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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집 / 헤르만 헤세

by mubnoos 2021.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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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룰루

    고통이라는 선물을 받지 않고 태어난 그였기에 울 수도 없었다.

    완벽함이여, 좀처럼 너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오늘은!

    교양과 학문의 별개의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것 역시 강렬한 고통 때문에 무심결에 한 행동이 아닐세. 거기에는 또다시 무언가 의도성, 즉 몸짓과 계획이 들어 있는 거야.

    시인들이란 오늘날에도 삶의 한가운데는 그 어떤 힘과 아름다움이 은밀하게 들어 있다는 믿음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일세. 그러한 힘과 아름다움에 대한 예감은 이따금 한밤중에 번개가 치듯 수수께끼 같은 현재 속에서 빛난다는 거야. 그들은 일상적인 삶과 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커튼 위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거지. 이 커튼 뒤에서야 비로소 원래의 삶, 진정한 삶이 연출된다는 거야. 또한 내게는 위대한 시인이 아주 고귀하고 영원한 말이 몽상가의 응엉거림으로 보이네. 자신도 모르게 저편 세계의 높은 곳을 힐끗 쳐다보고 무거운 입술로 중얼대는 그런 몽상가 말일세.

    삶의 예술이란 고통과 미소를 배우는 가운데 존재한다.


  • 사랑에 빠진 젊은이

    나는 하느님의 사랑보다 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걸 찾지 못했다고요.

    세속적인 사랑때문에 하느님에 대한 외경심은 그의 마음속에서 흐려지고 사라져버렸다.

    누가 하느님을 섬기는 너를 못된 욕망의 덩어리로 만들었느냐?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행적과 이름 역시 얼마나 빨리 잊히는 것인가? 우리의 삶이 남기는 흔적은 아마도 짧고 불확실한 전설보다도 오래 남지 못하리라.

  • 세 그루의 보리수

    베를린의 세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보기 드물 정도로 서로 간의 우애와 믿음이 깊었다.

    막내- 살해당한 사람을 발견

    법정

    둘째 형 - 제가 살인자입니다.
    큰 형 - 아닙니다, 제가 살인자 입니다.

    내 생각으론 셋 중 아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 같구나
  • 신들의 꿈

    그 당시 사람들은 아직 세상의 모든 힘의 통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이 늘 보는 것은 개별적이고 명확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필요에 따라 바다, 견고한 땅, 사냥, 전쟁, 비, 해를 위한 신성을 각각 만들어냈다.

    인류가 얼마 전부터 이 모든 신에 식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은 자신의 영혼 속에도 땅과 바다의 내면에도 개별적인 힘과 특징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따금 위대한 원초적 힘이 존재하는데, 그것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이제 인간의 정신에 부여된 커다란 과제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이 사원 안엔 순수하고 영원한 원천이 빛을 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결심하였다. 이 집으로부터 도망쳐 보다 밝은 장소를 찾아야겠다고.

  •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

    전쟁은 옛날 방식대로, 중요하지만 불충분한 재료를 가지고 계속 수행되었다. 군대와 기술자들의 소박한 환상이 또 몇가지 파괴 물질을 발명했다.

    전쟁이란 희생으로 보존될 수 있는 재화로군요. 좋습니다.

    전쟁이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즐거움, 개인적 소득, 사회적 명예욕, 소유욕, 사랑, 정신적인 일 -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이야말로 우리가 덕을 입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 덕분에 아직도 질서, 법칙, 사상, 정신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 남쪽의 낯선 도시

    어떤 경우든 현대 건축이 추구하는 저 최상의 원칙은 철저한 '순수성'의 요구를 표준으로 삼았다.

    도시인의 삶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 원하기만 하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기엘 가도 분명 똑같은 이상 도시, 똑같은 호수, 똑같은 부두, 그림처럼 재미난 옛 마을, 똑같이 유리 벽에 둘러싸인 멋진 호텔을 만나게 될 것이다.

  • 마사게타이 족의 나라에서

    오늘날의 작가가 헤로도토스, 오직 그 사람만의 견해에 의존하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마사게타이인의 스포츠와 기독교 정신
    선생, 한 마사게타이인은 눈 가리고 뒤로 뛰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1초 98로 세계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 밤의 유희들


  • 노르마릴아로부터의 보고

    전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 전설에 만족하고, 모든 생물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믿거나 믿어야 하듯이 그것을 믿습니다.

    미친 사람들이 자신을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그렇게 행세하는 것은 그들의 근원적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결코 이성적이거나 정신이 말짱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신병자들이요, 이 가상의 나라에서의 체류는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간단히 말해서 미친 사람들로 가득 찬 거대한 정신 병동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아마도 나이 들어 평온함을 좋아하는 늙은이보다 명예욕이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성탄절과 두 어린이의 이야기

    소위 도서관이라 불리는 우리의 커다란 거실

    특히 해체된, 의미의 결핍 때문에 병들어 죽어가는 문명 속에서 개인 및 공동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와 행위에 의미와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치료제나 영양제, 활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평생의 축제와 그에 관련된 것들을 회상할 때마다, 유년기의 다채로운 분방함에 이르기까지 영혼의 소리와 움직임에 귀 기울일 때마다 바로 하나의 의미 하나의 통일이, 우리가 때로는 알면서 모른 채로 평생을 맴돌았던 은밀한 중심이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상하고 파괴된 삶이라도 항상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주는 중심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렇게 아름다운 놀이를 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충분히 길지가 않다.
  • 까마귀

    까마귀는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크고 힘도 몇 배 강한 갈매기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때로 녀석은 갈매기들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그를 가만히 나둔다. 추측건대 갈매기들은 녀석을 무언가 희귀하고 수수께끼 같고 다소 신비한 현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는 혼자다. 어떤 족속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떠한 관습이나 명령, 법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되는 까마귀 족속을 떠났다. 자신을 놀라워하고 먹이를 제공해 주는 인간들에게 몸을 돌렸다. 마음을 내키면 어릿광대와 줄타는 곡예사로서 인간들에게 봉사했다. 녀석은 그것을 재미있어하고, 그것으로 인간들의 찬사를 넉넉히 받을 수 있다. 화려한 갈매기들과 온갖 종류의 인간들 사이에 녀석은 검은 자태로 뻔뻔스럽고 외롭게 앉아 있다. 유일한 종류이며, 운명적으로 혹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종족도 고향도 없다. 당돌하게,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앉아 다리 위를 지나는 차와 사람들을 쳐다본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가지만, 대부분은 잠시, 대개는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고 경탄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그것이 녀석에게 즐거운 일이다. 사람들은 녀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그를 야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쉬워 한참을 망설이기도 한다. 녀석은 사람들을 까마귀 이상으로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 없이는 지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녀석은 자신의 위상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덩치만 크고 굼뜬 동물인 우리들을 압도하는 자신의 힘, 자기가 낯설고 볼품없는 종족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콥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의 종족으로부터 추방되었고, 익명성의 안전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는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하리라. 녀석의 특이하면서도 비극적이고 찬란한 운명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강제로 짊어지게 된 것인지도.

    우리의 상상력은 개연성에만 만족하지 않는 법, 통상에서 벗어난 것, 센세이셔널한 것을 연출하기 좋아한다.

    결국 세계가, 우연한 행운을 통해 지금껏 젊은 천재들이 모두 꿈꿔온 저 아름다움과 예술과 명성으로 들어가는 왕국의 문을 열어줄 때까지.

    그의 고집스러운 머리와 곤두선 회색 깃털이 분노와 기쁨을 동시에 표출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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