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의 모습은 백지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종이. 종이 위에 이미 무엇인가가 그려져 있다면 그것은 스케치북이 아니라, 잡지 혹은 그림책 따위다. 작가든, 디자이너든, 팀장이든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창작하기 전에는 공백을 마주 한다. 그 공백은 두려움을 수반한다. 스케치북은 그런 공간이다. 예측할 수 없는 실패의 불확실한 두려움이 담긴 공간.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면 공백을 마주하는 것이 시작이고, 절반이다. 가능성 그리고 새로움으로 가는 선행 단계는 침묵이며 공백이다. 그것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영역이고 그것은 창작의 고통, 혹은 창작의 대가로도 표현할 수 있다. 대가 없이 결과를 얻는 사람들의 부류는 도둑놈이거나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서는 인생을 발견할 수 없다.'
공백과 침묵을 마주하는 것은 낭비라고 느껴질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실제로 그것은 낭비가 아닌 필수적인 일련의 단계이다. 다른 지름길은 없다. 우리가 무엇을 시도하고자 하거나 창작하고자 한다면, 해야 할 것 전에 먼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공백과 침묵은 그런 것들을 구분하고 정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단계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뒤죽박죽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요컨대, 유희열도 아닌 류이치 사카모토도 아닌, '류희열 사기모토' 같은 것이다.
사람들을 속이고, 불평등을 조장할 때 흔히 사용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권위에 의존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다수의 사람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는 서울대라는 권위와 다수의 사람들을 활용함으로써, 두 가지 방법을 적절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효율성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는 예술가보다는 오히려 과학자에 더 가깝다. 예술가들은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과학자들은 기존의 권위 위에 다수에게 증명된 연구를 확장한다. 하지만 물론 과학자들에게도 자신만의 가설은 있으며 그것을 증명하고자 실험한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예술가도 과학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장사꾼? 그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할까? 편집자? 그에게 독창성이라는 가치는 무엇일까? 복사? 그에게 창작은 어떤 의미일까? 미메시스? 뒤죽박죽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유희열과 스케치북은 맞지 않는 조합이다. 유희열은 '스케치북의 공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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