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의 철학
ㆍ플롯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플롯은 모름지기 작가가 펜을 들어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대단원까지가 정교하게 기획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만큼 분명한 것도 없다. 지속적으로 대단원을 염두에 두고 쓸 때에만, 사건들은 물론이고 특히 사건의 모든 지점들에서의 어조가 창작 의도에 맞게 전개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플롯은 필수불가결한 결말이나 인과관계의 분위기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ㆍ나의 경우에는 하나의 효과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독창성에 항상 유념하면서 말이다. 독창성이야말로 너무 명백히 독자의 흥미를 쉬 유발할 수 있는 요소인데 간과한다면 작가가 불성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한다. "마음과 지성 혹은 영혼이 받아들이는 수많은 효과나 인상 중 지금 무엇을 택할 것인가?" 나는 맨 처음에 효과의 새로움을 고려하고, 그다음에 효과의 생생함을 정한다. 그리고 그 효과가 과연 사건들에 의해서 잘 생겨날지 아니면 어조에 의해서 잘 구축될지를 나중에 고려한다. 즉 평범한 사건들에 특이한 어조가 가해지면 될지 혹은 그 반대로 특이한 사건들을 평범한 어조로 전개할지, 혹은 사건과 어조 둘 다 특이함이 필요할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효과의 구축에서 나를 가장 잘 도와줄 그런 사건과 어조를 결합해내기 위해 내 주변 혹은 내 안을 살펴보면서 말이다.
ㆍ나의 계획은 이 시의 창작 과정의 어느 지점도 우연이나 직관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은 정확성과 그것의 엄밀한 결과에 의해 단계별로 하나씩 완성을 향해 나아갔음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ㆍ모든 문학작품의 길이에는 하나의 뚜렷한 제한이 있다는 것, 즉 한 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길이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ㆍ흔히 사용되는 후렴구 혹은 주제어구는 서정시에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일음 - 소리와 사유의 측면에서 - 의 힘이 낳는 인상에 의존한다. 그 즐거움은 오로지 자기동일성, 즉 자기반복에 대한 감각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 나는 즉시 최상의 후렴구는 단 하나의 단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결코 더는!"
상상력에 대하여
ㆍ순수한 상상력은 아름다음으로부터건 추함으로부터건, 가장 결합이 용이하면서도 지금까지 결합된 적이 없는 것들을 선택한다. 그 결합체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결합된 요소들 각각이 결합 이전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지녔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체로 비례한다. 그러나 물질의 화학 작용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이 지성의 화학 작용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은 두 요소의 혼합이 어느 한 요소의 성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 두 요소 중 그 어느 것의 성질도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상상력의 영역은 무한대이고 상상력의 재료는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 심지어 추함으로부터도 상상력은 자신의 유일한 목적이자 필수불가결한 시금석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력을 평가할 때 고려되어야 할 특정한 측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결합된 요소들의 풍요로움과 힘, 결합이 가능하면서 결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무엇들을 발견해내는 능력, 그리고 특히 완성된 덩이의 완전한 화학적 결합의 여부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을 생각 없는 사람들이 매우 자주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작품에 깃든 이러한 온전한 조화로움 때문인데, 즉 거기에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특성이 부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러한 결합이 이전에 상상된 적이 없는지 스스로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쉽다.
B씨에게 보내는 편지
ㆍ나이 들면 시에 담게 될 그런 명상을 하느라 젊음을 다 흘려보낸 것이 워즈워스의 잘못입니다. 그의 사고력이 자라나자 정작 그 사고력을 명료하게 해줄 빛이 기울어버렸으니까요. 이 말은 잘 이해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옛 독일 고트족 사람들은 이해할 겁니다. 그들은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논할 때 두 번 논쟁을 했지요. 한 번은 취한 채로, 다른 한 번은 맨 정신으로. 맨 정신일 때는 격식의 꼼꼼함이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며, 취했을 때는 활력이 모자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ㆍ표면 위에는 지푸라기 같이 하찮은 것들이 떠다니니 진주를 찾고자 하는 자는 수면 아래로 잠수해야 한다.
영혼의 베일
ㆍ나에게 ‘예술’이라는 용어를 매우 짧게 정의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오감이 자연 안에서 영혼의 베일을 통하여 지각한 것의 재현’이라고 말하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확하게 재현을 한다 해도 자연 안에 있는 것의 단순한 모방으로는 그 누구도 ‘예술가’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다.
시의 원리
ㆍ만약 “끈기 있는 노력”으로 어느 평범한 신사가 서사시 한 편을 완성했다면, 그 노력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찬사를 보냅시다, 만약 그것이 진실로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라면 말이죠. 그러나 그런 노력 자체만을 이유로 그 서사시를 칭찬하는 것은 삼갑시다. 바라건대 미래에는 예술 작품이 만들어내는 인상, 그 작품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근거하여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비평가들과 비평에 대하여
ㆍ비평가란 때로는 단순한 논평자의 역할을 하도록 허용받긴 하고, 또 단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각각의 뛰어난 점을 최대한 미화하여 보여주도록 허락받긴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비평가의 합당한 작업은 결점들을 지적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작품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를 개별 문학인에 대해 부당하게 주목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학 일반의 존재 의의를 높이려는 작업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름다움이란 금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금언은 그저 명료하게 제시되기만 하면 즉시 자명한 것이 된다. 만약 아름다운 것으로서 증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래서 작품의 훌륭한 점들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지적하는 것은 그것들이 실은 온전히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야기 쓰기
ㆍ이 신사들은 어떤 경우에도 교육받은 작가가 틀리기보다는 대중이 옳지 않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단순한 사실은, 작가가 자기가 의도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는 데에 실패했다면 그 경우엔 언제나 작가가 틀린 것일 따름이다.
ㆍ천재의 힘을 인식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천재성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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