뜨렸고 하늘 아래 의지할 사람은 아버지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언제나 결 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찰스한테 일어날 수는 없다. 이 아버지는 찰스를 구할 자신이 있단다, 루시.” 396

 

콩시에르주리로 가는 길은 짧고 어두웠다. 벌레가 우글거리는 감방에서의 밤은 길고 추웠다. 이튿날 찰스 다네이가 호명되기 전 열다섯 명의 죄수가 재판정에 끌려 나갔다. 그리고 열다섯 명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에 걸린 시간은 총 한 시간 반이었다. “샤를 에브레몽드, 일명 다네이.” 드디어 그의 재판이었다. 판사는 깃털 모자를 쓰고 앉아 있지만 그 외에는 조잡한 붉은 모자를 쓰고 삼색 모표를 단 사람들 일색이었다. 다네이는 배심원단과 소란스러운 청중을 둘러보며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악한이 정직한 사람을 심판한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가장 비천하고 잔인하고 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천하고 잔인하고 악한 성품을 이용해 이 무대를 감독했다. 시끄럽게 떠들고 박수를 치고 부인을 하고 재판결과를 재단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마구 결론을 냈다. 406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의 유년시절이 퍽 멀게 느껴지시나요? 선생님이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었던 때가 아득한 옛날처럼 여겨지세요?” 로리 씨는 뜻밖에도 유순한 카턴의 태도에 놀라며 대답했다. “이십 년 전쯤만 해도 그랬다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마치 원을 그 리듯 점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소. 원만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까. 요즘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젊고 예뻤던 어머니(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말 이야!)에 대한 추억이 자주 떠오른다오. 세상이라는 것이 그리 실감 나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부족하지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던 시절의 기억도.” 447

 

도끼날의 지배를 받는 도시에서 한밤중에 홀로 있자니, 오늘 사형을 당한 예순세 명과 지금 감옥에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릴 내일의 희생자, 그리고 그 다음 날, 그 다음 날의 희생자에 대한 생각이 아니더라도 기억 뒤편에서 성경 구절을 하는 기억의 사슬을, 깊은 바다에서 녹슨 고선의 닻을 건져 올리듯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451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다리 위에 서서 파리의 강벽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들었다. 그림처럼 어우러진 집들과 성당이 달빛에 밝게 빛났다. 새벽의 태양이 찾아왔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체의 얼굴처럼 춥고 으스스했다. 달과 별이 떠있는 밤하늘이 서서히 창백해지며 사위어갔고, 그 잠깐 사이 죽음이 생명의 세상을 지배한 듯 보였다. 452

 

“잘못 사용하면 인생이란 별 가치가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 볼 가치는 있지요. 만약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런 인생은 아무 가치도 없을 테니까요.” 483

 

“’바스티유에서 찾아낸 편지에 적힌 두 에브레몽드 형제에게 당한 농부 가족은 내 가족이에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바닥에 누워 있던 소년의 누나는 우리 언니이고, 그 남편은 제 형부이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내 조카이고, 그 남동생은 내 오빠예요. 그리고 그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시고, 죽은 사람은 모두 내 가족이 에요. 그러니까 그 죄인을 심판대에 세우는 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에요.’ 남편에게 물어봐요. 내가 정말 그랬는지.” “그건 그렇소.” 드파르주가 다시 한 번 동의했다. “그렇다면 바람과 불한테 물어봐요. 우리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부인이 말했다.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490

 

잠시 꿈이 중단되고 망각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고 평화로운 상태가 되어 그녀를 쫓아간 그에게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또 한 번 망각의 상태가 되었다. 이윽고 아침이 찾아왔고 잠에서 깨어났다. 문득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한 가지 생 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로구나!’ 502

 

 

 

작품해설

 

클라이스트는 역사라는 것이 입술 한 번 씰룩거리거나 단춧구멍에 애매한 꽃을 한 송이 꽂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역사는 서툴고 더듬거리는 말도 기적적으로 경구로 만든다. 566

 

mubnoos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