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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드 기타

by mubnoos 2021. 1. 18.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신에 가까운 신 자체에 대한 존자=지존자,혹은 지고자의 기타=노래를 의미한다. 여기서 '바가바드' 로 존칭되는 지고자는 위슈누Vishunu 신이자, 그가 인간적 모습으로 육화한 크리슈사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에너지와 긍정적인 에너지로 들끓는  이 삶이야말로 진리가 실현될 수 있는 최적의 곳" 임을  뜻하는 것이다. 6

*제1장 : 아르쥬나의 비탄

핏줄에 대한 이 애착심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건 <눈먼 사랑>에 불과하다. 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잘못됨의 원인은 바로 이 <핏줄에 대한 눈먼 애착심>에서 비롯된다. 47

아르쥬나는 지금 옷(육체)의 차원을 생명(영혼)의 차원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51
핏줄이 핏줄의 궤도에서 이탈해 버리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핏줄이 아니다라는 이 진리의 법칙을 알지 못한 데서 오는 생각이다. 51

가장 깨끗한 것이 부패해질 때는 가장 추악하다. 52

[바가바드 기따]의 의 전 내용은, 참된 진리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악과 싸워라. 불의와 싸워라. 최후의 순간까지" 53

*제2장: 앎의 길

아르쥬나는 왜 이토록 번민하고 있는가.  그 자신의 에고를, 그 에고의 감정을, 핏줄에 대한 애착의 감정을 여기 개입시켰기 때문이다.
이 삶에서 우리가 우리의 소아적인 감정을 개입 시키면 그럴수록 우리는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소아적인 에고의 감정을 버리고 좀더 거시적인 태도로 이 삶에 임하게 되면 아르쥬나의 번민은, 우리가 이 삶에서 겪는 감정과 도덕적인 그 많은 혼란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63

제자의 마음이 텅 비어있을 때, 그리하여 그 어떤 것도 담지 않은 텅 빈 그릇일 때, 그때 비로소 스승의 언어는 제자의 그릇에 담기는 것이다. 66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알고 있는 이>다. 68

<니르바나>란 절대자 속에서 존재의 개체성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말한다. 69

영혼의 이 <옷 갈아입기> 71

행복과 불행에 흔들리지 사람은, 
이 둘의 한가운데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은,
이제 머지않아 영혼의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72

진정한 의미에서의 죄악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에서의 이탈" 이보다 더한 죄악은 없다. 85

인간을 사냥하는 재미로 전쟁에 가담해서는 결코 안된다 전쟁, 그 자체를 위해서 싸워서는 결코 안 된다. 단지 그대에게 부여된 신성한 의무의 이행으로 싸워야 한다. 88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간다. 그러나 사자는 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진 사람을 뒤돌아 물어 버린다. 91

행복할 때 너무 날뛰지 않고,
불행할 때 너무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한 지혜에 이른 사람이다. 99

감각의 대상에 
그 마음이 집중되면 거기 집착이 생긴다.
이 집착으로부터 욕망이 생기며
이 욕망으로부터 분노가 생긴다. 102

분노로부터 미망이 생긴다.
그리고 이 미앙으로부터 
기억의 혼란이 생긴다.
그리고 기억력이 흐려질 때
지성은 사라진다.
그리고 지성이 사라지게 되면
다시 물질의 차원으로 추락하게 된다. 102

우리의 마음에 분노의 바람이 불면 거기 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는 미망의 불결이 인다. 103

감각을 억제하지도 말고 방치하지도 말고
지혜롭게 다스르지 않으면 안 된다. 103

물질의 밤은 영혼의 아침이요,
이 낮은 영혼의 밤인 것이다. 105

욕망의 대상을<유한적인 것(물질)>에서 <무한적인 것(신)>으로 바꿔야 한다.
<나>라는 소아적인 의식이나 <나의것>이라는
이 소유 개념은 사라진다. 소유 개념이 사라지게 되면 더이상 집착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유 개념과 집착이 없게 되면 마음은 이제 지극한 평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106

