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세노폰 Xenophon, BC 430?-354?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 아테네 동쪽 에르키아에서 귀족 그릴로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귀족의 품격과 수준 높은 교양을 익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이후 아테네에 들어와 살았고, 여기서 소크라테스를 만나 직계 제자가 되었다. 페르시아 내전 당시 반란군의 용병으로 참전한 크세노폰은 반란이 예상보다 빨리 진압되는 바람에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한다. 그는 임시 지휘관이 되어 그리스 용병부대를 이끌고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귀환했는데, 이 과정에서 빛나는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국 스파르타의 동맹국 페르시아에서 용병대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고향 아테네에서 추방당한다.
스파르타에서 여생을 보낸 크세노폰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두 제국 사이,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도시 사이에서 '경계인' 또는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얻게 된 새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여러 저작을 남기는데, 이때 필생의 역작 『키루스의 교육이 탄생한다.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혼란에 빠진 그리스의 정치에 대해 철학적이고 이상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면,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크세노폰(기원전 약 430-354년)은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가 아테네 진영과 스파르타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던 펠로
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이 시작될 때 태어나서, 이 전쟁에서 패권을 잡은 스파르타가 만티네이아 전투(기원전 362년)에서 패해 패권을 상실하고 몰락한 지 10여 년 후에 죽었다.
크세노폰은 청년 시절에 소크라테스(기원전 약 469-399년)의 제자이자 친구였고, 자신이 존경한 소크라테스로부터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우리가 지금까지 많이 접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전통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진리와 정의와 미덕을 중심으로 정통적인 철학을 추구했다면, 군사 전략가였던 크세노폰은 실용적인 정의와 미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잘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는 점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한 당시의 소피스트들과도 달랐다.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진리와 정의와 미덕을 바르게 제시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플라톤 자신도 국가에서 인정하듯이 다소 이상적인 경향을 띤다. 반면, 크세노폰은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1만 명의 그리스 용병을 이끈 군사 전략가이자 지휘관으로서, 정의와 미덕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건 전쟁 같은 인간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내는 문제라고 여겼다. 크세노폰이 쓴 키루스의 교육은 이러한 사상이 생생하게 녹아있는 저작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가 혼란과 분열에 휩싸이자 실천적 역사가 크세노폰은 암울한 시대를 구원할 지도자의 본보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찾은 지도자는 페르시아의 군주 키루스 대왕(B.C, 600?-530)이었다. 키루스 대왕은 적국의 군주였지만 크세노폰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참된 지도자의 덕목을 그에게서 발견했다. 페르시아제국의 전성기를 이룬 키루스 대왕은 어떻게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시절부터 전
쟁을 승리로 이끌고 거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군주가 되기까지 키루스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참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역량을 성찰했다.
이 책은 공정하게 정의를 실현하는 법,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법,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법, 인재를 중용하는 법,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히 절제하는 법. 지속 가능한 제국을 운영하는 법 등 키루스 리더십의 진수를 가감 없이 선보인다. 키루스는 거대한 제국의 군주로서 모든 국가와 민족의 평화적 공존을 추구했다. 피정복 국가의 위정자는 엄중히 처단했지만 일반 민중에게는 한없는 자비를 베푸는 성군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키루스 덕분에 바빌론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은 이교도의 왕을 "여호와의 목자"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구약성경의 '고레스 왕이 바로 키루스 대왕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비견되는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지난 2,400년 동안 사랑받아 온 불멸의 리더십 교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전장에서 애독서로 즐겨 읽었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키루스를 가장 이상적인 군주 모델로 제시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도 이 책을 동서양 최고의 리더십 고전으로 극찬했다.
키루스 대왕은 강인한 신체와 도덕적 품성을 함양하는 페르시아 전통 교육을 바탕으로, 메디아에서의 경험과 다양한 실전 및 통치 경험을 통해 뛰어난 리더십과 포용적인 통치 철학을 완성해 나갔다.
페르시아 전통 교육:
- 강인한 신체 훈련: 승마, 활쏘기, 창 던지기, 사냥 등 신체적인 능력과 군사적 기술을 연마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 도덕적 가치 함양: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따르는 것, 복종, 인내, 자제력 등 페르시아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도덕적 가치를 배웠습니다. 거짓말은 가장 나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 공동체 의식: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고 법을 존중하는 태도를 길렀습니다. 페르시아의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을 목표로 했습니다.
- 최소한의 읽고 쓰기 교육: 기본적인 읽고 쓰기 능력은 습득했을 수 있지만, 당시 페르시아에서는 문자를 다루는 능력보다는 구술 능력과 신체 훈련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서기관은 주로 외국인을 고용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의 교육 및 경험:
- 군사적 전략 및 리더십: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며 다양한 전투를 통해 실질적인 전략과 리더십을 익혔습니다. 그는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효율적으로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 정치 및 통치 철학: 여러 민족을 통치하면서 관용과 포용의 중요성을 깨닫고, 피정복민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는 그의 제국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다양한 문화로부터의 학습: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때로는 그들의 장점을 자신의 통치 방식에 통합하기도 했습니다.
