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와 중세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시간
• 고대의 수렵 문화권이나 농경 문화권에서 최초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난 이후로, 수준 높은 고대 문명권과 도시 국가에서 처음으로 천문학 연구를 통해 시간을 관찰하고 규정하는 방식이 생겨났다.
•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한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 가운데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이들이 제기한 의문은 오늘날까지도 시간에 대한 논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연 이 세계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생각했듯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시간은 마치 강물의 흐름처럼 되돌이킬 수 없이 앞으로만 흘러가는 것일까? 아니면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했듯이 모든 변화란 그저 가상에 불과할 뿐이며 시간 또한 변화하지 않는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매개 변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 뒤를 이어서 철학자 제논이 '시간의 화살'이 지닌 '시간 패러독스' 이론을 주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의 연속성' 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들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들을 주도해왔다. 그후 교부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자연철학과 기독교의 창조론을 결합시킴으로써 시간은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최초로 펼쳤다. 중세 서양의 천문학은 이와 같은 철학적, 신학적 배경 속에서 관측되고 연구되었다.
• 지속성과 변화는 고도로 발달된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가운데 인지하는 기본적인 현상들이다. 인간은 진화하는 동안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규정하게 하는 시간에 대한 의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의식이 처음부터 통일성을 띠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 인간이 시간을 정확하게 지각하도록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규칙적으로 운행을 되풀이하는 천체들이었다. 인류는 별의 규칙적인 운행을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변함없는 규칙성을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기초로 변하지 않는 시간의 단위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며, 이는 다시 지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운행 속에 나타나는 지속성 및 변화에 비교되었을 것이다.
• 오늘날 사용되는 태양력은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 우리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이는 24 * 60 = 1440분, 24 * 60 * 60 = 86,400초 라는 계산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계산법에 따른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만물의 근원은 아르케, 불이었다. 불은 정지하고 있는 물질잉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정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헤라클레이토스를 비가역성,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과정의 발견자, 한 쪽으로만 날아가는 시간의 화살의 발견자라고 보고 있다.
• 파르메니데스는 지속적이고 변화힞 않는 것이란,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오로지 현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변화란 환상에 불과하며 오직 현재 지속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를 가역성의 세계, 시간의 전개에 맞서 변화하지 않는 불변의 세계를 발견한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다.
2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으로 바라본 시간
• 뉴턴은 우주 속에서 모든 운동들은 절대적인 시간과,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좌표계로 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서 라이프니츠는 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절대적인 시간관에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상대적인 공간 및 상대적 시간의 이론으로는 회전현상과 가속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 독일 철학자 칸트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은 결국 초월적인 의식의 형태로 간주되었고, 이에 따라 시간과 공간은 이 세계 안에 대상과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지와 자연 과학적 이론의 형성에 앞서는 전제가 되었다.
• 18세기 말에 등장한 고전역학에서 시간은 다만 결정론적으로 형성되는 운동 방정식 속에서 이미 주어진 't'라는 좌표로서 기능했다. 이때 운동 방정식은 시간의 방향을 반대인 '-t' 로 바꾸어도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고대 파르메니데스적인 세계관을 근대적으로 해석한 고전역학의 '시간의 불변성'이론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보존의 법칙은 이 같은 시간의 대칭이론에서 발전되어 나온 수학적 결과이다.
• 라이프니츠에게 공간이란 어떤 형이상학적 또는 존재론적인 이론이 적용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들 사이에 주어지는 관계를 의미했다.
•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서로 상대방을 공격한 것은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었다. 우주 안에 절대적인 정지점이 있다는 뉴턴의 주장은 어떠한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증명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따라서 뉴턴이 생각하는 시공간은 지나치게 구조적이었다. 그에 반해서 라이프니츠 식의 시공간은 지나치게 덜 구조적이었다.
• 칸트의 인식론에 의하면, 시간은 경험할 수 있는 실제가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는 선험적인 의식 형태로 이해했다. 이 선험적인 의식 형태란 우리가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측정하고, 물리적 법칙들을 세울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에 이미 앞서서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3 상대론적인 시공간
• 현대 물리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대론적인 공간과 시간' - 현대 물리학에서 시간의 측정이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라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누구나 자신의 시간 (즉 고유시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시간 개념이 아니라 미터법적이고 위상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 개념이다.
