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흄
01 회의론
가장 넓은 의미에서 회의론자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러나 회의론의 방식은 다양하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은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모든 것을 의심해야만 확실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흄은 이를 '선행적 회의론'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피론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흄은 이러한 사상을 '피론주의'라 칭했다. 흄 자신은 데카르트와 피론보다 더 온건한 '완화된 회의론'을 주창했다. 그는 무엇이건 확신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믿음을 중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설사 믿음을 중지하는 것이 확실성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과법칙과 외부세계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 양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 확신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단에 빠지는 것은 금물이다.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그러하다. 어떤 것이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흄의 회의론은 겸손을, 그리고 믿음이 잠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옹호한다.
02 인상과 관념
흄은 대체로 존 로크, 조지 버클리와 함께 영국의 위대한 경험론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경험론은 지식이 순수이성이 아니라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흄의 경험론에서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은 인상에서 시작된다. 인상은 오감을 통한 지각, 혹은 통증, 배고픔, 감정처럼 자극을 통해 오는 감각이다. 이러한 인상은 머릿속에 일종의 흔적을 남기는데, 흄은 이흔적을 관념이라 칭했다. 가령 고양이를 본인상을 받은) 다음에는 녀석이 그곳에 없어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고양이에 대한 관념을 갖는다는 뜻이다. 흄은 단순한 모든 관념은 인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단 예외는 있다. 전에 본 두 가지 색깔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조는 본 적이 없어도 상상할 수 있다. 단순한 관념들을 결합하여 복잡한 관념들을 만 들어내는 것도 인상에서 비롯되지 않은 관념의 예다. 가령 유니콘이라는 관념은 말과 뿔에 대한 관념에서 창조한 것이다. 관념마다 그에 상응하는 인상이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과 관념에 도달하는지에 관한 난제가 생겨났다.
03 필연적 연결
우리의 일상은 규칙적인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물은 갈증을 해소하고,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며, 열은 방을 덥혀준다. 우리는 대체로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 연결이 있다고 상정한다. 하지만 인과를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홈에 따르면 우리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결을 관찰할 수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는 그저 한 가지 사건 다음에 또 다른 사건이 뒤따른다는 것뿐이다. 인과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논리를 이용해도 인과 원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불이 추위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다. 따라서 필연적 연결이라는 관념은 경험이나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습관의 산물이다. 필연적 연결은 정신의 산물로서,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보이는 것들 사이의 연계성을 날조한다. 그렇다고 흄이 인과의 실재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인과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지식이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인과에 대한 앎을 이성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흄은 인과에 대한 우리의 앎이 자연적인 본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04 공감
흄에게는 이성이 아니라 공감이야말로 도덕의 기초였다. 그가 생각하는 공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공감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공감은 '자신의 성향이나 정서와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타인의 성향과 정서'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공감은 이런 의미에서 감정
이입과 더 비슷하다. 감정이입은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윤리의 바탕으로 삼기에 인간의 감정이란 별로 탄탄해 보이지 않지만, 흄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의 계시를 전혀 믿지 않았을뿐더러, 그렇다고 도덕의 원칙을 세상에 대한 사실에서 끌어올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존재에 관한 추론(사실)으로부터 당위에 대한 결론(도덕)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존재와 비존재에 관한 추론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에서 이성의 유일한 효용은 도덕적 공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를 확인해주는 작용, 그리고 우리가 다른 감정이나 잘못된 믿음이 아니라 도덕적 공감에 따라 진정성 있게 행동하고 있도록 보장해주는 작용에 있다.
05 자유의지
인간이 자연계의 일부이고 자연계는 인과의 엄격한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수백 년 동안 서양 철학자들을 괴롭혔고, 흠이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여전히 타당성이 가장 크다. 그는 "동기와 자발적 행동 사이의 연계성이 자연의 인과 사이의 연계성만큼 규칙적이고 균일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인간의 삶은 예외 없이 동기와 자발적 행동 사이의 연계성에 기대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이 많은 면에서 예측 가능하지 않다면,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이 이들의 믿음과 성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행동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이고 제멋대로인 것이 된다. 무차별적인 자유, 인과의 필연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자유는 '자발성의 자유'다. 자발성의 자유는 타인이나 다른 것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06 다발 이론
흄 이전의 자아 이론은 대부분 단순하고 통일된 단일 자아의 존재를 상정했다. 흄은 이러한 이론을 부수어버렸고, 결국 자아도 무너뜨린 셈이 되었다. 그는 우리라는 존재란 "상상할 없을 만큼 빠르게 이어지면서도 영구적인 흐름과 움직임 속에 있는 상이한 지각의 다발혹은 집합”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자아는 생각과 감정과 감각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그저 이러한 것들이 정연하게 모여 있는 집합이라는 것이다. 충격적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간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 관해서는 그것이 부분의 합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별 문제 없이 이해하고 납득한다.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믿음은 플라톤의 비물질적 무형의 영혼 관념에 빚지고 있고, 이는 기독교에 의해 채택되어 훗날 데카르트에 의해 다시 공식화되었다. 흄을 비판하는 이들은 흉이 "다발'이라는 단어를 단수형으로 썼다는데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그의 생각을 경시한다. 토머스 리드는 흄이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주체도 없는, 생각, 정념, 감정의 다발에 불과하다"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흄의 다발 이론에 불과하다"라는 식의 느낌은 전혀 없다. 정신은 깊이 상호연관된 경험들의 놀라운 네트워크다. 흄의 견해를 통해 보이는 자아의 경이로움은 커지면 커지지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07 이성
흄은 이성의 힘을 묵살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에서 나오는 모든 추론은 이성이 아니라 관습의 결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는 "인과 관념에 도달하지 못하며, 도덕에서도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흄의 저작을 읽어보면 흄이야말로 이성적인 사유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별로 하지 않는 인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모순은 전혀 없다. 이성에 대한 흄의 회의론은 이성이 세계와 우리 자신과 도덕에 대한 지식의 토대라는 주장을 겨냥한 것이다. 지식의 토대로서의 이성은 무기력하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로서의 이성은 가치가 크다. 흄은 이성을 쓰지 않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성을 탁월하게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천상에 군림하던 이성을 지상으로 추락시킴으로써 오히려 이성을 구원한 것이다. 흄의 말에 따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삶에 대해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 그리고 더 큰 진리는 아니더라도 더 큰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성의 더 정확하고 면밀한 작용 방식 덕분이다."
(David Hume, 1711년 4월 26일 ~ 1776년 8월 25일)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
서양 철학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관련된 인물 중 손꼽히는 인물
역사가들은 대개 흄의 철학을 회의론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자연주의적 요소가 흄의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흄의 학문은 여태껏 흄의 회의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사람들(리드, 그린(Greene) 같은 부류나 논리실증주의론자들)과 자연주의자적 면모를 강조하는 사람들(돈 개릿, 노먼 켐프 스미스, 케리 스키너, 배리 스트라우드, 게일런 스트로슨 같은 부류)로 나뉘곤 했다.
흄은 존 로크와 조지 버클리 같은 경험주의자들, 그리고 피에르 벨(Pierre Bayle) 같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여러 작가들 , 또는 아이작 뉴턴, 새뮤얼 클러크,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그리고 조셉 버틀러(Joseph Butler)같은 영어권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