제3장: 행위의 길

"행동의 길보다 지혜의 길이 더 높다면 왜 나를 행동하도록 충동하고 있느냐" 고 크리슈나에게 반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합리화시키려는 그의 의도에서 나온 질문이다. 110

<포기>는 도피요 <초월>은 졸업이다. 112

<감각을 지혜롭게 다스린다>는 것은 감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유한적인 것에서 영원적인 것 쪽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이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배 아픈 데 머큐롬 바르는 수준>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113

그러나 자기 자신 속에서 기뻐하고
자기 자신과 더블어 넉넉해하고
자기 자신 속에서 충만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의무가 없다. 120

무지한 사람은 
그 결과에만 집착하여 행동을 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그 결과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의 이런 행위야말로
진리의 길을 가는 자의 좋은 본보기이다. 125

<욕심>이라는, <죄악>이라는 이 말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욕심을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욕심을 유한한 것(물질)이 아닌 무한한 것 쪽으로 확장시켜 가야 한다. 액체적인 이 삶의 에너지를 기체적으로 변형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그저 무작정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짓이다. 왜냐면 그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짓이다. 왜냐면 그 억눌린 에너지가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폭발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126

육체보다 높은 것은 감각이다.
감각보다 높은 것은 마음이다.
마음보다 높은 것은 지성이다.
그리고 지성보다 더 높은 것은 영혼이다. 135

*제4장: 지혜의 길

집착과 공포, 그리고 분노에서 벗어나라.
나에게 열중하고 나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지혜의 수련을 통해서 정화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나의 본성에 도달한다. 143

구도자란 누구인가? 
구도의 길은 어떤 것인가?
자기 색깔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구도자이다.
자기 색깔대로 살아가는 삶이 구도자의 삶이다. 144

행위 속에서 침묵을 느끼며
침묵 속에서 행위를 발견하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이 행위의 물결 속에 파묻혀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저 초월의 차원에 있다. 152

신념이 강하고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그리고 자기를 잘 절제하는 사람은,
마침내 지혜를 얻게 된다.
지혜를 얻게 되면 머지않아
그는 <영적인 평화>에 이르게 된다. 164

*제5장: 진정한 포기

*제6장: 명상의 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를 위해서> 행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9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의 친구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의 적이다. 191

수행자는 조용한 곳에 앉아
몸과 마음을 잘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욕망과 소유욕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193

명상의 방법
첫째, 몸의 동작을 통한 수련법.
둘째, 언어의 반복을 통한 수련법.
셋째. 의식의 흐름을 통한 수련법.
넷째, 감정을 통한 수련법
  @<응집력을 통한 수련법>: 부동의 자세로  
         한 곳에 앉아 생각과 감정을 어느 한 
         지점에 응집시키는 것이다.
     <확산력을 통한 수련법>은 몸의 동작과 
         생각, 그리고 감각과 감정의 흐름을 따라
         다니며 그때그때마다 응집시키는 방법
           199

마치 촛불처럼 깜박이고 있는 그대의 마음은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떠돌고 있다.
연약한 이 마음을 지혜롭게 다스려라.
그리고 이 마음을 그대 자신의 감시 아래 두다.  202

<명상>은 그대 자신을 그대 자신 속에 머물게 한다. <명상>은 그대 자신을 영원한 존재 속에 머물게 한다. 203

모든 존재들을 동등하게 보면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나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있는 이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완성에 이른 수행자이다.  205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이에게는 
명상의 완성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게 되면
명상은 머지않아 완성에 이르게 된다.  207

삼일 동안의 명상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모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로 사라져 버린다. 209

명상이, 명상의 에너지가 나오는 그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명상의 절정이다. 211

*제7장: 깨달음의 길

저 수천의 사람들 가운데 
오직 몇 사람만이
영혼의 잠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몇 사람 가운데에서도
나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또한 드물다. 214

지식이 아니라 사고가 아니라 침묵을 통해서만, 침묵의 그 명상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그>를 감지할 수 있다. 214