제1권 소년 키루스
• 사람을 통치하는 것보다 다른 온갖 짐승을 통치하는 것이 더 쉽다.
• 키루수는 아시아에 있는 민족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소수의 페르시아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로 시작한 뒤 추대를 받아 메디아인의 지도자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추대를 받아 히르카니아인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런 다음에 시리아, 아시리아, 아라비아, 카파도키아, 대프리지아와 소프리지아, 리디아, 카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를 정복했다. 또한 박트리아, 인도, 킬리키아, 스키타이인, 파폴라고니아인, 마가디다인을 비롯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수많은 민족을 통치했다. 아시아에 있는 그리스인도 지배했고, 바다로 내려가서는 키프로스와 이집트를 지배했다. 이 민족들은 키루스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이 민족들 간에도 서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키루스는 이 민족들을 통치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키루스에 대한 두려움이 이 땅 전체에 미쳤다.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해 떨게 함으로써, 아무도 그에게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키루스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든 그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는 열망을 심어주어 언제나 그의 뜻과 판단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 이 사람이 경이롭고 경탄할 인물이라고 생각해 그의 출신이 어떠하고 그의 타고난 성품과 자질은 어떠하며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사람들을 통치하는 데 그토록 남달랐는지 연구해보았다.
• 키루스의 아버지는 페르시아인의 왕인 캄비세스였다. 키루스의 어머니는 만다네였다.
• 키루스가 이런 평판을 얻게 된 것은 용모가 준수하고 정신적으로도 뛰어난 자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르시아 법률에 따른 교육을 받았다. 페르시아 법률의 특징은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달리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데 있다.
페르시아인들은 소년들에게 절제를 가르친다.
페르시아인들은 소년들에게 관리에게 복종하는 것도 가르친다.
페르시아인들은 소년에게 먹고 마시는 것에서 절제하는 것도 가르친다.
• 키루스가 말했다. "제우스 신에게 맹세하건대, 먼저 저는 과식을 하지 않을 겁니다. 과식하면 몸이 둔해져서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먹은 것은 운동으로 소화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건강이 더 잘 유지되고, 힘도 더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 신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데, 분명히 그 방법은 친구들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하는 방법과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그 사람이 이득을 얻도록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아들아, 네가 내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은 흔히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잘 알지 못해 단지 추측이나 추정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신탁이나 징조를 무시한 채로 네 자신이나 너의 군대를 위험 속으로 내몰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제2권 총사령관 키루스의 출정을 위한 준비와 군대 훈련
• 국가를 위해 가장 많이 고생하고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입니다. 심지어 가장 못한 사람들조차도 잘한 사람들이 더 많은 몫을 가지는 것이 옳다고 여길 것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제3권 아르메니아 원정
제4권 아시리아 연합군과의 제1차 전쟁
• 승리보다 더 이득이 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한 자는 남자와 여자와 재물과 땅을 비롯해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승리하는 데만 집중해야 합니다. 약탈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해도 결국 최종적으로 패자가 된다면 자신이 약탈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제5권 고브리아스와 가다타스
제6권 아시리아 연합군과의 제2차 전쟁을 앞두고
제7권 사르디스와 바빌론의 함락
• 용맹함의 미덕을 유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토록 열거하는 이유는, 첫째는 우리가 좋은 것을 누리되 거기로부터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누리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사람이 겪은 일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우리가 겪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을 얻지 못하는 일도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좋은 것을 얻어서 누리다가 잃는 일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제8권 제국의 건설과 키루스의 죽음
• 키루스가 이때 제정한 제도는 후대의 모든 왕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다른 페르시아인이 처음에 키루스를 본받은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군주이자 가장 행복한 사람이 했던 방식으로 신들을 섬기면 자신들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키루스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루스는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신들을 공경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롭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불경한 일을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보다는 신들을 공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국정을 함께 이끌어가는 동반자들에게 자신이 은혜를 베푸는 은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모든 동반자가 신들을 공경하는 자가 되면 서로에게 불경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친구나 동맹에게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대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면, 그들도 부끄러운 짓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고 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모든 사람을 존중해 부끄러운 말이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면,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8] 키루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통치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여자를 더 기꺼이 존중해준다. 또한 키루스는 아주 대단한 미덕들을 온 힘을 다해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을 더 존중한다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종의 미덕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키루스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행동했다. 그는 솔선수범해 절제하는 삶을 살아나감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도 절제하는 삶을 실천하게 만들고자 했다. 얼마든지 제멋대로 방자하고 방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절제하며 살아간다면, 이를 본 다른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 방자하고 방탕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키루스는 존중과 절제를 다음과 같이 구별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지만, 절제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키루스는 자기가 순간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선한 것들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즐거움을 위해 먼저 기꺼이 고통을 감수 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여준다면, 모든 사람에게 절제 훈련을 가장 잘 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키루스는 왕궁에서 아랫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히 올바른 풍토가 조성되게 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공경했고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 왕궁에서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기쁘다고 방자하게 웃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진정으로 고귀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왕궁에서 스스로 그렇게 행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며 지냈다. 키루스는 군사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냥
