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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를 습격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by mubnoos 2025. 4. 30.

 

 

 

 

 

빵가게를 습격하다

 

•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니, 그냥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었다. 우주의 공백을 고스란히 삼켜버린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도넛 구멍만 한 정말 조그만 공백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몸 안에서 점점 크기가 커지더니 끝내는 그 깊이를 모를 허무가 되고 말았다.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물론 먹을거리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먹을거리는 왜 없는가?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같은 값어치를 지닌 교환물이 없는가? 아마도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공복감은 그저 상상력의 부족에서 곧바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신도 마르크스도 존 레넌도 다 죽었다.  

 

  우리는 부엌칼로 손에 쥐고서 상가를 천천히 걸어 빵가게로 갔다. High Noon 같은 느낌이었다. 게리 쿠퍼를 해치우러 가는 무법자들. 빵가게가 가까워지면서 빵을 굽는 냄새가 점차 강하게 풍겼다. 그리고 그 냄새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악을 향한 우리의 기울기도 심해졌다. 빵가게를 습격하고 공산당원을 습격한다는 것에 우리는 흥분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한다는 사실에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감동을 느꼈다. 

 

  빵가게 주인은 손님이야 어찌 되었든,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바그너에 심취해 있었다. 공산당원이 바그너를 듣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내 판단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있는 일이다.

 

"배가 너무 고파요." 하고 나는 주인에게 털어놓았다. 부엌칼을 등 뒤에 숨긴 채로. "그런 데다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빵을 먹으면 되지," 하고 주인이 말했다.

"그런데 돈이 없다니까요."

"그 말은 아까 들었어." 하고 주인은 귀찮은 듯이 말했다. "돈은 필요없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괜찮은가요? 우리는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데요."

"그래그래."

"그러니 타인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

"그렇죠."

"무슨 말인지 알겠군.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자네들은 빵을 마음껏 먹어도 좋아. 그 대신 나는 자네들을 저주하겠어. 그래도 괜찮겠나?"

"저주하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저주란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지. 전찰 시간표와는 달리."

"아니 잠깐만요." 파트너가 끼어들었다. "난 싫어. 저주 받고 싶지 않다고. 깨끗하게 죽여버리자니까."

"아니지, 나도 잠깐." 하고 주인이 말했다. "나 역시 자네들 손에 죽고 싶지 않다고."

"나는 저주받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떤 식이든 교환이 필요해. 이러면 어떨지 모르겠군. 자네들 바그너 좋아하나?"

"아니요. 전혀요."

"바그너의 음악을 귀담아 잘 들어주면, 빵을 마음껏 먹도록 해주지."

"좋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죠."

그리고 우리는 바그너 음악을 들으면서 배가 터지도록 빵을 먹었다.  

 

 

 

 

 

 

 

 

 

 

 

 

 

 

다시 빵가게를 습격하다

  우리는 실제로는 무엇하나 선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고, 나는 대충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특수한 기아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하나의 영상으로 제시할 수 있다. 

1. 나는 조그만 보트를 타고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다. 

2.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속에 있는 해저화산의 꼭대기가 보인다 

3. 해수면과 그 꼭대기 사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한데,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4. 왜냐하면 물이 너무 투명해서 거리감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밤새 하는 레스토랑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후, 내가 "하긴, 그렇기도 하군."이라고 동의하기까지의 이 초나 삼 초 동안에 내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는 대충 그런 것이었다. 

 

 

 

 

 

 

 

 

"지금 당장, 이 공복감이 계속되는 동안에. 미처 성취하지 못한 것을 지금 바로 성취하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늦은 밤에 열려 있는 빵가게가 있을까?"

 

 

 

 

 

"저 맥도날드를 덮칠 거야."

"맥도날드는 빵가게가 아니잖아."

"빵가게나 마찬가지지."

"떄로는 타협이 필요한 거야.' 아무튼 저 맥도날드 앞에다 차를 대." 

 

 

 

 

 

 

맥도날드 점원은 모두 세 명이었다. 카운터에 있는 여자와 이십 대 후반임 직하고 계란형 얼굴에 혈색이 나쁜 점장, 그리고 조리실에는 두께가 거의 없는 희미한 그림자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세 사람은 계산대 앞에 모여 잉카의 우물을 들여다보는 관광객 같은 눈빛으로 내가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고, 아무도 달려들지 않았다. 나는 총이 너무 무거워 방아쇠를 손가락에 건 채 총신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빅맥 서른 개. 테이크아웃으로."

 

 

 

 종이 백 두 개에 햄버거 서른 개가 말끔하게 담기자, 아내는 여자 점원에게 라지 사이즈 콜라를 두 개 주문하고 그 값을 치렀다. "빵 말고는 아무것도 훔칠 생각이 없거든."

 

 

 

 

 

삼십 분 정도 차를 달려 적당한 건물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우리는 햄버거를 마음껏 먹고 콜라를 마셨다. 

 

 

 

 

우리는 둘이서 담배 한 개피를 나눠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자 아내는 내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하고 아내는 대답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녀의 몸은 고양이처럼 부드럽고, 그리고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