문질의 세 가지 특성의 이 베일 현상을 <마야(maya) 환영>라 부른다. 218

*제8장: 불멸의 길

저 불멸의 존재를
<브라만(Brahman)>이라 한다.
그 브라만의 영원한 본질을
<자아(Atman)>라 한다.
그리고 이 육체의 성장에 관계된 우리의 모든
활동을 <행위(Karma)>라 부른다. 229

아르쥬나여, 그 마음이 
다른 곳에 가 떠돌지 않고 
명상을 통해 집중된 이는
그리하여 언제나 늘
<절대적 존재>를 명상하는 이는
저 <절대적 존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231

내가 지금 꽃을 보고 있다면 <내가 지금 꽃을 보고 있는> 이 상태를 놓치지 말고 내적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시각>이 이동하는 대로 이 시각을 주시하는 우리의 응집력도 거기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비파사나 명상법의 사마타(Sammata) 수행법 (응집력을 통한 수행법)에 해당한다.
다음 <마음을 가슴 안으로 모으기> 위해서는 우선 호흡을 <제3의 눈>인 두 눈썹 사이에 모아야 한다. 호흡을 <미간>에 모우기 위해서는 두 눈을 감고 이 <미간>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즉 <미간>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여기 브라만의 상징인 만 트라이 음절 <옴>을 소리내여 읊어야 한다. 235

*제9장: 지혜의 끝

행위와 사고를 통해서는 <그>의 응접실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통해서는 <그>의 침실까지 들어갈 수 있다. 247

부정적인 사람들: 샤르트르(냉소적)
긍정적인 사람들: 바보들
지혜로운 사람들: <지혜로운 이>가 되기 위해서는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침묵 속에서 명상에 잠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명상이 마침내 기도가 되어야 한다. 260

진리에의 길은 <가득 채우는 길(지식)>이 아니라 <텅 비게 하는 길(지혜)>이라는 것을 겸허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무릎 꿇을 때, 우리의 모든 것을 <그>에 향할 때, 우리는 가장 강렬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릇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텅 빈 그릇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담길 수 있기 때문이다. 260

"이 세상 전체를 피로 물들인다 해도 미신은 결코 뿌리뽑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신은 절대 유일자를 향한 그 신앙의 간접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266

[문] 말끝마다 신! 신! 하고 있는데, <그>가 도데체 누군가? 보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장에 가해지고 있는 전기쇼크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언어는 쓰면 쓸수록 낡아 버린다.  
그러나 그 언어가 가리키고 있는 실제는 언어의 낡음과 전혀 관계없이 언제나 처음처럼 빛나고 있다. 269

"어떻게 하면 실수를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실수를 통해서 <그>를 깨닭느냐." 이다 271

제10장: 근원자

명상의 절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 어리고 있는 <그>
의 모습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 법열의 전율이 우리 몸에 흐르게 하는 것이다. 283

제11장: 신은 자신의 모습을 펼쳐 보였다.

"모든 이미지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G 바슐라르  302
현상 속에 제각기 다른 형태와 느낌, 그리고 우리의 생각들은 바로 <그>라는 에너지의 바다에 이는 조그만 파도장들인 것이다. 303

"삶은 신이다." 오쇼 라즈니쉬   305

우리의 감각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거나 볼 때 우리는 일종의 공포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공포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공포감은 부정적인 공포감이 아니라, 경이로움이 그 절정에 달할 때 느끼는 일종의 신비감이다. 311

아르쥬나 눈에 비취는 <그>와<우주적인 모습은>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 그 자체이다. 312

명상과 기도의 길을 가는 이들은 때때로 강렬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경우 영적인 체험은 대개 다음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내면적으로 몸의 어느 부분이 강한 영적 
         쇼크를 받는 경우.
둘째, 사차원적인 불가사의한 현상을 눈으로     
         집적 보는 경우.
그런데 이 영적 체험을 하게 되면 강렬한 기쁨과 동시에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온다.
왜냐면 그 영적인 사차원의 체험은 우리의 육체로 감당해 내기에는 그 충격파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영적인 체험이 너무 강하게 오는 경우에는 그 강한 충격으로 인하여 육체가 부서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한 이들은 그 체험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330

