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 단 한 번도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의 회사에 원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일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난 왜 여기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 돌이켜 봤을 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질문들에 명료하게 답변할 순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단 하루도 불량 안 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최선은 한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왜 최선을 다했을까?
삶이 힘들면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살 때 배운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방향도 모르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발버둥 치는 것만이 물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당시의 난 암흑의 망망대해에 빠져 발버둥 치는 조난자였고, 나 하나도 책임지기 버거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회사를 선택 했다기 보다는 취업을 포기 했다라는 것이 더 가까웠다.
돈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급여를 지폐 뭉치로 받진 않는다. 가끔은 그 돈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발버둥 치는 것을 그만 두고 싶을 때 떠올리는 핑계가 돈일 수는 있지만, 돈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돈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일을 한다는 명제는 부족한 인과관계다. 돈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돈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난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야간 생산라인에서 일하면서 무슨 큰 돈을 기대했겠는가. 내가 질문했던 것은 항상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래서 난 내가 하는 일에 결코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정복하고 통제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전부는 아니라도 내가 누구인지의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하나라도 명료한 것이 있다면 삶은 의미가 있다. 그 작은 명료함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불빛 하나라도 있다면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그 불빛을 통해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어둠 속의 작은 불빛은 결코 작지 않다. 모든 것일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둠 속의 작은 불빛이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난 무엇을 얻었을까? 돈? 경험? 전문지식? 내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의 내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더라도, 적어도 앞으로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정의할 수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크든 적든 회사는 세상을 보는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이 작은 회사 안에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하고 살아가는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회사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요약본이다. 그 요약본을 통해서 전반적인 삶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성급하지만, 나에게 회사는 나 자신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참고서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더 알고 싶다.
왜 일을 하는가? 돈을 벌려고? 일을 한다고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돈이 많으면 일을 안 할까? 일을 안 하면 행복할까? 퇴사하고, 이직하고, 창업하고, 조기 은퇴한 사람들 보면서, 나는 공장에서 간간히 버티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겁쟁이는 아닐까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생은 버팀이라고 했다. 난 14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만을 위해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여기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일의 본질은 사회에서 내 자리를 얻고 내 역할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나답게 일하고 싶다. 일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그리고 고객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나는 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따르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고, 내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좋다는 실감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