을 나갔다. 사냥은 최고의 군사훈련인 동시에 기병에게는 실전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사냥을 할 때는 기병들이 달아나는 사냥감을 추격해 온갖 장소로 말을 타고 달린다. 따라서 기병들이 말 위에 탄 채 온갖 지형을 달리는 훈련을 하는 데 최고인 데다가,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서로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기마술을 숙달시키는 데도 최고의 훈련이었다. 사냥은 키루스가 자신의 국정 동반자들이 절제와 인내, 더위와 추위,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는 것도 익힐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왕을 비롯해 국정을 돌보는 사람들은 사냥을 통해 계속 훈련들을 해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은 키루스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다스리는 사람들보다 못하면 그들을 다스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키루스는 자신의 측근들을 훈련시킴으로써 그 자신도 절제와 군사 기술과 실전 훈련을 아주 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키루스는 왕궁에 꼭 머물러 있어야 할 때가 아니면 언제든지 자신의 측근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고, 왕궁에 머물러 있어야 할 때조차도 왕궁 내에 있는 공원에서 기르는 짐승들을 사냥했다. 그는 반드시 먼저 땀 흘려 운동한 후에야 식사를 했고, 말들에게도 반드시 먼저 운동을 시킨 후에 먹이를 주었다. 그는 사냥할 때 자신을 수행하는 내시들도 데리고 나갔다. 키루스와 그의 측근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단련한 덕분에 온갖 남자답고 고귀한 일에서 아주 탁월했는데, 이런 일에서도 키루스는 타인의 모범이 되었다. 게다가 키루스는 이런 일에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 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선물과 관직을 비롯한 온갖 상을 내렸다. 이렇게 키루스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심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키루스가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 자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매료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스스로 메디아풍의 복장을 했고, 자신의 국정 동반자에게도 메디아풍의 의상을 입으라고 권했다. 어떤 사람이 신체적 결함을 지니고 있더라도 메디아풍의 옷이 그 결함을 감춰주고, 메디아풍의 옷을 입으면 사람이 더 잘생겨 보이며 키도 더 커 보인다고 생각했다. 키루스는 그들에게 밑창에 높은 깔창을 깔아 감쪽같이 키가 커 보이게 해주는 신발을 신고, 눈 주위를 색칠해 실제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게 하며, 화장품을 사용해 실제보다 얼굴빛이 나아 보이게 하라고 권했다. 키루스는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침을 뱉거나 코를 풀지 않게 했고, 오직 정면만 응시한 채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어떤 것도 마음을 흩트려놓을 수 없음을 보여주게 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아랫사람들이 얕잡아 볼 수 없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키루스는 자신의 측근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자신의 위엄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사람들을 직접 챙겼다. 한편, 자유민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 노예에게는 자유민이 받아야 하는 힘든 훈련을 전혀 시키지 않았고, 무기를 지니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민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게 했다. 키루스는 노예들이 기병을 위해 사냥감을 들로 몰아 사냥감이
잡혔을 때는 오직 노예들에게만 사냥한 짐승을 주어서 먹게 했다. 원정을 나갔을 때는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은 물론이고 노예들도 물가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했다.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는 자기는 기다리면서 그들이 먼저 먹고 허기에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이렇게 키루스는 아무런 불평 없이 일생동안 노예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귀족들이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불렀듯이 노예들도 키루스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 모든 일을 통해 키루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신변과 관련해서도 그는 자기가 복속시킨 자들에게 위해를 당할 위험이 없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하게 된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무력화되고 조직도 와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밤이든 낮이든 키루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루스의 주변에는 군대를 직접 이끄는 강력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병대 지휘관이거나 보병대 지휘관이었다. 그들 중 대
다수는 스스로 제국을 다스릴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키루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키루스의 수비대와 가깝고 키루스와도 자주 어울리는 자들이었다. 키루스가 그들을 활용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루스에게는 위험성도 상존했다. 그래서 키루스는 그들이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전쟁을 할 수 없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부당하고 제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불신해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곧 내전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루스는 이 모든 방법 대신에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명예롭고 고귀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가장 힘 있는 자들이 서로 가까워지기보다 자신과 더 친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 키루스는 늘 진심으로 사람들을 아끼고 따뜻하게 대했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악의를 지닌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자신에게 사랑과 선의를 베푸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 인간이 하는 일들 중에서 죽음과 가장 비슷한 일은 잠을 자는 것이다. 인간이 잠들어 있을 때 인간의 혼은 가장 신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잠들어 있을 때 인간의 혼은 몸으로부터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