<네 개의 팔>이란 인간의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내적인 특성>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마음(0Mano)>, <지성(Buddhi)>, <사고(Chitta)>, <자아의식(Ahamkara)>을 말한다. 네 개의 팔을 가진 <그>는 언제나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여기<푸른 바다의 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색깔이 나오는 근원색으로서 저 <무한>의 가시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주황색>은 이 대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유한>한 일체를 뜻한다. 334

이 모든 것을 오직 
나를 위해서 하는 사람은,
나를 궁극적인 이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하여 그의 모든 것을
다 던지는 사람은,
그리하여 이 모든 잡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리고 모든 존재에게
더 이상 적대감을 갖지 않는 사람은,
아르쥬나여, 그는 마침내 나에게 오게 되리라.
 338

제12장: 헌신의 길

명상이 아니라 박띠다. 명상은 어디까지나 박띠 신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342

인간인 우리는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가야 한다. 342

넉넉한 마음과 확고한 신념. 347

그 누구에게 방해받지도 않고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감정의 파도에서 저 멀리 떨어져 서 있는 사람. 그는 가까운 사람이다. <그>에 앞서, 진리에 앞서, 그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348

인간적인 것은 진실한 것이다. 진실한 것은 신적인 것이다. 신적인 것은 신,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벗이여 아무 데도 가지 마라. 부족한 대로 덜 익은 대로 <지금 여기>에서 그대 자신 속에 남아 있거라. 349

단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여기 힘차게 살아 굽이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살아 굽이치는 바로 이 <삶>이다. 350  

버려야 할 <집>도 없는 주제에 <집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집>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집>을 가져 볼 일이다. <성실>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진정한 고요함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거기 <시끄러움>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고요함>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360

<순간> 속에서 저 <영원>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366

물질은 육체와 감각의 근원이다.
그리고 영혼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 366

머리로 백 년을 걸려 도달한 곳을 가슴은 단 한순간에 갈 수가 있다. 왜냐면 <가슴>에는 조건이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내맡김>만이, 뜨거운 이 복종만이 있기 때문이다. 370

제4장: 물질의 세가지 성질

인간은 어디까지나 신적인 존재이지 신, 
그 자신은 아니다. 381

<물질의 세 가지 특성>인 
<밝음>은 <빛>, 즉 상승하는 힘(상승력)이요, <격정>은 <불>,즉 유지시키는힘(유지력)이요
<어둠>은 <암흑>, 즉 하강시키는 힘<하강력>
이다. 물질의 이 세 가지 특성은 일종의 안개 현상이 되어 우리의 본성을 가러 버린다. 그래서 이를<마야(maya), 환영>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야>란 <그>의 외적 에너지 (물질)가 일종의 커튼 현상이 되어 다시 <그>의 외적 에너지(물질)가 일종의 커튼 현상이 되어 다시<그>의 모습을 가려 버리는 것을 말한다.  381

밝음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순수의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격정적인 행위의 결과는 고통이다.
그리고 어둠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무지에 이른다.  387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월자>는 이 삶을, 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또한 그와 동시에 이 삶을, 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삶을, 이 삶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이 모든 것을 그 자신의 <오고 감>에 내맡길 뿐이다. 391

제15장: 환영의 나무

<그>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  408

달에서 생명의 물<소아(soma)>가 지상에 내린다고 했다.....<소마>가 되어 달빛을 타고 지상에 내린다. 410

제16장: 성스러운 것과 속스러운 것

나쁜 것을 미워하게 되면 그 나쁜 것은 더 나빠지는 법이다. 미워하지도 말고 이뻐하지도 말고 미우면 미운 대로, 이쁘면 이쁜 대로 봐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쁜 것들을 다스리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423

길을 잃고 헤매 본 사람. 엄청난 시행착오의 그 절망에 빠져 본 사람, 그는 마침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왜냐면 길은 언제나 그의 안에 이었으므로. 425

제17장: 기질의 세 가지

그 기질이 밝은 이는 나를 숭배한다.
그 기질이 격정적인 이는
부와 권력의 신들을 숭배한다.
그리고 그 기질이 어두운 이는
밤의 신과 명계의 귀(귀신)들을 숭배한다.

