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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 리처드 턱

by mubnoos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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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ㆍ영어로 된 철학은 홉스로부터 시작됐다. 

 

 

 

 



제1장 홉스의 생애

 

ㆍ홉스는 영어뿐만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말하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언어에 능통했다. 번역에 대한 관심과 번역 능력은 그의 나머지 생애 동안 계속되었다. 

 

몽테뉴와 립시우스는 둘 다 공공심과 애국심을 비난했는데, 이러한 감정들을 지닌 인간은 심각한 위협에 노출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원전 2세기의 회의론자 카르네아데스는 배가 난파될 경우 현명한 자는 해안가로 갈 수 있는 널빤지만 붙잡으면 된다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그 널빤지에서 밀어버리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단호하게 역설했다.

 

홉스가 이와 같이 스스로 편입됐던 근대 인문주의 문화는 그의 나머지 생애에도 중요하게 남아 있었다. 실로 어떤 의미에서는, 적어도 정치 이론에 관한 한,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는 근대 인문주의 문화를 그 안에서부터 변형시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립시우스와 몽테뉴에게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웠던 인간 행위의 원칙인 자기보존은, 홉스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윤리를 구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권리가 되었다.

 

그로티우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무엇을 믿든 혹은 과거에 무엇을 믿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자신을 보호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과, 타당한 이유 없이 또는 불필요하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제2장 홉스의 저작

물리적 세계에 대한 홉스의 가정들 중에서 내가 고려하고자 하는 둘째 사례는 빛의 본질에 대한 그의 관념이다. 홉스는 항상 빛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이 이론과 정치 이론을 근대 사상에 대한 자신의 주된 공헌으로 삼았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광학(빛의 투과와 시각에 대한 분석)은 그가 지속적으로 되돌아갔던 주제였다. 빛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론은 다시 한번 표적이 되었다. 데카르트는 우주가 어떤 광원들이 압력을 가하는 일련의 물질들로 가득차 있다고 믿었다.

 

홉스의 철학은 세계의 실제 모습을 우리가 경험한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던 데카르트의 철학과 그 성격을 공유했으며, 이러한 강조는 특정 시기에 발전한 물리학의 가장 큰 성취가 지닌 주요한 특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홉스는 데카르트와 달리 정교한 신학적 가정들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정신 외부에 있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ㆍ공간과 시간은 가상적이다. 어떤 사람들도 공간과 시간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 시공간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부터 도출한 구성물이거나 연역해 낸 결과물이다. 공간은 어떤 물체가 점유하는 어떤 것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파악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운동들이 빚어내는 환영이다. 우리는 움직이는 사물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지만, 사물들이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사물들이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경험할 수 없다.

 

ㆍ"아무것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도형을 다루는 것은 기하이고 운동을 다루는 것은 물리이며, 자연권을 다루는 것은 도덕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홉스가 관심을 가졌던 주요 문제는 인간 행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인간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공통의 윤리적 근거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다루는 ‘자연권’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홉스는 도덕적 갈등에 대한 해법이 있다고 믿었다. 윤리적 불일치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도덕주의자들의 해답은 조만간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 사실들을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알게 되리라고 희망하는 것이었던 반면, 홉스는 당연하게도 이런 종류의 경건한 믿음에 의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합의에 이르는 길은 정치를 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정치 이론에 대한 홉스의 가장 독특한 기여임에 분명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15장에서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정의와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정의란 다른 사람들이 약속을 지킨다면 마찬가지로 나도 그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한데, 무엇이 자연 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최초의 인간이 되도록 만드는가? 홉스는 그렇게 만드는 합리적인 동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홉스는 무한한 과거에 최초의 원인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비록 홉스는 그 최초의 원인이 어떠한 것인지 말할 수 없었던 듯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천체물리학자들에게 ‘빅뱅’이 지닌 역할이 홉스의 ‘신’과 같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요점은 자비로움과 전능함 같은, 신이 지닌 모든 관례적인 속성은 신에 대한 철학적 관념에서는 배제된다는 데 있다.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한 위대한 사상가는 바로 그 국가에 의해서 이단과 무신론자로 낙인찍히는 공포 속에 말년을 보내야 했던 반면, 국가에 대항해 무기를 든 사람들은 풍파 없는 삶을 영위했던 것이다.

 

 

 

 

 

 


제3장 홉스에 대한 해석들

 

홉스에 대한 비판에는 단순히 휘그당이 가진 편견 이상의 것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근대 철학의 신전 전체가 무너졌고 그 잔해 위에 새로운 구조가 세워졌다. 흄은 이 파괴 과정을 시작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  (잠깐은) 친구 사이였던 장자크 루소가 이 작업을 계속했고, 마지막 정리는 이마누엘 칸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칸트는 흄과 루소에 기초에 모든 분야에서 18세기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을 완성했다. 하지만 칸트는 더 나아가 근대 철학에 대한 역사를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물론 20세기의 모든 홉스 논평자들이 그를 ‘근대’ 사상의 특징적인 대표자로 보는 데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이른바 근대성의 창출과 관련해서 홉스가 수행한 특별한 역할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홉스의 이러한 역할이 근대 사상 전반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이들 논의에서 핵심적인 문제였다.

 

 

 

 

 

 


제4장 결론

 

ㆍ홉스는 회의론을 대신해 과학을 제시했다. 하지만 좀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과학은 극도로 미미한 종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의심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을 다 배제하면서 그는 선험적인 유물론만 남겨 두었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인과관계로 상호작용하는 물질적 대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대상의 진정한 성격과 그 상호작용은 알 수 없다. 

 

인간의 도덕적 의견들이 지닌 순전한 다양성과 그것이 빚어낸 불화에 대한 그야말로 고대적인 감각이 우리를 다시 한번 사로잡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인식되지 않는 것은 홉스야말로 지성과 끈기를 가지고 이 두 가지 문제 모두와 대면했던 우리 문화의 주요 철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흄인데, 회의론자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흄의 대답이 결국 홉스의 대답보다 설득력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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