•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다시 말해서 상대론적인 중력이론에 비추어보면, 시작 (빅뱅)과 더불어 유한적인 시간과 무한적인 시간이 발전해왔다는 우주의 표준 모델들을 추론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델들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물질에 관한 이론인 양자역학을 고려해야 한다.
4 시간과 양자의 세계
• 시간과 양자의 세계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측정 변수들에 대한 통계역학적 계산이 수반되는 양자역학에서도 시간이라는 것은 결정론적인 파동 방정식 (즉 슈뢰딩거 파동 방정식)의 변수로서 고전역학에서처럼 t 에서 -t (시간의 허수 방향)로 변할 때에도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립자들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장이론에 이르면 시간의 대칭 관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와 관련하여 PCT정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주어진다.
• 초중력이론과 초끈이론은 펜로즈와 호킹이 주장하는 특이점 정리는 시간의 궤도가 사라져버리는 블랙홀 이론으로 귀결된다. 과연 시간이라는 것을 시작의 특이점으로부터 생겨나게 하여 최후의 특이점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우주적인 보편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최초로 시간이 생겨난 시작의 특이점은 없고 단지 시간과 우주는 이미 존재해왔다고 보는 호킹의 새로운 통합 이론이 맞는 것일까?
5 시간과 열역학
• 19세기 물리학은 우리가 매일 체험하듯이 시간이란 되돌이킬 수 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는 전제하에서 논의되었다. 예를 들어 바닥에 떨어진 찻잔은 깨진다. 커피에 우유를 섞으면 밀크 커피가 된다. 그리고 빛이 별에서부터 발산되어 나온다 등등의 사고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다시 거꾸로 되돌린다는 상상 따위는 결코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시간과 열역학'의 관계가 핵심이다.
•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되돌이킬 수 없는 단위로 증명되지만 우주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본 시간은 되돌이킬 수 없는 단위가 아니다. 볼츠만이 제시하는 통계역학적인 설명은 열평형 상태에 가까운 닫힌계에서만 타당성을 지닌다. 레이저 광선이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소산 구조가 전개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H. 하겐, I. 프리고지네 등이 제시하는 비평형 통계역학이 필요하다. 분명한 자기 조직화 구조에서 나타나는 시간적 발전은, 화학과 생물학에서도 알려져 있듯이 열평형과는 거리가 먼 환원 불가능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예가 된다.
6 시간과 삶
• 다윈과 스펜서가 주장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생명과 성장은 복잡성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생명의 진화는 비평형 통계역학의 틀 안에서 해명될 수 있는 복잡한 소산 구조들이 환원 불가능한 시간긔 과정을 겪는 것으로 증명된다. 여기서 이른바 시간의 화살의 뿌리가 놓여 있다. 거기에는 무수한 생물학적인 시간의 리듬들이 있으며 이것들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복잡한 시간의 위계질서 속에서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중첩되곤 한다. 거기에는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의 리듬은 물론, 생물들의 개별적인 기관들 속에서 흐르는 시간의 리듬도 포함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뇌 속에는 생리학적인 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다른 시간의 리듬들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 속에서 시간의 체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7 시간과 의식
• 의식이란 복잡한 신경망들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나는 신경 연결망들이 거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질서맺음변수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시간의 전개는 원칙적으로는 비평형 통계역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환원 불가능한 시간의 과정과 구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시간 의식이라는 것은 물리학에 대립하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신경계의 상호작용 결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시간의 흐름, 예를 들어 문학과 시에서 설명되는 시간의 흐름은 개인에 따라서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인공 지능의 틀 안에서는 과연 시간 의식을 지닌 체게들 (로봇) 을 개발하는 일이 가능할지, 만약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 의식을 지닌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따위의 물음이 제기된다.
8 역사와 문화 속의 시간
• 복잡계들에 관한 이론을 통해 사회-경제적 체계들도 모델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의 시간의 발전 역시 물리적 시간의 진행 과정이나 생물학적 시간의 진행 과정과 유사한 방식들을 사용하여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적 환원주의로 귀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문화 속의 시간이 역사 철학의 맥락에서 연구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