길을 잃고 헤매 본 사람, 엄청난 시행착오의 그 절망에 빠져 본 사람, 그는 마침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왜냐면 길은 언제나 그의 안에 있었으므로. 425

그대가 아무리 저 이상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이 기질을 통해서 갈 수밖에는 없다. 왜냐면 기질을 억제하면 가는 길은 그렇게 강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29

절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억누르는 것은 좋지 않다. 지나치게 억누르게 되면 거기 생명의 열기마저 식어 버리고 만다. 430

그 기질이 밝은 이는 나를 숭배한다.
그 기질이 격정적인 이는
부와 권력의 신들을 숭배한다.
그리고 그 기질이 어두운 이는
밤의 신과 명계의 귀를을 숭배한디. 432

<고행>이 지나치게 되면, 그것은 이제 더이상
고행이 아니라 <자기학대>가 된다. 자기학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과시가 암초에 부딪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그 반대적으로 일어나는 자기과시 역현상이다. 433

극도의 금욕주의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독한 위선과 자만, 그리고 물질과 권력에 대한 야망이다... 이 육체에 고통을 가한다는 것은 이 육체 속에 살고 있는 저 <영원한 이>를 박해하는 것은 결코 축복받을 일이 아니다. 434

마음의 평정과 단순 솔직,
진지함과 자기 절제, 그리고 생각의 정화,
이런 것들을 마음의 고행이라 한다. 439

<옴 (Om)-->절대여>, 절대성
<땃(Tat)-->그것은>,  보편성
<삿(Sat-->선이다)>,  실재성
이 세 개의 음절은 브라만의 세 가지 특성이다
인도에서는 공양의식, 자선, 고행, 등 모든 의식에서 신을 지칭하는 상징 음으로 사용.
442

제18장 초월의 길

진정한 초월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언제 어디에 살고 있든 그 어떤 것에도 <달라붙지 않는 것(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초월이다. 448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하는 것 즉 그 행위의 결과를 전혀 개의치 않는 것 이것을 초월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초월의 경지에서 집착 없이 살아가는 삶을 <초월의 삶>이라 한다. 449

<초월>이란 <행위의 완성>이다.
첫째, 나 자신과 근원자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
         (공양의식)
둘째, 자기 자신을 알맞게 절제시킴(고행).
셋째, 남의 입장이 되어 이해함(자선).

그 마음에는 행위에 대한 미련이 없고, 행위 할 때는 또 행위 그 자체 이외에는 다른 마음이 없다. 456

기체적인 기질 : 독립적인 행위(확고부동)
액체적인 기질 : 목적 행위 (언제나 흔들림)
고체적인 기질 :무지한 행위(영적인 혼수상태)

자기의 일이 아닌 것을 잘 해내는 것보다는
비롯 서툴더라도 자기의 일에 열중하는 편이
훨씬 훌륭하다. 482

자기 색깔대로 살아갈 것 483

조용하게 살아야 한다. (그의 마음 깊은 곳까지는 이 시끄러움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시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용한 삶>이다. 485

전쟁유 일으키는 것은 죄악이다. 그러나 불의를 무찌르기 위한 전쟁은 죄악이 아니다. 그리고 친척이니 형제니 하는 이 삶의 관계는 이 육체가 사라지게 되면 그와 동시에 끝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나>라는 영혼의 옷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육체에 침해를 가한다 해서 <나>인 영혼까지 침해당하지 않는다. 490

내 색깔대로 가라. 타고난 자신의 기질대로 가라. 490

<진리는 + 나의 것>(Dharma+mama).
여기 <다르마>(Dharma)란 말에는 "진리라는 
의미 이외에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유지시키다. 
둘째, 지탱하다. 
셋째, 지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